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이 곧 헌법인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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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미 노동신문 등을 통해 알고 있겠지만, 한국은 지금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탄핵 위기에 처했습니다. 비상계엄령은 북한으로 치면 준전시상태쯤 될 겁니다.

행정부 수반은 여당 ‘국민의 힘’ 출신인 윤 대통령이 맡고 있는데, 입법부인 국회의 다수당은 야당인 민주당이라 여러 가지로 대립이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운영이 어려워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는데, 한국의 헌법에는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국회의원 과반수가 해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날 밤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190명이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를 의결했습니다. 이러면 계엄령이 없던 일이 됩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는 6시간 만에 무산됐습니다. 야당은 대통령의 이번 비상 계엄령 선포를 ‘내란죄’라고 주장하면서 탄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에서 살다 온 일부 탈북민들은 한국에 오래 살아도 이걸 이해 못해서 저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령 선언 권한이 있는데 이게 왜 ‘내란’이냐는 것입니다.

헌법에는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을 “전쟁이나 국가적 자연재해인 경우”로 규정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실시하게 된다”고 돼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헌법의 이 조항을 근거로 국회에 군대를 동원해 무력화하려 했다면 ‘내란’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번 계엄이 야당인 민주당의 주장대로 내란인지 여부는 앞으로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대목입니다만,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법을 위반하면 한국에서는 처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가 새로 공부해야 했던 것이 바로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개념입니다.

법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고 평등하다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많고, 돈이 많아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삼권분립은 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입니다. 입법부가 국회이고, 사법부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고, 행정부가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총리, 장관 등으로 구성된 정부 부처입니다. 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기관들인데, 어떤 기관이 다른 기관을 무력화하려 했다면 이는 매우 엄중한 사안입니다.

이런 것은 북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북한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 김 씨 일가가 지배하는 무법의 왕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습니다. 그리고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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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북한의 헌법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헌법 제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이고 제2조는 “혁명적인 국가”, 3조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이고, 4조에 가서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고 돼 있습니다. 거기에 또 서문에 김일성 동지가 어떻고, 김정일 동지가 어떻고 하면서 장황한 세 페이지짜리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북한 헌법을 요약하면 “주권은 인민에게 있지만,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위반할 수는 없다”가 핵심입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주권자인 인민이 원하면 무엇이든 해야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예전에는 북한 헌법 1조와 2조가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고 적시돼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 바뀐 헌법은 이것도 귀찮은지 다 빼거나 뒤로 미뤘습니다. 물론 북한 헌법을 운운하는 것은 한심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 중에 헌법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고, 그게 지켜진다고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권 행사기구라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철저히 노동당이 선출한 사람만 되고 반대투표를 할 수도 없습니다. 허수아비 대의원보다 노동당, 보위부, 안전부, 행정위원회 간부가 훨씬 높으니 대의원은 권력도, 인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여기는 법을 정했으면 그게 하늘입니다.

북한식 사고로 보면 김정은이 인민의 주인이지만, 한국에선 대통령도 헌법에 따라야 합니다.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법 위에 서겠다고 하면 국민이 좌시하지 않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권력자가 얼마나 인민에게 위험한 지는 북한을 보면 압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곧 헌법입니다.

북한의 헌법과 한국의 헌법은 나라마다 존재할 수 있는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법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의 헌법은 법의 껍데기를 쓴 통치령일 뿐입니다. 그 통치령 하에서 북한 인민은 매 순간 김정은이 선언한 비상계엄 속에 삽니다. 김정은의 지시에 어긋나면 죽거나 감옥에 가야 합니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감옥에 보냅니다. 그것이 바로 주권을 가진 국민의 힘입니다. 북한 인민에게 정말로 헌법 구절처럼 주권이 있다면 여러분이 김정은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 인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 인민도 진정한 주권을 가진 인민으로 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정의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