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세계에 단 세 개뿐인 세습독재
2025.01.10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광복 80주년인 올해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올해는 어떤 운명이 저와 북한 인민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가족이 건강하고 처벌받지 않고, 가난한 살림에도 가족간 우애가 돈독해지고 돈 많이 벌어 살림살이가 폈으면 하는 소망은 지구 어느 나라나 다 똑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보위부, 안전부, 당 이런 권력기관 간부들이 인민들 뜯어내지 않고 말 잘못했다고 잡아다 반동으로 처벌하는 그런 일이 줄어만 들어도 전체 인민이 행복해 질 겁니다.
저도 올해로 기자 생활 시작한지 23년째가 됩니다.
북한 같은 독재국가의 해방이 저의 목표다보니 자연스럽게 국제 뉴스를 보면 독재국가의 운명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참 많은 독재국가들이 붕괴됐습니다. 그걸 보면서 영원한 독재는 없고 결국엔 무너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어찌하여 북한만 이런 순리에서 벗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시리아의 악명 높은 알아사드 세습 독재가 붕괴됐습니다. 알아사드 정권은 부자가 54년이나 철권통치를 했지만 끝내 인민의 봉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9월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자가 56년을 집권했던 가봉에서 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알리 봉고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2018년에 부자가 합쳐서 30년을 통치한 콩고에서 대통령이 더는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세습 독재를 중단한 일도 있습니다.
아프리카도 이 정도 상식은 있는 겁니다. 북한처럼 왕조가 아닌데 부자 세습을 하는 나라는 이제 세계에 북한을 제외하고 단 2개가 남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제르바이잔인데, 소련이 붕괴한 이후인 1993년부터 부자가 32년째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긴 아들이 2003년부터 집권해 성적은 꽤 좋습니다. 2003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850달러였는데 지금은 7,155달러에 이릅니다. 20년 동안 8배 더 잘 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김정은도 그렇게 만들면 비난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북한은 3대 세습을 하는 동안 인민이 점점 가난해지니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은 외국 여행 제한도 없고 북한에 비하면 완전히 정상적인 나라입니다. 물론 북한과 비교 불가란 뜻이지, 여기도 빨리 세습을 끝내야죠.
나머지 한 국가는 인구 900만의 작은 나라 토고라는 곳인데 이곳은 부자가 44년을 집권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북한과 완전히 다릅니다. 시민들이 항의 시위하니 대통령 아들이 세습을 받았지만 일단 물러났다가, 국제사회에서 참관한 선거를 통해 다시 집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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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부자세습 독재 국가가 이렇게 겨우 2개인데, 이들 국가도 북한처럼 3대 세습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80년입니다. 그뿐입니까. 김정은은 김주애까지 내세우면서 4대 세습 야욕을 불태웁니다.
저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왜 북한 인민이 세상에서 가장 후진 세습 독재에서 살아야 합니까. 우리 민족이 아프리카 나라들도 하는 혁명 하나 못하고 가난 속에 죽어가야 합니까. 남한은 세계가 경탄하는 경제발전을 만들어 내는데 어찌하여 북한의 운명은 노예 봉건제 하나 타파하지 못하고 있는지 너무 비참합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대다수 군사독재국가들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혁명으로 결국 체제가 망했습니다. 쟈스민 혁명, 오렌지 혁명 이런 이름의 혁명들이 중동과 중앙아시아국가들에서 일어나 철권통치를 하던 독재자들이 축출됐습니다.
물론 그냥 순순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혁명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리비아, 시리아가 대표적인데,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뒤에야 독재가 막을 내렸습니다. 독재의 강도가 셀수록 독재자를 몰아내기 정말 힘이 듭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아온 독재국가들의 붕괴는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피의 봉기는 한 점의 불씨로부터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2009년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쟈스민 혁명의 시초도 한 청년이 독재 체제 하의 궁핍한 생활에 못 견뎌 분신자살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한국에서 청년 김주열의 죽음이 4.19혁명을 불렀고,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이 88년 민주항쟁을 불러온 것과 매우 유사하죠.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너무나 통제와 감시가 심해서 철옹성 같을 줄 알았던 독재국가들에서도 어느 날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에 분노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했다는 짤막한 보도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이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내전으로 번지는 것을 저는 기자로 목격했습니다. 마치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마른 덤불에 불꽃이 던져지듯 타올랐습니다.
아마 북한에서 봉기가 일어난다면 최소한 수십 만 명은 희생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엔 한 점 불씨도 타오르기 어렵습니다. 체제에 반항한다는 것은 이름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저부터도 남쪽에 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그 탈출마저 목숨을 여러 차례 내걸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엔 늘 끓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문합니다. 만약 북한에서 항쟁이 벌어지면 너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서울에서 안온한 삶을 살고 있는 제가 북한 인민과 함께 목숨을 걸 수 있을지 부끄럽지만 아직까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용기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슴 속에 자그마한 용기가 남아있을 때 어쩌면 저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때, 북한에서 자유와 민주를 위한 인민의 목소리가 화산처럼 터져 나오길 바랍니다. 자유 없는 80년 세습은 이미 너무 긴 세월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