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출산날에는 ‘날달걀’
2024.10.14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북한은 당시 임산부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의사와 간호사가 먹을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어요. 그 비용이 부담스러워 산모와 가족들이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꽁꽁 싸서 안고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법천지죠.
이해연 : 북한에서는 사실 아기를 낳은 뒤 필요한 검사를 따로 하지도 않으니까요. 애가 울지 않으면 아프지 않고 잘 자란다고 하죠. 성장에 필요한 검사나 주사를 맞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커 간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그래서 남한에서 얼마나 검사를 하고, 예방접종 같은 걸 꼼꼼히 하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만난 고향 동생이 10년 전 한국에서 출산했는데 병원에 입원하는 날, 북한에서 함께 탈북한 이모들이 날계란을 들고 왔답니다. 출산하러 들어가는 조카를 막아서서 그 계란을 먹고 들어가라고 했다고… 그걸 본 남한 간호사가 화를 내면서 대기실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웃음) 북한에는 산모가 날계란을 먹으면 미끄러지듯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그렇게 한 건데…
이해연 : 네? 출산 전에 날계란을 먹는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 그런데 남한도 비슷하게 있대요. 출산 전에 삼겹살을 구워 먹인다고 합니다. (웃음)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아이를 낳으라고요. 아무튼 남과 북은 먹거리로 해보는 걸 보니 한민족이 맞는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산모가 고통받지 않고 아이를 빨리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이나 북이나 같다는 얘기겠죠. (웃음) 탈북 전에 농촌에서 아이를 낳던 산모가 출산하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하다가 뜨락또르(트랙터)를 타고 도 병원으로 가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어요. 병원에 도착해 진단을 받아보니 태반이 정상위치보다 아래쪽에 자리 잡아 자궁을 막은 ‘전치태반’이었어요. 병원에 빨리 왔다면 수술로 살릴 수 있는데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북한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날달걀 같은 미신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아마 남한 같으면 임산부 정기 검진에서 발견이 됐을 텐데 안타까운 상황에서 엄마와 아이들의 목숨을 잃습니다.
박소연 : 우리가 지금 임신과 출산, 애를 낳은 다음 산모의 건강관리까지 쭉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남한은 산모가 출산하면 보통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건강을 관리해요. 아는 동생도 이번에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는데 비용은 전부 국가가 부담해 주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방역 때문에 가족들 면회는 안 되지만 산모와 아기는 그 안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아기를 돌봐주는 도우미분들도 계시고 산모의 건강을 위해 매일 영양식도 나온다고 해요. 아기는 모유 수유가 필요한 시간에만 데려오고, 그 외에는 산모의 건강과 휴식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퇴원하는 날 집으로 오기 싫었을 정도였다고…(웃음)
이해연 : 북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시간 맞춰 젖을 먹이고 기저귀도 빨아야 하고… 북한 엄마들은 임신하는 순간부터 정말 살이 쑥쑥 빠집니다. 출산 후에 살이 쪄서 어떻게 하면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남한 산모들과는 많이 다르죠. 남북한은 산모들이 겪는 출산 후 고민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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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제가 산후조리원 비용을 알아보니 보통 2천 달러이더라고요. 조리원이나 지역별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는 비용이죠? 꼭 이걸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해연 : 남한에 산후조리원이 생긴 이유는 북한과는 다른 환경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남한은 아이를 봐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시는 경우가 많아요. 또 멀리 살거나 해서 봐줄 수 있는 사정이 안 되기도 하고요.
박소연 : 북한 부모들은 딸이나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육아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한은 부모가 무조건 자녀의 육아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도 개인 생활이 있고 직장에 다니고 본인들의 생활이 있고요. 대신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모님들이 부담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부분이 참 맘에 듭니다. (웃음)
이해연 : 제 입장에서도 산후조리는 남이 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해주면 며느리 입장에서는 불편하지 않을까요?
박소연 : 공감합니다. 저도 병원에서 출산하고 시집에 왔는데 엄청 불편했어요. 북한에는 갓난아기가 한 달 전에 담요에서 손을 내밀면 도둑이 된다고 꽁꽁 싸매야 해요. 그뿐인 줄 아세요. 산모와 아기가 바람을 맞는다고 무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않았어요. 하루 세 끼 미역국만 주는데 마지막에는 토할 것 같았어요.
이해연 : 아직도 북한은 미신적인 개념을 믿는 사람들이 있고 필요 없는 관습 때문에 산모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요.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미신 행위들을 좋은 관습처럼 여기며 요구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니까요.
박소연 : 남과 북은 산후조리 방법도 다르지만, 아이를 키우는 육아 과정도 완전히 다릅니다. 남한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일회용 기저귀에, 분유를 넣으면 즉석에서 알맞은 온도로 맞춰 타주는 기계까지 다양한 육아용품이 차고 넘칩니다.
이해연 : 출산을 앞둔 제 친구도 방 한 칸이 아기용품으로 꽉 차 있었어요. 무슨 육아용품이 이렇게 많냐 그랬더니 아직 절반도 안 된다는 겁니다. (웃음) 처음에는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이해도 됐습니다. 산후조리를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안 해주는 것처럼 남한은 육아 초보인 엄마가 육아를 혼자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런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거죠.
박소연 : 그러네요 진짜. 제가 북한에서 아이를 키울 때 매일 같이 동네 사람들이 놀러 와서 30분씩 안아줬어요. 할머니들이 아가 봐주신다며 막 볼일 보러 가라고 하시죠. 그러면 그 시간에 기저귀를 빨고 밥을 먹었어요. 장마당에 가서 한참 놀다 온 적도 있어요. (웃음) 아가를 받으러 가면 왜 이렇게 빨리 왔냐며 더 있다가 오라고 하기도 하고요. 남한에선 안타깝게 이렇게 키울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자연히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죠.
이해연 : 맞아요. 북한은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웃의 도움을 받는 정서는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직접 키우는 엄마의 부담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남한에서는 엄마가 감당해야 할 육아의 무거운 짐을 기계나 기구가 대신해주는 거잖아요. 북한도 유아용품을 통해 여성들이 힘든 육아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도 차츰차츰 자리 잡아서 북한 여성들도 남한 여성들처럼 육아에서 해방되는 혜택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