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으로 들어간 탈북자들이 보낸 구조요청


2005.03.08

지난해 11월말 중국을 떠난 탈북자 6명이 버어마를 거쳐 지난달 27일 남한으로 입국했습니다. 석 달 동안 버어마와 라오스 국경을 넘나들면서 여러 번 잡히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남한으로 입국한 이 탈북자들은 그동안 남한의 탈북자 지원단체 두리하나 선교회에 이메일, 즉 전자 편지로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19살 난 현부흥 군이 보낸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부흥이는 지난 1999년 당시 14살 때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2001년 9월 연변에서 있었던 탈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때 온 가족이 북송 되었고 다시 탈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부흥이과 부흥이 어머니만 남한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부흥이가 2004년 6월24일 둘째 누나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연락을 보낸 사연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기자가 낭독해드립니다.

편지내용: 급한 일이에요. 도착시간: 2004.06.24 (목) 21:28 오늘 오후 &# xC800;희 큰아버지가 누나가 잡힌 변방대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변방대에서 누나네를 어제 단둥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이거 어떡하죠? 저희가 손쓸 사이도 없이 이렇게 일이 빨리.... 저희 누나 잡힌 지 아직 열흘도 안됐는데 벌써 단동으로 내보내다니.... 제발 부탁입니다. 지금은 돈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길림성에서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7월26일 한 달 여 만에 중국당국이 신분증을 교체한다고 해서 염려하는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저희 집 부근에도 그전에 경찰차 밤 순찰 없더니 2~3일 전부터 밤 순찰과 잠복근무를 시작하더군요. 더군다나 오늘 저녁에 공안국 에서 통지가 내려 왔더군요. 내년 1월부터 연변에서 신분증 다 바꾼대요. 매 집 문에다 붙여 놓은 거 &# xC800;두 봤습니다. 각 구역의 경찰들은 임무에 충실해 모든 주민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서 자기 구역의 주민 호구와 신분증을 대조하고 이상이 있으면 즉시 신분을 파악하고 올바르게 인도하라고 했더군요.. 저는 전번주일부터 학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년에 되면 어떻게 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을 하며 너무 힘듭니다. </p> <p>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부흥이는 중국에서 &# xCEF4;퓨터 학원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편 으로 중국 &# xC5D0; 체류할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매일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또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탈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부흥이는 메일에서 하루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p> <p> 하루빨리 한국 가고 싶습니다. 안전하게 비행기 타고 가고 싶습니다. 비행기타 &# xACE0; 가려면 한 사람당 얼마씩 있어야 되죠? 돈만 되면 아무 때 &# xB77C;도 떠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비행기 타려면 얼마 드는지도 알려주세요.. </p> <p> 하지만 이런 소망과는 달리 비행기대신 걸어서 밀림을 헤 짚고 다닌 탈출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흥이는 10월 7일 탈출하기 한 달 전에 자신의 탈출과 북송, 그리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이진서 기자가 낭독합니다. </p> <p> 저희 부모님들은 아버지는 11년 동안 당 세포비서를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리' 도서관을 책임지고 모든 출판물들을 관리하는 한편 통행증을 발급하는 일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본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할 때는 꼭 통행증이 있어야 하거든요. 저희 형제는 제 위에 누나 두 명이 있구요. </p> <p> 집이 많은 빚을 지자 어머니는 장사를 하기 위해 중국 국경 쪽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장사물건들을 다 잊어 먹고 차마 빈손으로 집에 돌아 올수 없어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1년 동안 애기 보모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엄마가 소식이 없은지 1년이 되자 큰누나는 군대로 나갔습니다. </p> <p>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소식을 보내 왔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중국에서 일 년 동안 애기 보모 일을 열심히 일 하셔서 몇 천원의 돈을 모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저희 집에 엄마의 편지를 보내셨던 거예요. 어머니는 편지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사라 누나가 들어 왔습니다. </p> <p> 그 후 아버지와 저도 들어 왔구요. 엄마가 번 돈들은 저희들을 중국에 데려오는데 다 쓰셨습니다. 엄마는 50원짜리 월세방을 맡아 아빠와 저희 두 형제가 살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한 달에 1~2번씩 집에 오셨어요. 당시 중국이란 나라가 어떤 곳이고 제자신이 탈북자 &# xC774;지만 탈북자가 무엇이고 얼마만큼의 위험이 따르는지를 몰랐습니다. </p> <p> 며칠이 안돼서 교회에서 집사님들이 찾아 오셨는데 무서웠어요. 왜냐면 북한에서는 종교가 나쁘다고 들어왔거든요. 하지만 그분들은 오셔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물론 쌀도 주시구요. 그때 집에 쌀이 &# xB9CE;은 걸 보고 참 기뻤습니다. 자루채로 놓여진 쌀을 보면서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p> <p> 그 후 2000년 3월 말 저희를 도우시던 집사님 집으로 저와 누나가 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아는 건달이 사라 누나를 팔아먹으려고 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가을 당시 연변에는 탈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 &# xAC70;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 탈북자가 경찰을 죽였기 때문이죠. 아버지와 저도 그동안 10차례 넘는 이사 끝에 모아 산골짜기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p> <p> 그러다가 9월 14날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집에서 저희 3식솔이다 잡혔습니다. 그 동네 누군가 밀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치어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경찰차에 태워 용정에 있는 파출소로 데려 갔습니다. 다음날 오전 저희를 용정 변방대대에 넘겼구요. 9월 20일 날에 삼합을 통해 북한 회령보위부로 북송 되었습니다. 보위부에서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애들만 모아놓은 구호소에 보내졌습니다. 당시 구호소에는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가을철 도토리 따러 산으로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p> <p> 그 다음날 오후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셔서 전 그 구호소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전 북송 된지 3일 만에 다시 중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9월 14일 날 잡혀서 20일 날 북송되었다가 23일 날 다시 중국에 들어 올수 있었습니다. 그 후 11월 달에 북한에서는 아 &# xBE60; 엄마가 풀려나왔고 엄마는 다시 중국에 들어오셔서 저희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아빠는 그때 잡혔을 때 너무 많은 고통을 당하고 몸이 아파서 지금까지 못 들어오셨습니다. </p> <p> 연길로 나온 사라 누나는 어느 교인의 집에 보모로 들어가고 전 엄마와 같이 지냈습니다. 저희는 계속 한국 갈 것을 희망해 왔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잡힌 것입니다. 꺼내려고 노력했지만 돈이 없어서 지금까지도 손맥을 놓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앓고 계시고 큰누나는 군대 가고 작은누나는 잡히고 엄마와 저 두 명만 무사합니다. 지금 이 밤에도 저희는 공안들이 언제 어느 때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시달리 &# xBA70; 살고 있습니다. 전 한국에 가면 신학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 xC81C; 꿈은 선교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p> <p> 그리고 부흥이는 어머니와 일행 4명이 중국 탈출을 위해 11월 25일 청도로 들어간다는 마지막 편지를 보냈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흩어진 채 어머니와 둘이서만 그렇게 꿈에 그리던 남한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p> <p> 이원희기자 </p> <div class="copyright"> &#169; 2005 Radio Free Asia </div> <!--end content div--> <div class="borderbox" class="linklist"> <h4> 관련 기사 </h4> <ul>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20050304.html">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사연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20050303.html"> 실종된 제프리 박 목사, 6명의 탈북자들에게 큰 영향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20050302.html"> 버어마에 있던 탈북자 6명 남한 입국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20050221.html"> 동남아에서 실종되었던 탈북자 6명 버어마에서 재판설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_helper_missing-20050121.html"> 탈북자 6명과 이들을 돕던 선교사, 실종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_se_asia-20041223.html"> 동남아 머물고 있는 탈북자 일행, 남한 행 기다려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defectors-20041222.html"> 중국의 탈북자 6명 동남아에 도착, 한국행 기다리고 있어 </a> </li> <li> <a href="/korean/simcheongbodo/hbh-20041130.html"> 중국에서 인터넷 사용으로 외부세계 소식 알았다 - 탈북자 현부흥 </a> </li> </ul> </div> <!--end sidebar div--> <!--IE6 likes this div--> <!--end wrapper div--> <!--end containe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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