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셀프서비스 적응기
2024.09.18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남한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셀프서비스 문화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북한 고향 분들에게는 ‘셀프’라는 단어가 낯설 텐데요. 셀프는 ‘자기 자신’, ‘스스로’라는 뜻이에요. 남한 대중식당이나 슈퍼마켓 (상점), 주유소 같은 곳에서 이 단어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가게의 서비스를 손님이 직접 할 수 있게 구비해둔 걸 말해요.
기자: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셀프서비스를 경험한 건 언제였죠?
이순희: 제가 남한에 와서 식당에 갔는데 처음이라 어리둥절한 채로 자리에 앉아서 쭉 둘러보니 식당 한쪽에 셀프라는 문구가 쓰여 있더라고요. ‘물과 커피도 셀프’라고 쓰여 있었어요.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함께 간 남한 친구에게 뜻을 물어봤죠. 그 친구가 웃으면서 “자기 스스로 가져다 먹으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그릇에 여러 가지 반찬을 가득 담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돈도 안 내고 막 가져오면 되냐?”고 걱정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셀프라고 쓰여 있으면 공짜로 가져가도 돼”라고 설명해 주더라고요. 물도 커피도 다 공짜라니 기가 막혔죠. 남한처럼 발전된 나라 중에도 반찬과 물이 모두 공짜인 나라가 별로 없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남한에 와서 식당을 접하면 이 얘기를 해요.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생활이 어려워서 아마 식당에 셀프라는 문구를 써 붙이고 공짜로 반찬과 커피를 제공하면 금방 바닥을 보일 거예요. 특히 먹튀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죠.
기자: ‘먹튀’란 먹고 튄다의 줄임말로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간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남한의 셀프서비스는 음식값 등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공짜 서비스를 뜻하는데, 제값을 지불하지 않고 공짜 음식만 취할까 봐 걱정된다는 뜻인 거죠?
이순희: 네, 맞아요. 남한에 정착한 저도 순간 공짜로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벌렁벌렁했는데, 생활고까지 겪고 있는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셀프서비스 즉, 공짜로 반찬을 제공해 준다고 하면 한 바구니 가져가고 싶을지도 몰라요. 남한에서는 셀프로 제공해 줘도 일상적으로 먹는 것에 궁하지 않으니까 욕심부리며 왕창 가져가는 경우는 잘 없어요. 대신 너무 많이 가져가서 남기는 사람들에게는 ‘환경부담금’이라는 명목으로 몇천 원씩 더 부과하기도 해요. 제가 저번에 갔던 식당에도 셀프 코너가 있었는데, ‘음식을 남기면 환경부담금 1억’이라고 써 붙인 거예요.
기자: 1억 원은 반찬을 남기고 내기에는 너무 큰 돈이죠. 그러니까 반찬을 욕심껏 가져가서 서로 낭비하게 하지 말자는 뜻이겠죠? 남한 국민들이 편리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셀프서비스가 많은 것 같은데요. 그럼 앞서 언급했던 셀프주유소나 셀프로 계산하는 슈퍼마켓에도 가보신 건가요?
이순희: 네, 그럼요. 셀프주유소는 자주 이용해요. 예전에는 주유소에 가면 직원이 뛰어와서 얼마나 주유할 건지 물어보고 돈을 받아 갔거든요. 셀프주유소에 가면 고객이 차에서 내려서 주유 호스를 들고 차에 꽂고 카드 결제까지 스스로 해요. 익숙해지면 오히려 직원이 하는 것보다 스스로 주유하는 게 더 편해요.
기자: 주유소에 세차장도 함께 있는 곳도 많죠. 세차장 셀프서비스를 이용해 보셨나요?
이순희: 셀프세차도 해봤죠. 그런데 남한에서는 셀프세차는 직접 손으로 하는 세차를 의미하고 기계식 세차가 또 있어요. 기계식 세차도 따로 사람이 나와서 안내할 필요 없이 일정 돈을 내고 티켓을 받으면 기계들이 알아서 세차를 해주더라고요. 자동차를 세차장 안으로 몰고 가서 규정 속도에 맞춰서 서서히 움직이거나 아니면 바퀴를 레일에 딱 끼워놓으면 알아서 천천히 움직여요. 그러면 순서에 따라서 비눗물, 걸레, 바람이 나오면서 세차를 5분 이내로 끝내버려서 얼마나 편리한지요.
기자: 이러한 셀프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기계로 돈을 내야 하니 현금은 안되고 카드만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요즘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도 많아졌죠?
이순희: 네, 맞아요. 키오스크라고 하는 무인 주문 기계가 정말 많아졌거든요. 예전처럼 사람이 직접 주문을 받고 돈 계산을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 키만 한 기계가 하나 서 있어서 그 기계에서 손님이 직접 음식도 주문하고 계산도 직접 해요. 다만 아직 어르신들은 이런 기계를 다루는 법에 익숙하지도 않고 또 현금으로 결제를 원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현금 결제를 아예 받지 않는 매장도 많아지니 불편을 호소하는 분들도 많아요.
기자: 이순희 씨께서 직접 키오스크를 이용해 보니 어떠셨나요?
이순희: 사용법을 잘 모르면 짜증 나겠더라고요. 저도 처음에 이용할 때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버벅거렸어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는 무인 가게에서는 그냥 나온 적도 있죠. 저번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데 (키오스크 사용법을)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매대에 가서 “아이고, 잘 모르겠는데 그냥 주세요” 하니까 그분이 키오스크에 와서 저에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면서 계산을 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한번 익숙해지고 나니까 키오스크 사용법이 거의 비슷해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어요. 특히 남한에서는 버스나 기차표를 살 때도 기계로 살 수 있는데요. 예전에는 매표원이 일일이 목적지랑 탑승 시간을 물어보고 표를 끊어줘야 해서 줄이 엄청나게 길었거든요. 그런데 키오스크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여러 대를 둘 수 있고 사람들이 직접 빠르게 끊을 수 있으니, 기차표를 끊기 위해 섰던 줄들이 거의 사라졌어요. 방법만 알면 쉽고 빠르니까 오히려 예전에 사람이 일일이 해주던 것보다 더 편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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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음식점, 기차 역전 외에도 키오스크를 도입한 곳이 매우 많은데요. 또 어떤 곳에서 셀프서비스 혹은 키오스크를 접해보셨나요?
이순희: 이번 여름이 유난히 더웠잖아요.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 먹었는데요. 집 주변에 무인 셀프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있어서 이곳을 자주 갔어요. 그 매장에 가면 바구니부터 준비돼 있고요. 그 바구니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담아서 가게에 설치된 계산대에 가서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으면 값이 계산되고 카드를 꽂아 계산하면 돼요.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빵집이나 마트도 이런 곳이 많은데요. 또 동사무소에 가서 키오스크로 혼자 공문서도 뗄 수 있고, 무인 빨래방에 가서 세탁기와 건조기도 혼자 이용할 수 있어요. 남한에는 셀프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 정말 많죠.
기자: 어르신 중에는 키오스크와 셀프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을 텐데요. 남한에 이분들을 위한 배려나 정책도 있나요?
이순희: 그럼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이런 새로운 기계를 이용하기 어려워하시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이를 대비해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상대로 교육해 드리고 실습도 도와드려요. 이를 통해서 사용법을 터득한 어르신들도 세상 편리하다고 좋아하시기도 한답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셀프서비스 문화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