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실체: 김부자의 가계 3

200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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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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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교과서에 실린 김정숙 가계 우상화에 대한 내용 - PHOTO courtesy of Free North Korea Radio

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일성 김정일 가계의 우상화에 대한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가계 우상화는 최근 들어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가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앞서 김정숙의 남동생 김기송에 대해서는 일제에 대항한 소년 혁명가라며 어느 정도 우상화 작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기송 외에 김정숙의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김정숙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동생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특별히 우상화할 가족도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새로 출판된 북한의 교과서에 김정숙의 부모님, 즉 김정일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북한의 새 교과서에 따르면, 김정숙의 아버지 김춘산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조직했다는 '조선국민회'에 가담해 만주를 오가며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새 교과서는 김춘산이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결국 일본군에게 쫓기다 동상에 걸려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숙의 어머니이자 김정일의 외할머니는 이름은 없고 그냥 오씨 여사라고만 묘사되어 있는데요, 오씨여사도 역시 독립운동에 나선 남편을 적극 돕고 자식들의 혁명투쟁을 도운 애국 여성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민주화 위원회 손정훈 위원장은 김일성의 가계에 이어 김정숙의 가계 역시 혁명 가정임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를 정당화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손정훈: 제가 북한에서 교육을 받을 때는 김정숙의 부모님이 어렵게 살았고 일제 시대 때 남의 집 머슴 살다가 일찍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김정숙의 부모들까지 나라에 이바지 했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거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은 김정일이 후계자문제 때문에 자기 가문을 미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김정숙 본인에 대한 우상화는 이미 김정일의 1인 지배 체제가 굳어지던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김정숙을 김일성과 김정일과 함께 이른바 '백두산 3대 장군'이라고 부르며, 그녀의 항일 운동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중심으로 우상화 교육을 했습니다.

각 부대와 관공서, 그리고 가정에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와 함께 김정숙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북한은 김정숙이 1931년 14살의 어린나이에 항일투쟁에 가담한 뒤 1935년 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해 만주와 백두산과 무산, 두만강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며 '위대한 어머니'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김정숙은 김일성 빨치산 부대에서 밥 짓고 빨래하는 등 일반적인 빨치산 여성들이 했던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호열: 김정숙씨가 실제로 한 역할보다는 김일성 부대에서 일을 하다가 김일성과 결혼을 해서 김정일을 낳았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높이 평가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김정숙이 보통의 일반적인 빨치산 활동가이지 않았나, 개인의 혁명 역량은 확인할 자료가 없습니다.

한편, 김정숙은 김정일이 8살 되던 때, 자궁 외 임신으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김정숙의 나이는 32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김정일은 김정숙의 우상화에 유별난 집착을 보이는데요, 김정일은 권력을 잡은 후 김정숙과 김일성을 동일시 하는 우상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김정숙의 생일인 12월 24일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과 함께 북한에서 중요한 3대 기념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가계 사람들 가운데 김정숙의 이름을 딴 행정구역과 학교가 가장 많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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