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다음은 ‘정영 기자가 만난 화제의 인물’ 시간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억류된 북한군 포로 2명의 자유 송환을 위해 탈북민들이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그 가운데는 탈북 과정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탈북민 이병림 씨도 있습니다. 오늘은 북한군 포로 자유송환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겨레얼통일연대 북한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이병림 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탈북민으로서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됐다는 소식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이병림: 저는 탈북하는 과정에서 17살 아들이 중국 곤명에서 체포돼 강제 북송된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거든요. 그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한에서 군인들을 러시아 전선에 파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전쟁을 다 떠나서 내가 내 아들을 구하지 못했는데 저 많은 숱한 생명들이 제발 좀 많이 전쟁에 참가하지 말고 그 전쟁터에서 탈선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기자: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북한군 포로 2명이 부상을 입고 생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이병림: 두 명의 병사가 포로가 됐다는 죄책감으로 해서 자살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한다고 들었을 때는 저는 그게 정말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 어떤 나라 군인도 북한처럼 전쟁에서 절대로 포로가 되면 안 되고, 포로가 되면 자폭을 하라는 그런 지령을 떨구는 나라는 북한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기자: ‘자살하고 싶다’는 북한군 포로들에게 편지를 쓰셨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이병림: 그들에게 자유의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선 손편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을 해서 김영미PD(탐사보도 기자)를 만났을 때 손편지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탈북하게 된 동기, 내 자식들을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탈북한 엄마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 과정에 제가 17살 나는 어린 아들을 하나 잃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정말 너희들에게 친 엄마의 심정으로 살아남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너희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이분(김영미 PD)의 손을 절대로 놓지 말라는 것. 북한에 있는 어머니들이나 남한의 어머니들이나 다 똑같은 마음이니까 절대로 죽을 결심을 하지 말고 사는 게 너희 엄마들한테 하는 효도이다. 그리고 또 제가 그렇게 썼어요. “너희들의 생명은 정말 북한에서 말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보다도 우선 먼저 너희들의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허튼 생각하지 말고 너희들이 생각 못하는 다른 자유 세계가 있으니까 그 세상을 향해서 발걸음을 내디뎌라”는 내용으로 썼어요.
기자: 혹시 아들을 잃게 된 사연에 대해서 좀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병림: 저는 북한 국경에서 살 때 중국은 저녁이면 불이 환하고, 북한은 전혀 캄캄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까 밥은 그런대로 먹고 산다고 해도 어린 아들이 항상 그랬어요. ‘어머니 왜 우리는 이렇게 전기불도 못 보고 이렇게 살아야 되나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하는 질문을 항상 저한테 했어요. 자식한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앞으로 내 자식만은 이런 세상에서 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화폐개혁 이후 드는 생각이 뭔가 하면 ‘이 사회에 대한 더 미련은 더는 없다. 좋은 자유의 세상에서 내 자식들은 살게 해줘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탈북을 한 거예요. 그런데 탈북 과정에 아들이 중국 곤명에서 체포돼서 강제 북송돼서 갔거든요. 그때 제가 먼저 떠나서 태국에 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아마 중국에 있었다면 제가 (한국에) 안 왔을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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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한국에 와서도 아들 생각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이병림: 저는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처음 한국에 와서 너무 힘들었고 때로는 자살하려는 생각도 몇 번 했어요. 정말 눈물 속에서 항상 심장에는 참 얼음덩이를 안고 살았죠. 자식을 못 구한 죄책감, 나 혼자만 자유 세상에서 누리는 그런 죄책감으로 살다가 우크라이나 북한 포로 병사들 소식을 들으니 ‘내 아들은 못 구했지만 내가 구해야 되는 다른 아들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나 이들을 구하기 위해 탈북민들이 단합을 해서 어떻게든 노력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중이었지만, 꼭 가봐야 된다는 그런 의무감을 가지고 우크라이나까지 가게 되었지요.

기자: 만약 북한군 포로들이 대한민국을 온다면 다른 탈북민들이 어떻게 맞아줄까요?
이병림: 제가 탈북 여성들한테 같이 편지를 보내자고 하니까, 그들이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자식들이나 형제처럼 생각하고 너도 나도 진짜 양아들로 삼겠다고. 친동생처럼 맞이해 주겠다고, 오기만 하면 정말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주겠다는 것, 편지에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오면 옷도 사주고 정말 좋은 데 같이 구경도 다니고, 그렇게 해주겠다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양아들로 삼겠다는 탈북 여성들도 있었고요.
기자: 혹시 북한군 포로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어떤 처우를 받을 것 같습니까?
이병림: 그들은 우선 자살을 안 했다는 죄, 그리고 또 포로 두 명이 자유세계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상 돌아가면 무조건 자본주의 세계의 물을 먹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더 엄격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포로들) 부모들은 솔직히 자기들은 힘들게 살아도 아마도 아들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더 바랄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북한군 포로 자유 송환을 호소하고 돌아온 한국 겨레얼통일연대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 운동본부 이병림 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