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0만 소도시’ 나선시에도 왜 승마클럽 건설할까

북한 나선시가 승마구락부(클럽)를 새로 건설하고 있다. 2013년 10월 평양시 사동구역에 미림승마구락부가 처음 생긴 이후 북한 주요 도시에 승마구락부가 건설되고 있는 가운데 인구 20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 나선시에도 승마구락부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과 전국의 모든 지역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 노선’ 구상의 일환으로 풀이되지만 사실상 부유층이나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선시 승마구락부 건설은 2023년 여름에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로 4년째지만 아직 완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나선시의 주민소식통은 17일 “시 당국이 올해 안에 완공한다는 목표로 승마구락부 건설을 다그치고 있다”며 “사실 이 건설은 2023년에 시작됐다”고 전했다.

800m가 넘는 긴 승마 주로와 기초훈련장 등이 설치될 예정인 나선시 승마구락부는 산을 깎고 농경지를 정리해 부지를 확보하는 초기 공사까지는 속도감 있게 추진됐으나 다른 대상 건설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늦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나선과 가까운 청진 등 여러 지역에 승마구락부가 이미 준공돼 운영되는 상황에서 나선시 당국은 완공이 늦어진 승마구락부 대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하는 두만강맥주집을 시내에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 이어 맥주집 인근에 불고기전문식당도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만강맥주집은 지난해 9월 준공돼 외국인 관광객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해 중앙의 평가를 받았다. 불고기전문식당도 지난 10월 완공돼 문을 열었다. 중앙 당국이 중시하는 두 시설의 건설이 끝나자 시 당국은 이제 승마구락부 건설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공사를 맡은 건설 노력(인력) 외에 일반 공장, 기업소와 가두(주부) 여성들을 동원한 노력 동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 여맹(여성동맹)의 주최로 이달에만 가두 여성들이 두 차례나 현장에 동원돼 일을 도왔다고 한다.

북한 각 지방 승마구락부 건설은 승마를 좋아하는 김정은의 지시로 추진됐다. 함경북도는 유명한 공원인 청진청년공원에 승마구락부(2023년 10월)를 건설했고 이어 평안북도가 신의주시에 승마구락부(2023년 12월)를 건설했다. 이후 자강도, 남포시, 평안남도, 황해북도 등에도 승마구락부가 생겼다.

승마구락부에 대한 나선 주민들의 반응은 덤덤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내 중심에 있어 이용하기 편리한 두만강맥주집, 불고기전문식당과 달리 승마구락부는 시내에서 10km가량 떨어진 해안가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에서 승마구락부로 가려면 수처봉을 넘어야 하는데 구불구불한 고갯길 경사가 심해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는 주민이 산을 넘어가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설명이다.

시 당국이 승마구락부 위치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한 이유는 말 배설물 악취를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함경북도 주민소식통은 18일 “주민 주거지와 가까운 청진 청년공원에 승마구락부가 생긴 이후 주변 주민들이 악취로 인한 불편을 계속 호소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청진 시내에 있는 승마구락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는 말이 돈다고 전했다. 나선시가 승마구락부 부지를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정한 것도 청진시가 겪고 있는, 말 배설물로 인한 악취와 관련한 주민 불만을 고려한 조치로 볼 수 있다.

202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북한 평양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경마 경기가 열리고 있다.
202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북한 평양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경마 경기가 열리고 있다. 202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북한 평양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경마 경기가 열리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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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승마는 사치”

다른 지방에 건설된 승마구락부도 대부분 시내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평안남도 승마구락부는 평성시 외곽에 있는 봉린산 기슭에 건설됐다. 평안북도 승마구락부도 신의주 시내의 주민 밀집 지역에서 12km가 넘게 떨어진 남신의주의 야산 옆에 있다. 남포시 승마구락부도 시내에서 10km 가량 떨어진 국사봉 아래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소식통은 “머지않아 나선시 승마구락부가 완공되겠지만 청진시와 마찬가지로 돈 없는 일반 주민은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 승마구락부의 경우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이용하는 사람이 꽤 있지만 생활 수준이 청진 보다 높지 않고 인구도 적은 나선시의 경우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돈 없는 주민이 말 탈 생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타겠다고 10km 떨어진 곳에 갈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일반 서민에게 승마는 사치라는 지적이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은 “전국적으로 불고기전문식당을 건설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김정은 정권은 서비스부문이나 문화소비부문에 대한 국가 지배력을 강화해 주민들의 현금을 흡수하고 시장을 억제하는 것이 정책기조”라고 설명했다. 나선시를 포함해 승마구락부를 전국적으로 건설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는 뜻이다.

정은미 인권연구실장은 “승마구락부 건설 명분은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이념을 민생에서 구현한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부유층과 간부를 위한 것”이라며 “다만, 나선시는 외국관광객이 많아 내수용뿐 아니라 관광코스로 활용할 가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에디터 이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