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가와사끼 씨, 북한 가족에 7차례 보낸 물품 한꺼번에 돌아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10-1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재일 동포들이 북송된 지 60년이 되는 작년 12월 북송선이 떠난 니가타항에서 가진 행사에서 가와사끼 에이코씨가 선언문을 낭독하고있다.
재일 동포들이 북송된 지 60년이 되는 작년 12월 북송선이 떠난 니가타항에서 가진 행사에서 가와사끼 에이코씨가 선언문을 낭독하고있다.
/NGO ‘모두 모이자’

조총련 북송사업 탈북자 가와사끼 에이코 씨는 지난 2003년에 탈북한 이후 북한에 남아 있는 자녀들에게 현금을 보낼 수 있는 여력은 없지만, 꾸준히 생활용품 옷 과자 등 간단한 물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보낸 물품들이 북한 자녀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돌아왔다는 일본 체신국 통보를 받고 찾아왔는데, 거의 7차례 보낸 물품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고 가와사끼 에이코 씨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에이코 씨는 요즘 자녀들이 한참 겨울 준비를 해야 할 때 이런 물품까지도 받지 못해 더욱더 어려운 살림살이가 될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에 보낸 물품이 북한 가족에 전달되지 않고 돌아온 것과 관련해 조총련 북송사업 탈북자 가와사끼 에이코 씨와 이야기 나눕니다.

일본 자녀들에게 보낸 물품들이 되돌아왔다고요. 자세히 전해 주시지요.

가와사끼: 북한에 자식들이 아직 4가족이 남아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자식들에게 (나 자신이 나이도 80이 다 됐고,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돈은 많이 부쳐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물품들을 보냅니다. 한 번에 15킬로 정도로 옷가지라든가, 일상 필수품, 일본 맛을 보라고 새참으로 먹을 수 있는 과자 등을 넣어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열흘 되었을까요? 일본 우체국에서 북한에 보낸 짐이 되돌아왔다고 연락이 와 찾아와 보니 7번에 걸쳐 보낸 게 한꺼번에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올해에 보낸 게 거의 다 돌아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중국과의 국경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항공으로 보낸 게 아니라 배편으로 보냈거든요. 그렇게 하면 일본에서는 아마 대련으로 갈 거에요. 대련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게끔 루트가 된 것 같은데, 그사이 아마 혹시나 들어갈 수 있을까 해서 가지고 있었는지 몇 달 치, 한 반년치가 될 것 같은데 7번 보낸 게 한꺼번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 자식들은 그 물품을 보내 주면 그 안에 돈 될 만한 것은 암시장에 팔아서 생활비로 쓰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제 다 돌아왔기 때문에 그 애들은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어요. 그래 제가 지금 굉장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추위가 닥쳐오는데 이 가을에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봄날까지 땔 수 있는 무연탄을 준비해야 하고 또 식량도 그렇지요. 식량은 다음 해까지 먹을 수 있는 채비를 해야 하는데 이제 못하게 됐을 겁니다. 요즘 나는 원래 불면증인데 요즘 자주 자지 못해요.

일본에 사는 다른 탈북자들 경우는 어떻습니까?

가와사끼: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봤는데 다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안 보냈다니까 저처럼 7번째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요사이 몇 가정도 물건이 돌아왔다고 해요.

작년 말 재일 동포들이 북송된 지 60년 맞은 행사를 했다고요.

가와사끼: 작년 12월 14일이 일본에서 재일 동포들이 북한으로 북송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맞으면서 제가 대표로 있는 ‘모두 모이자’하고 대표이사로 있는 AKU JAPAN,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협력해서 북송 60년 행사를 니가타 호텔에서 작년 12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서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탈북자들과 한국에 있는 (일본에서 북송되었다가 탈북한) 탈북자들을 초빙해서 그래서 13일 저녁에 연회를 하면서 예술공연도 하고, 아주 성대하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4일은 아침 일찍이 제1차 북송선이 떠난 니가타 항구 부두로 가서, 거기서 또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탈북단체들 대표들이 스피치도 하고, 무용도 했는데 무용은 북송사업에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 무용이었습니다. 이틀간의 행사가 아주 잘 진행됐는데, 13일의 일본의 여러 보도 기관들, TV 신문사들이 많이 왔습니다. 13일 행사가 잘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14일 행사에는 정말 일본의 유명 TV와 신문들이 취재했습니다. 그날에는 니가타 행사에 관한 보도로 일색화 됐습니다.

행사 참가자들 반응도 들려주시지요.

가와사끼: 일본에서 조총련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갔다가 탈북해서 한국에 정착해 있는 분이 생각나는데요. 그중에 나이 드신 분이 계셨거든요. 그때 아들인지 손자와 같이 왔던 탈북인은 자기는 살아서 일본 땅을 다시는 밟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고 아주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주 우리가 일체 비행기표, 호텔 등 우리 부담이었거든요. 상당히 돈도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그 행사는 참 의의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참가한 사람들 탈북자는 물론이고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 또 일반 재일 동포, 니가타에 계시는 재일 동포들, 우리 조직에 속한 일본인들, 또 우리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본인들, 모두 감격했었어요. 아니 이렇게 큰 행사를 한 줄은 생각 못 했다며 앞으로는 좀 돕겠다고 했어요.

재일동포 북송사업 60년 행사의 큰 의미가 있다면

가와사끼: 김정은 정권 이전에 일본에 살던 재일동포들이 부당하게 북송되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도 60년 전에 일이기 때문에 인식에서 다 사라졌거든요. 최근에 와서 우리 탈북자들이 일본 여기저기서 강연도 하고 공연도 하고 TV에도 나오고 여러 가지로 조금씩 알려는 줬습니다만, 그래도 60년 전에 어떤 비인도적인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걸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히 일본과 국제사회에 북송사업의 부당성과 왜 북한을 탈출해 오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그런 의미가 있고, 또 조총련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렇게 행사를 함으로써 당신들이 그렇게 북한과 짜고 재일 동포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들여보냈지만, 살아서 돌아온 우리로 인해 앞으로 ‘지난 잘못된 사업을 바로 잡는다’는 것에 대한 의의도 있다고 봅니다.

니가타 항구에 버드나무 거리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 주시지요.

가와사끼: 북송사업으로 떠나기 전에 일본 니가타 거리에다가 기념으로 버드나무를 심었었어요. 그리고 거리 이름을 버드나무 거리라고 짓고, 일본 정부도 아주 좋은 평가를 했었어요. 근데 작년 우리가 행사 하면서 보니까 보충했다고는 하지만, 버드나무가 쓰러진 것도 있고 해서 완벽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자금을 모아서 버드나무 거리에다 식수를 번듯하게 하자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일본이 납치와 관련한 소식 있으면 전해주시죠.

가와사끼: 제가 스가 총리가 취임하기 전에 일본 고위 관리를 만났거든요. 만나서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김정은 정권이 이제는 막바지 고비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끝장난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납치 피해자를 빨리 일본으로 데려오지 않는다면, 잘못하면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그분에게 또 지금 우리가 하는, 탈북자들이 하는 북송사업에 대한 부당성도 상기시키고, 납치 피해자들의 문제와 같이 북송선을 타고 간 사람들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에서 구제법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에 보낸 물품이 북한 가족에 전달되지 않고 돌아온 것과 관련해 조총련 북송사업 탈북자 가와사끼 에이코 씨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