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고아 사랑’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4.06.30
orphan_house_305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아 양육시설인 평양육아원·애육원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담은 25일자 노동신문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2단계 고아 사랑’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고아는 불행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 운명을 맞닥뜨린 고아는 참으로 불쌍합니다. 헌데 이 세상에 고아 없는 나라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가난한 나라나 부유한 나라나 고아가 있습니다.

고아는 대개 헐벗고 춥고 배고픕니다. 굶주린 고아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물을 주며,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본 정신입니다. 고아를 측은히 여기고 듬뿍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딱딱한 이념을 초월합니다. 고아를 내 자녀처럼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믿음은 모든 종교의 핵심 교리에 닿아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과 이후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는 비극을 겪은 북한에 고아가 적지 않으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장마당 거리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꽃제비들의 비참한 광경은 이미 오래 전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외부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도 이제 어엿한 아버지이니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아의 모습에 마음 편할 리 없을 겁니다.

김정은이 얼마 전 평양의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아들을 보고는, “올해부터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매일 300그램씩 먹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육아원과 애육원 방문 땐, “아이들에게 영양가 높은 곶감도 정상적으로 먹여야 한다”고 강조했답니다. 아울러 각 도와 직할(광역)시에 유치원 취학 전 고아를 위한 육아원과 유치원 나이의 고아를 키우는 애육원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평안북도에 15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애육원 세 곳이 건설 중이라고 합니다. 애육원이 완공되면 고아들은 이곳에서 쌀과 잡곡을 반반 섞은 밥에 물고기 반찬을 먹게 됩니다. 김정은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각 도에 보통 3-4개의 애육원이 들어설 전망입니다.

춥고 배고프지 않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고아는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아들은 물질로 채울 수 없는 허전함에 수시로 멍하니 하늘을 쳐다봅니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부모 없는 삶을 버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한여름 햇빛처럼 쏟아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가슴으로 울기도 할 겁니다. 고아에겐 사랑이 절실합니다. 북한 주민이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지만, 생활이 팍팍하다 보니 그도 여의치 않습니다.

1970년대 말 제가 대학생 시절, 학비를 벌려고 수년 간 고아들과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에도 고아가 적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의 고아들과 미국의 후원자들이 주고받는 편지를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고아들은 미국의 후원자에게 고사리 손으로 구구절절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편지를 썼고, 후원자들은 고아들이 꿋꿋하게 잘 커가도록 사랑의 글을 보냈습니다. 후원자의 편지에는 고아에 대한 사랑이 넘쳤습니다. 후원자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상하게 설명한 편지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나이의 고아에겐 큰 포부를 가지라고 힘을 북돋워 준 편지도 기억납니다. 고아들은 미국에 사는 후원자들이 보내오는 편지와 사진에 힘을 얻었습니다. 먼 나라 미국에서 생면부지 외국인이 사랑을 베푼다는 사실에 고아들은 부모 없는 설움을 상당 부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답신에 그런 마음이 담겼습니다.

김정은은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애육원을 많이 지어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1단계 고아 사랑’을 실천하려 합니다. ‘1단계 사랑’이 충분히 전해졌다 싶으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아들에게 결핍된 부모 사랑을 대신할 ‘2단계 사랑’을 궁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단계 사랑’은 고아의 몸을 챙기지만, ‘2단계 사랑’ 없인 고아들 마음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지금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아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지만,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2단계 고아 사랑’은 얼마든지 실천 가능합니다. 미국의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과 연계해 미국의 후원자를 수소문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오면 인심 좋은 미국인들이 북한 고아를 후원할 겁니다. 친부모는 아니지만, 북한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할 겁니다.

고아를 보살피려는 게 김정은의 진심이라면 ‘2단계 고아 사랑’ 구상에 “그만 됐다”며 손사래를 칠 일이 아닙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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