질문:
고향이 어디십니까?
답변:
저는 평양입니다.
질문:
평양에 몇 살까지 사셨습니까?
답변:
저는 고향에서 17살까지 살았습니다.
질문
: 당시 학제로는 중학교 시절인가요?
답변:
그 당시 중학교 졸업반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4년으로 바뀌었습니다.
질문: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으시나요?
답변:
제가 평양에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잊을 수 없지만, 많이 변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
학창시절 함께했던 친구들이 기억나시나요?
답변:
저희 동창들은 월남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당시 부유층이라 할까요. 경기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했으니까요. 여유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많이들 월남했습니다.
질문:
언제 남한으로 가셨습니까?
답변:
저는 1946년도 3월에 남한으로 갔습니다.
질문:
다른 실향민들과는 달리 일찍 월남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답변:
당시 학생들이 동정 휴학을 했습니다. 바로 신의주 학생사건(1945년 11월 23일 평북 신의주에서 학생들이 소련군과 조선공산당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건, 신의주 의거라고도 함)과 연대해서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946년 평양 역에서는 3.1절 김일성에게 수류탄 투척사건도 있었습니다만 그 당시 두 파로 갈라졌습니다. 일단은 등교해서 해결하자는 파와 등교하면 다 잡혀가니까 안된다는 파로 있다가 찬성하는 학생들은 다시 등교를 했고 그 나머지는 남쪽으로 갔습니다.
질문:
1946년 평양역 3.1절 행사에서 김일성에 수류탄 투척사건이 있었다고 했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답변:
3.1절 행사에 김일성이 축사하러 단상에 오를 때 수류탄을 던졌지요. 그런데 소련군 소령이 잡는 바람에 수류탄이 그 사람의 팔을 날렸습니다. 그 사건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친구들이 여기 있다가 잡혀가면 시베리아에 갈 판이니 도망가자 해서 남쪽으로 많이들 왔어요. 저는 다행히도 선친이 와 계셨기 때문에 좀 편했지만 참 고생들 많이 했습니다.
질문:
6.25전이니까.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해 있어서 만행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보신 일을 전해주시지요?
답변:
소련군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들어와서는 일본 여성들을 약탈했었고 저희 눈앞에서도 일본 선생의 부인이 강간당했으니 그때는 대낮이고 밤이고 없었습니다. 소련군의 횡포는 말할 수 없었고 처음에 소련군을 야만인으로 봤거든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식빵 베고 자다가 먹고 할 정도고요. 그렇게 야만인이었는데 시계 같은 것은 보기만 하면 빼앗고 그랬어요. 보통 횡포가 아니었지요. 그 당시 소련군이 오게 되면 집 문을 잠그고 꼼짝하지 않았을 때예요. 여자들 눈에 띄게 되면 여자들 나이 가리지 않고 덮치려 하곤 했어요.
질문:
남한에 살다가 언제 미국에 오셨습니까?
답변:
저는 73년도에 미국에 왔습니다. 저는 선친이 먼저 와 계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해 뵈러 왔다가 미국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질문:
함께 남한에 온 친구들과 연락은 자주 하십니까?
답변:
저희는 아직 일 년에 한 번씩 교지가 발간됩니다.
질문: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어떤 기억이 있습니까?
답변:
저는 평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골은 잘 모릅니다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 살아서 방학 때는 시골에 간 기억이 나지요. 그때 평양은 일제강점기였고 선친들이 일본 헌병에게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요시찰 인물로 주목받고 그랬습니다.
질문:
친구나 친척들이 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답변:
서울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관계없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보고 싶은데 우리 나이에 얼마나 살아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것이 하나 의아스런 점이고 친구들이나 사촌이 살아있다면 만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앞으로 통일되면 고향에 가고 싶으시죠?
답변:
당연히 가야 하겠지요. 사실 저는 1.4 후퇴 당시 평양이 폭격 되는 걸 비행기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옛 고향의 모습은 아주 다 없어졌고 요즈음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고향에 남은 흔적은 아직 듣건 데는 옛날 문건들이 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제도니 토지내용도 가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은 폭격으로 싹 쓸려 버렸기 때문에 글쎄요. 북한은 가고 싶은데 북한에 갈 비자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잠시 보고 올 바에는 필요 없잖아요.
자유아시아방송의 ‘보고 싶은 얼굴’ 오늘은 평양이 고향인 실향민 노 할아버지를 만나 봤습니다. 제작 구성에 이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