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동생가족의 비극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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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접경한 압록강변의 북한 초소 옆에서 경비병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과 접경한 압록강변의 북한 초소 옆에서 경비병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손전화기에 국제 전화가 연속 들어옵니다. 고향에 있는 동생들의 전화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전철 안이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 울리던 전화가 끊기고 낯모를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받아 보니 한 탈북여성의 전화였는데 지금 윗동네(북한)에서 제 동생 둥내가 애타게 통화를 기다린다는 전화였습니다.

제 형제가 자그마치 7형제가 되다보니 둥내라고 해야 인차 알 수가 있거든요, 전화하는 것이 도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전철에서 내려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 가 걸려온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정말 동생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5년 만에 통화하는 동생이라 제 목소리를 알아보는 순간 눈물부터 흘립니다.

조급한 생각과 마음으로 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은 나중에 흘리고 계좌번호부터 부르라고 뜬금없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상대방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 오는듯한데 눈물은 나중에 흘리고 계좌번호부터 부르라고 하는 저를 어이없는 듯 쳐다보며 핀잔을 합니다.

동생은 낯익은 중국 전화번호를 불러 주며 그곳에 전화해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면 된다고 합니다. 전화기를 잡고 한참을 울던 동생이 그제야 안부를 물어 옵니다. 건강한지, 아픈데는 없는지, 조카들도 건강하게 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당당히 이 언니 역시 좋은 세상에서 좋은 것을 먹고 아픈데 없이 건강하다고 그리고 우리 아이들 소식도 전했습니다.

저 역시 그동안 궁금했던 고향 소식과 형제들의 안부를 차근차근 물었습니다. 동생은 지난달 부모님 산소에도 다녀왔고 형제들은 모두 잘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조카들의 안부를 물으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인 평양에 있는 한 조카는 5월초에 출근길에 자동차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고 또 군의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넷째 동생의 아들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나이가 32살이었답니다.

그리고 넷째 동생의 둘째 아들은 군복무를 하던 중 늑막염으로 집에 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아들은 군복무중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작은 아들은 군복무중 늑막염 진단을 받고 집에 와 있으니 이제는 눈에 눈물이 다 마르고 한숨만 짓고 있다고 합니다. 전화 통화를 하는 둥내 동생은 고혈압 합병증으로 인한 당뇨병으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고 커피숍 도로 건너편에 있는 국민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보내 주고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와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환율은 한국 돈 100만원에 인민폐 5660위안이라 합니다. 그중 송금 브로커가 20% 뗀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통화하는 저를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커피숍 사장님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세상에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는 가고 한탄을 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로 불과 4시간이면 서로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고향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고향을 두고 동생과 전화로도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비극의 현실을 두고 저는 2시간 넘게 멍멍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7시간 동안 찜통에 찐 계란을 한 사람당 한 알씩 가져다줍니다. 순간 알지 못할 뭔가로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왜, 나이 어린 조카들이 모두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그렇게 됐을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인 내 동생들이 마음이 어땠을까, 가슴이 얼마나 아프고 쓰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제 마음은 더더욱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었다가 단련대에서 3일 만에 탈출해 갈 곳이 없어 헤매고 있을 때, 군복무중 심장마비로 죽은 그 조카가 두만강까지 두 다리가 퉁퉁 부어 걸을 수 없는 저에게 이모는 빨리 두만강을 건너야 살수 있다고 하면서 강기슭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깊은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제 모습을 보고 어린 나이에도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희미해지는 어린 조카의 울음소리를 뒤에 남긴 채 이젠 죽었구나 했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중국 룡연이라는 마을 한 할머니 집에 제가 누워있었습니다. 지금도 악몽 같은 현실그대로 꿈속에서 소스라쳐 놀라곤 합니다. 탈출 과정 그 어린 조카에게 많은 의지를 했었고 그에게 내 생의 은혜갚음도 하기 전에 군복을 입은 채 심장마비로 죽어 어린 나이에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너무도 쓰리고 아팠습니다.

동생은 마지막 인사로 언니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당부합니다. 저는 그래 통일이 될 때까지 죽지 말고 우리 서로 건강하자고 당부 했습니다. 아들은 말합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우리 가족들에게 전하자 평양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차사고로 죽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둘째 딸은 당분도 많이 먹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모가 당뇨병에 걸렸을까,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나이 많은 분들이 고혈압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고혈압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몸이 뚱뚱해서가 아니라 몸이 약한 사람도 고혈압에 걸리고 그 합병증으로 당뇨가 온다고 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에 걸리면 약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왠지 통일이라는 말을 하기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쳐 숨진 어머님, 또 통일이 되면 만나자던 어린 조카들도 하나둘 이유 없이 하늘나라로 가고 또 이제 남은 동생들도 하나둘 병들어 갑니다. 하루하루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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