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꽃 아래서 묻다 “너는 사상이 뭐니?”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3.03.20
[우리는 10년 차이] 꽃 아래서 묻다 “너는 사상이 뭐니?” 봄꽃이 흐드러진 북한 수도 평양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요즘은 날씨도 따뜻하고 봄이 확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벌써 3월 마지막 주입니다.

 

이해연 : 봄은 꽃을 볼 수 있는 계절이라 너무 좋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선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얘기했죠. 해연 씨가 올해로 남한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하는데요, 봄 풍경에서 무엇이 가장 눈에 들어오던가요?

 

이해연 : 북한은 해마다 4 1, 학교가 개학하는데 남한 학교는 3 1일에 개학하더라고요. 이런 것도 달라서 놀랐어요. 그리고 북한은 개학날, 무조건 교복을 입지만 남한은 개학날 교복을 입지 않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박소연 : , 남한은 중·고등학교만 교복을 입고 초등학교와 대학생들은 자유복을 입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서는 큰일 날 얘기죠. 봄에 날씨가 추워도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하고, 머리도 단속에 걸리지 않게 단정하고 짧게 자르고 가야 합니다. 남한 학생들의 자유로운 복장도 놀랍지만 학교마다 교복이 전부 다르더라고요. 북한은 어느 지역이든 상관없이 똑같은 교복을 입습니다. 남한은 교복만 보고도 어느 학교 학생인가를 바로 알 수 있고요. 일단 여학생들 치마 길이가 너무 짧아서 충격받았지만 예쁘긴 하더라고요. (웃음)

 

박소연 : 그건 가끔 나도 놀래요. (웃음) 그런데 지금도 북한 여학생들은 국가에서 지정한 치마 길이를 그대로 따라서 입나요?

 

이해연 : 예쁘게 입으려고 치마를 짧게 수선하지만 학교에서는 단속합니다. 여학생들은 보통 학교에 갈 때 치마 두 개를 가지고 갑니다. 짧고 예쁜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다가 교문에서 단속하면 짧은 치마 위에 긴 치마를 입고 들어가요. 예쁘게 입으려고 별의별 궁리를 다 합니다.(웃음)

 

박소연 : 이런 풍경은 10년 전하고 별 차이가 없네요. 저희 때도 국가가 정해준 치마 길이는 무릎 아래였어요. 그런데 무릎 아래로 입으면 촌스럽지 않습니까? 그때도 수선집에서 치마를 줄여 입었어요. 북한에서 어느 해 인가 원피스 모양의 교복이 어깨끈이 달린 교복으로 바뀐 적이 있어요. 여학생들은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면 허릿단을 올려 어떻게든 치마를 짧게 입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이해연 : 여학생들이 예쁘게 보이는 걸 포기 못 하는 건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남한의 봄은 개학하는 학생들도 보이지만 거리 곳곳마다 화려한 꽃들이 눈에 들어오죠.

 

이해연 : 봄이면 온통 벚꽃이죠. 솔직히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벚꽃을 알았어요. 북한에서 봄을 상징하는 꽃은 진달래죠? 진달래는 진분홍색인데 북한 사람들은 진달래를 빨간 진달래라고 표현해요.

 

박소연 : 그러네요. 북한에서는 벚꽃을 사쿠라꽃으로 부르죠. 1945년 해방 시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조선 예술영화에서 평양에 있는 사쿠라 나무를 일본 꽃이라고 베는 장면이 나와요. 사쿠라꽃 나무를 일본에서 많이 심었을 뿐이지, 일본이 원산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남한에는 아직도 벚꽃이 많고요. 봄에 활짝 피면 정말 이쁩니다.

 

이해연 : 저는 사실 벚꽃이 대한민국 꽃인 줄 알았습니다. (웃음) 도로 주변에도 많이 심었고 꽃이 피면 너무 예쁘잖아요. 그런데 남한 분들은 봄이 오면 가까운 곳에 벚꽃이 있는 데도 굳이 지방까지 운전하고 가서 구경하시더라고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은 봄이면 꽃 축제 많이 다니죠. 10년 전에 저도 해연 씨랑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아니, 아파트 창문만 열면 단지 안에도 연분홍 벚꽃이 가득한데, 비싼 휘발유를 뿌리면서 몇 백 킬로나 떨어진 지방까지 갈까? , 남조선 사람들은 돈이 쓸 데가 없나 보다살짝 욕을 했었어요. 정착 연도가 늘어나면서 어느새 저도 꽃 보러 가는 사람들 무리에 속해 있더란 말입니다.  곁에 있는 꽃도 좋지만 꽃을 보러 가는 여정이 벌써 설렘이 있는 거예요. 해연 씨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남한에 입국하는 바람에 꽃 축제에 가보지 못하셨죠?

 

이해연 :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렙니다. 올해는 꼭 가볼 예정입니다. 처음에 사회에 나왔을 때는 축제 같은데 굳이 가야 하나? 그냥 지나다니면서 눈에 띄면 그때 보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북한은 남한처럼 다양한 꽃 축제가 없고요. 다만 하나 봄이 되면 전체 주민이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에 무조건 가야 합니다. 안 가면 반동 취급을 받아서 복장도 잘 갖춰 입고 가야 하고요. 그리고 꽃을 보면서 남한처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큰일이 나죠. (웃음) 두 손바닥으로 이렇게, 정중하게 가리켜야 해요. 그래서 꽃구경도 긴장된 마음으로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박소연 : 저도 기억나네요. 10년 전에도 봄이 되면 이제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 만든다고 비닐 박막 살 돈을 내라하겠구나 했었죠. 2월 말이면 인민반장이 온실에 드는 자재 돈을 내라고 모든 집의 문을 두드려요. 다른 일로 돈을 내라고 하면 못 내겠다고 인민반장하고 맞설 텐데, 김일성화 김정일화잖아요. 그 자체가 바로 수령님하고 장군님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냈어요. 행사를 앞두고 여성들에게 조선 저고리를 입으라고 해요. 꽃 보러 가는데 왜 치마를 입냐며 불평하면서도 할 수 없이 입었어요. 우리는 북한에서 김일성화, 김정일화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는지 기록 영화를 통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어요. 두 위인을 위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만들었다고 선전했었는데 남한에 입국해 보니, 인천공항 화단에 온통 김일성화가 있는 거예요!

 

이해연: 정말요?

 

박소연 : , 그랬어요. 알고 보니 김일성화는 남한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흔한 패랭이과 꽃이었어요. 북한 주민들은 세계에 어떤 꽃이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어쨌든 인천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김일성화에 대한 존엄과 우상화가 단번에 와장창 무너졌던 기억이 나요.

 

이해연 : 북한에는 꽃에도 사상이 담겨 있죠. 대표적으로 김일성화, 김정일화, 진달래꽃인데요. 김일성화는 김일성을 상징하고 김정일화는 말 그대로 김정일을 상징해요. 진달래꽃은 김정숙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박소연 : 김정숙이 태어난 회령에 오산덕이라고 있는데 그곳에 진달래가 많이 피었대요.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서 어떤 꽃을 볼 때는 항상 그 안에 담긴 사상을 같이 봤어요. 남한은 벚꽃 아래서너는 사상이 뭐니?'라고 물어보지 않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럼 여기 사람들은 꽃 축제에 가면 뭘 하나요? 그냥 꽃만 보고 오나요?

 

박소연 : 보고만 오면 어떡해요?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흔적을 남겨야죠. 꽃 축제장에 가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요. 벚꽃 밑에서 서로 안고, 뽀뽀도 하고아예 영화를 찍어요.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 째려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꽃과 같은 젊은이들이 너무 예쁘고 흐뭇해요.

 

이해연 : 선배님이 사진 얘기에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요즘 북한 청년들은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사진 찍을 때 엄청 많은 포즈들을 취하면서 찍어요. 어른들은 남한 영화를 보고 따 라한다고 욕해요. 하지만 북한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남한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포즈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는 봄이면 기념탑 밑에 사진사들이 많아져요. 10년 전만 해도 파란 잔디밭에 서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어깨를 팔로 감싸면서도 주변 눈치를 봤어요. 그냥 무릎에 팔을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었어요.

 

이해연 : 사실 기념탑 주변에 있는 잔디밭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요. 잔디를 밟지 못하게 단속하는 분들이 있는데 걸리면 반동 취급을 당합니다.

 

박소연 : 남한은 꽃 축제장을 비롯해 어지간한 곳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가끔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가 있는데 남한 분들은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그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갈 곳이 많으니까요. 북한에 살 때 남자친구랑 기념탑에 사진 찍으러 간 적이 있었어요. 잔디밭에 앉아 사진을 찍고 싶은데 기념탑 보위대가 계속 순찰을 다녀요. 결국 사진사와 공모했어요. 그분들이 밥 먹으러 가는 틈을 노려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해연 : 그건 불법이잖아요?

 

박소연 : 불법이죠. 남한은 꽃이 있으면 아무 데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북한은 기념탑 자체가 수령님과 장군님을 모시는 1호 탑이잖아요. 그래서 단속이 심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기념탑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요. 북한에 살 때 남한으로 먼저 간 친척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제가 얼마나 컸는데 보고 싶다면서 하시는 말씀이 기념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보내라고… (웃음) 지금은 기념탑이 아니라도 사진 찍을 곳이 많아요. 오래전에 북한을 떠나신 분들은 기념탑만 기억하시지만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웃겨서 엄마랑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봄이 되면 눈 덥힌 뒷산에서 진달래 가지를 꺾어 집안에서 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삶의 무게만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느라 꽃이 눈에 보이지 않았고요. 지금은 남한에서 꽃을 보려고 봄을 기다리는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있네요. 봄과 꽃에 대한 이야기오늘은 이만 인사드리고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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