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에 팔린 탈북여성들의 아기 강제낙태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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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에 팔린 한 탈북여성이 중국에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족에 팔린 한 탈북여성이 중국에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P Photo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은 고난의행군 시절 350만여 명이 대량으로 아사한 것을 비롯해 정치범 수용소와 각종 노동교화소 등지에서 조직적인 대량 학살이 일어났고 특히 여성들은 탈북과정에서 성폭행과 인신매매로 정신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묶어 놓고 개인의사를 데려다가 하체를 벗기고 임신을 할 수 있는지 검사를 하는 겁니다

탈북민들로 구성된 ‘북한의 대량학살을 멈추기 위한 세계연대 회원들이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인권 문제를 반드시 미북정상회담에서는 꼭 제기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시대 이 단체의 회원인 가명의 김보민씨를 만나봅니다.

음악:

대량 학살을 멈추기 위한 세계연대는 그동안 많은 주민들, 특히 많은 가정의 가족들이 대량 아사했고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각종 노동교화서와 집결소 등에의 조직적인 학살은 북한당국에 의해서 일어난 대량학살로 규정할 것을 미 국회에 호소 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정부는 지난 70년간 정치 테러 6.25 남침 집단아사, 강제노동 수용소  인종청소 등을 통해 자국민을 체계적 집단적으로 학살한 살인 깡패 집단입니다. 우리한민족은 북한의 집단 학살을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북한주민들을 보호할 책임을 다 할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호소문을 낭독한 가명의 김보빈 씨는 자신도 북한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한 피해자의 한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평범한 가정의 딸로 학교를 졸업하고 종양장에서 농사일을 하다 새로운 장사 길을 찾아 나선것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김: 18살에 어머니가 사망하시면서 농촌에서 시내에서 양파를 사가지고 장거리 장사를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해도 빛이 없는거에요 그래서 누구인가의 소개로 한달만 중국에가서 돈 벌어오면 장사할 수 있는 밑천 돈을 쥘수 있다고 해서 두만강을 건넜는데 인신매매로 팔려간거죠

보빈 씨는 당시 집안이나 주변에 탈북한 사람들이 없어 인신 매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하는데요,

김: 97년도 98년도에 두만강을 건너다닌 사람들은 팔려 가는것을 알았데요, 그런데 저는 첫  탈북을 2003년도에 했고 가족중에 한명도 탈북을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돈벌러 간다고 소개를 받았으니까 돈벌러 간 겄이었는데 알고 보니 팔려간것이었어요 산골짝으로 팔려가서 도망을 칠래야 도망 칠 수가 없었어요

내막을 알고 보니 조선족 브로커, 중개인들이 탈북여성들은 안내한다며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간 다음에 각 지역에 조직적으로 연계된 중개인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김: 저희가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널때 군대등에 업혀서 건넜거든요 두만강을 건너 보니 조선족 브로커가 있는거에요 . 그 조선족 브로커가 자기네집에 데려가서 중국 사람들을 모집하는거에요 지금 몇살 살짜리 나이어린 여자가 왔는데 한족 사람들 중 누가 사겠는지 그런데 또 여러갈래의 지방마다 브로커가 있는거에요

당시 김보빈 씨가 팔려 갈때 3명의 탈북여성들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그 중 한사람과 같은 동리로 팔려 갔기는 했지만 도저히 만날 수도 없었다고 하는군요

김:  한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한 분은 우리동리에서 같이 살다가  몇달 전에 미국 시카고에 정착해서 살고 있어요  팔려간 곳이 중국에서 정말 결혼을 할 수 없는 상대, 이런 사람들에게 팔려가니까  너무 아픈 마음들을 가지고 살죠

보빈 씨는 자신보다 3살 위인 한족 남자에게 팔렸는데 팔려간 첫날 임신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기 위한 신체검사를 받았던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김: 가니까 저를 신체검사를 하는거에요 병원에 데려가 피임기구인 루프를 했는지 확인 하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묶어 놓고 개인 의사를 데려다가 하체를 벗기고 검사를 하는 겁니다 임신을 할 수 있는지….돈을 목적으로 루프를 하고 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기를 가질 수 없는지를 확인하는거에요

이렇게 팔려가서 그집에서 울고 불고 하면서 자살까지 시도를 해 보았지만…

김: 5-6개월을 울고 밤잠을 안자면서 죽으로려고 3번 자살 시도를 해 보았는데 죽어지지 않더라고요 결국은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수도 없으니까 이제는 살아야 하는구나 해서 4년간 그 한족 남자와 동거를 했죠

모두가 한족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 텔레비젼을 통해 말을 배웠습니다. 그나마 북한에서 배웠던 한자가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김: 텔레비젼을 켜놓고 살다시피 했어요 왜냐하면 북한에 있을때 한자를 배우다 보니까 아니다 하면 아니 부라는 한자글을 써서 일일이 책에 적어가면서 또 문을 밖에서 두드리면 안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텔레비젼을 통해 배우면서 살았어요

이렇게 살면서 가족들에게 폭행을 당하기가 일쑤였다는데요,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상해 수준이었던 거죠

김: 그 동리애 조선에서 온 분이 어린애가 있는데 말을 몰라 밥도 안먹고 운다고 해요 그런 전화를 받고 나도 그런 아픔을 당했으니까 가서 얼굴이라도 봐주러 가려고 했는데 시집에서 못 가게 하는거에요 그래서 내 주장대로 나가려고 하니까 저를 때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금니가 나간 상태에요

돈 주고 산 물건같은 취급 완전 노예취급을 했다는데요, 그러면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발각되어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김: 경찰이 와서 한족과 동거는 할 수 있는데 아기는 낳을 수 없다, 그래서 경찰이 산부인과에 데려가서 10일있으면 세상에 나올 애기를 정말 주사바늘이 10센티는 되는 것 같아요 그 주사에다 약을 넣고 배에다 찔러 넣어서 24시간 지나니까 정말 출산을 하는 것처럼 아프면서 그냥 해산하는거에요 그런데 아기가 살아서 나오니까 그 아이의 목을 눌러 그 아기가 혀를 가로 물고 죽었어요 정말 그 당시 너무 힘들었어요 그 후로도 탈출을 못하는 상황이에요 동리에 다 친척들이 함께 살고 있어서 감시를 하니까 내가 한발 짝만 띄어도 누군가 같이 따라 나서요 그래서 동거 하던 한족 남자와 그 지역을 떴어요

동리 친척들의 감시를 피해 다른곳으로 가서 살다가 다시 딸을 낳았는데 하지만  시집에서는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드릴 수 없다며 사람취급도 안하더라는 겁니다.

김: 그 집네서 자기네는 아들이 필요하지 딸을 낳았다고 인정하지 않으니까 제가 더이상 그집에서 노예로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돌 지나서 그 아이를 데리고 연변쪽에서 한국 관광객들은 대상으로 백두산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살았어요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는데요 점점 더 심해져 병원을 찾았더니 자궁암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김: 한국 대구에서 오신분을 만났는데 한국은 자궁암이 병이 아니다 수술하면 바로 나을 수 있으니 한국으로 가라고 해서 2007년도 7월에 저희 딸은 보육시설에 맡기고 한국행으로 떠났어요

2007넌 7월 9일에 떠났는데 몽골 국경에서 잡혀 다시 북송 되었는데요, 북송된후 23일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각목에 맞으면서 사람이 먹을 수도 없는 하루 한끼의 음식으로  견딜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 몽골 국경에서 잡혀 다시 북송되어서 23일간을 정말 힘들게 조사를 받고 각목에 맞으면서 그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조사 받으러 나갈때는 걸어나갔다가 들어올 때 끌려서 들어왔는데 하루에 한끼밖에 먹지 못했어요 개 돼지도 안먹는 술 뽑고 나온 찌꺼기를 그것도 많아야 2-3스푼, 그 정도를 먹이는 거에요 이런 것을 먹고 장염에 걸리고 혈변을 싸면서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그 때 하나님한테 많이 원망 했어요 하나님 믿으면 좋은일만 생긴다고 했는데 왜 이런 아픔이 있는지 그때 저는 딸을낳고 교회에 나가 60일만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딸을 낳고 조선족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은것이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큰 힘이었다고 전합니다.

김: 초보의 초보 신앙이라도 없었다면 저는 아마 맞아 죽었을거에요 그런데 이런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호 하셨더 것 같아요 온성 보위부에서 많은 힘든 과정을 거쳤고 내가 살던 지역의 담당 보위부로 이송이 되었는데 한 보름이 지나니까 저를 정치범 수용소에 갈 대상은 아니고 경제범 수용소에 노동교화소로 갈 대상이 되어 구치소 올라가기전 대기소로 갔어요.

대기소에는 탈북하다 중국에서 잡힌 분들, 중국에서 숨어살다 잡혀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먼저 들어온 탈북민들이 감찰과 부과장이 여자들을 성추행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당시 보빈씨는 자궁암 진단을 받은 상황이라 한편으로 안심을 했다고 말합니다.

김: 저는 그때 자궁암 진단을 받다보니 피임, 루프를 안하고 나왔어요 대기소에 가서 바로 3일만에 제가 성폭행을 당했어요 아무리 아우성을 치고 발버둥을 쳐도 누군가가 밖에서 들어와서 저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어요 자궁암이라고 해도 들어주지를 않아요 일단 목표로 했으면 그 인간들이 노리개로 밖에 생각을 안해 결국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한 40일 지난뒤 임덧을 해서 임신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북한의 대량 학살을 멈추기 위한 세계연대 회원인 김보빈 씨의 증언, 오늘 첫 번째 시간이었는데요 다음 주일 여성시대에서 계속됩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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