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김연호 kimy@rfa.org
지난 70년대 1백7십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을 학살한 크메르 루즈 공산정권의 2인자 누온 체아가 결국 30여년만에 체포됐습니다. 누온 체아는 대학살을 주동한 혐의로 재판에 곧 회부될 예정입니다.
캄보디아 군당국과 경찰은 19일 태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살던 누온 체아를 체포했습니다. 누온 체아는 헬리콥터에 실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이송됐으며, 곧 특별 재판에 회부될 예정입니다.

올해 여든 두 살의 누온 체아는 지난 19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크메르 루즈 공산 정권에서 2인자 노릇을 했습니다. 급진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한 크메루 루즈 정권은 4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무려 1백 7십만 명의 국민을 학살했습니다. 당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특히 지식인과 기술자들이 기회주의자라는 죄명아래 살해됐습니다. 미국의 캄보디아 인권 민주주의 협회(Cambodian Americans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의 라니 루신스키 (Rany Lushinski) 부회장의 말입니다.
(Lushinski) All of my brother and sister in law and my parents were killed during that time.
"저희 부모님들과 사둔 형제자매들이 모두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학살됐는데요, 교육을 받았고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몰렸던 거죠. 당시 십대였던 저는 가족이 학살된 뒤 굶주림과 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의 야만적인 학살 행위는 지난 80년대 서방에서 영화 ‘킬링 필드’로 제작돼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 아래에서 프놈펜 투올 슬렝 감옥에서만 1만4천명이 살해됐는데, 당시 이 감옥의 책임자였던 카잉 구엑도 두 달 전 체포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잉 구엑이 자백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체포된 누온 체아는 캄보디아 대학살을 주도한 인물이었습니다. 카잉 구엑 자신도 누온 체아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죄수들을 학살했습니다. 특히 크메르 루즈 정권이 붕괴되기 직전, 남은 죄수들을 모두 죽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크메르 루즈 정권은 지난 79년 베트남의 공격을 받아 권좌에서 쫓겨난 뒤 태국 국경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력저항을 벌이다 결국 99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크메루 루즈 정권의 핵심 세력들에 대한 국제 재판을 열려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재판 규정과 범위 등을 둘러싼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간의 의견차이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작년 초 크메르 루즈의 만행을 심판하는 특별 재판소가 설립됐습니다. 미국의 데이빗 쉐퍼 (David Scheffer) 전 전쟁범죄 담당 대사의 말입니다.
(Scheffer) This demonstrates that the new court is a court that is really operating now.
"누온 체아의 체포는 크메르 루즈 정권을 재판하는 법정이 이제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대학살이 벌어진 지 30년이 넘었어도, 결국 책임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죠."
크메루 루주 정권을 이끌었던 폴 포트는 지난 98년 사망했지만, 10명이 넘는 정권 핵심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쉐퍼 전 대사는 캄보디아 정부가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도 곧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