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고향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2006.08.16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오늘은 2000년 8월 한국에 온 탈북자 장한수(가명-남자,44세)씨가 고향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친구야, 그동안 잘 있었니?
언젠가 정주시장에 너와 함께 갔다가 가짜딸라 백딸라짜리에 속아 자전거를 사기 당했던 나야. 누군지 알겠지? 난 지금 남한에서 이글을 보낸다. 너에게 다른 지방으로 이사간다고 거짓말하고 고향을 떠난 나를 용서해라. 그땐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 나를 이해할 줄로 안다.
남한에 온지 6년이 되간다. 너와 함께 정주, 안주, 신의주로 자전거 장사를 다니며 별 고생 다 했었지...
친구야, 청진행 열차에서 다친 다리는 지금 괜찮니? 그 다리를 끌며 장사해 보겠다고 뛰어다니던 네 얼굴이 선하다. 참, 내가 며칠 전에 서울에서 외국인근로자들과 즐겁게 어울려 놀았는데 참 희한하더라. 너와 함께 남신의주에 자전거 구입하려고 화교를 찾아 갔다가 그곳 보위부에 끌려가 며칠을 고통 받았던 일이 떠오르더라. 북한에선 외국인과 접촉만 해도 불순분자 취급된다는 사실에 남한 사람들이 < 무서운 나라>라고 하더라. 남한에선 국적에 구별없이 친구가 되고 대화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외국인을 보면 사나운 짐승 피하듯 피해 달아나는 북한 주민들도 외국사람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후과가 감당이 안 돼서 그런 거란걸 알아. 북한에서 우리가 알았던 이라크나 이란, 중국은 알고 보니 북한보다 자유로운 면이 있어. 여행의 자유도 있고, 신앙의 자유도 있으며, 사적소유권도 적은 범위나마 보장된다구.
그런 속에서도 인권억압 받는다고 사람들이 난리인데 북한에 비하면 그래도 무서운 곳은 아니지. 참, 우리 삼촌 알지? 자전거도 없이 매일 산길로 출퇴근 16킬로를 걸어 다니느라 남의 자전거를 몹시 부러워했는데 지금도 걸어 다니시는지... 내가 그때 왜 삼촌께 자전거 한대를 드릴만한 마음을 못 가졌었는지 지금 후회 많이 된다.
다른 나라에선 별것도 아닌 물건이 내 고향에선 목숨을 걸어도 구하기 어려운건지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친구야, 난 여기서 컴퓨터전문기술자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한다. 컴퓨터와 마주 앉아 일하지. 북한에서 내가 꿈조차 꿀 수 없던 현실이야. 아마 내가 아직 북한에 있었더라면, 컴퓨터구경도 못해보고 죽을 수 있어. 사회주의를 지키려다가 인생망치고 싶지 않아서 탈북했거든. 수령이나 당이든 조국이든 간에 내 목숨이 붙어 있구야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너도 알겠지만 우리집안은 대대로 당에 충성한 집안이었으나 유선방송밖에 없던 집이야. 제가 살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내가 알았거든. 북한에선 수령의 친인척이 아닌 사람은 모두 불행한 존재야. 모두 제정신을 빼앗겨야 살아갈 자격을 얻거든.
난 해외동포들이 북한을 방문해서 아부하며 참 좋은 구호라고 찬탄한다는 <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가 무서운 구호란 걸 알았어. 독단과 아집, 편견과 보수적인 이 구호가 전체 주민들을 세계의 문명과 격리시키려는 교활한 목적이 담긴 말이야. 이웃 간 서로 평화롭게 교류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나누며 이로운건 삼키고 해로운건 사양하며 살아가는 시대인데 나라전체를 외로운 섬처럼 봉쇄하고 그 안에서 조차 이동을 통제하니 그것이 < 우리식>이란 말인데 영원히 그런 식으로 살자는 말이 아닌가!
옛날, 아주 먼 봉건 왕조국가 시대 때 그런 정치가 통했겠지만 지금 세상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일거야. 주민들의 의식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싹 트는 날이면 북한의 < 강성대국>은 무너질거야. 지구가 돌아가는 법칙이라구.
친구야, 통일 되면 난 남한에서 제일 좋은 자전거를 50대 사서 우리고향 어르신들께와 친구들에게 나눠 줄거야.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자전거인데. 내가 고향에 가져갈 선물을 준비해야지. 그리고 나와 제일 딱 친구들에겐 오토바이를 선물할거야. 통일 약속을 내가 반드시 지킬게! 그때까지 모두들 서로 도우면서 살기를 바란다. 통일 되는 날에 나에게 좋은 오토바이 선물 받으려면 우선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우리 집 식구들을 잘 돌봐 달라는 거다.
나 대신 우리 어머님께 아들구실을 해 준 놈에겐 그보다 더 멋진 승용차도 선물할거야. 그것도 아깝진 않지. 그래서 난 남한에 와서 흥겹게 놀기 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을 한다. 여기선 게으른 놈은 스스로 생활의 처벌을 받게 돼는 세상이야.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해. 일한 것만큼 돈을 벌수 있지. 그래서 나도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를 쓴다. 통일되어 고향에 가면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날을 위해 우리 서로 열심히 살자.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누가 돌봐드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분께 무릎 끓고 인사드린다. 너도 건강하길 바라며.
2006년 7월 21일. 남한에서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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