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코로나 그림자] ➀ 자취 감춘 수입상품

서울-손혜민 xallsl@rfa.org
2021.03.01
[북한의 코로나 그림자]  ➀ 자취 감춘 수입상품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모습.
연합

앵커: 코로나사태로 인해 북한이 국경을 봉쇄 한지 1년 남짓. 북한 서민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인 비공식 무역(밀수)과 장마당(시장)이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장마당에 수입 상품이 사라지고 생필품은 오랜 기간 품귀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코로나가 가져온 북한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세 차례에 나눠 기획 보도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장마당에서 자취를 감춘 수입 상품> 편입니다. 보도에 손혜민 기자입니다.

 

수입상품이 사라진 장마당,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해

지난 달 27평안북도 신의주의 장마당에 직접 나가봤다는 현지 주민은 자유아시아방송에 조미료나 사탕가루 등 수입 식품이 장마당 매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면서 “어쩌다 조미료를 내놓은 상인들에 값을 물어보면 터무니 없이 비싸서 저리(아예) 살 엄두가 안 난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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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사태로 북한 장마당에서 가격이 급등하거나 사라지고 있는 10대 품목 가격 변동표. RFA Graphic/손혜민

그토록 어렵다던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도 장마당 장사로 버텨왔다는 이 주민은 코로나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오늘날의 장마당 상황을 1990년대의 장마당과 비교했습니다. 과거 90년대의 장마당과 현재의 장마당은 심각한 경제난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품의 수급 면에서 본다면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현지 주민 소식통: 수입산이라는 건 다 비싸고...사탕가루, 밀가루는 아야(아예) 파는 거 없고, 기름은 중국 거 없구, 인조고기 콩기름만 팔아요. 개인이 짠 건데 한 키로에 국돈으로 35천원이야요. 1월달엔 23천원했는데... 난 기름 오르기 전에 두통 사놓은 거 애깨(아껴)먹고 있어요. 고난의 행군 때 하군 판판 다른데 그때는 중국 물건이 너무 많았거든요

1990년대 중반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북한 곳곳의 장마당에는 중국산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며 장마당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장마당은 중국산 상품 공급이 끊기면서 장마당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현지 주민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국의 물리적인 통제로 장마당이 축소된다기 보다는 장사 원천인 상품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탕이나 밀가루는 주민들의 1차 소비품이기 전에 각자 집에서 사탕, 과자,

음료수 등을 제조해 장마당에서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구입해 생계를 이어가던 생산 원자재라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 코로나로 인한 요즘이 더 살기 힘들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요. 주민들이 가장 원망하는 것은 코로나사태에 대응하는 북한당국의 무책임하고 강압적인 태도입니다.

지난 주(2/26)에 진행된 주민강연회에서 북한당국이 역설한 강연 내용을 평안남도의 한주민이 보내온데 의하면 사탕가루가 없는 것을 못 참아서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겠는가. 사탕가루나 조미료같은 것이 발라도(부족해도), 그런 것을 먹지 못해도 견디어 내자, 식량과 된장, 남새 같은 것만 있으면 그것을 먹으면서 몇 년 이고 얼마든지 버티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지 주민 소식통:사탕가루, 밀가루 없어도 참으라는 데 그게 (주민이)먹는 건가요? 장사하는 물건이지장사를 해야 식량이든 된장이든 사 먹지제 배때기가 부르니까…”

가장 빠르게 가격이 급등하고 원천이 고갈되어 매대에서 사라지는 품목은 주민들의 장사밑천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식자재들입니다.

그중 중국산 맛내기(화학조미료)는 음식장사를 하려면 필수적인 재료여서, 맛내기 한 키로 가격이 장마당에서 쌀 50키로 값을 넘어서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수입 다시다(복합화학조미료)와 사과, , 바나나는 장마당에서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되었다고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정은이 박사는 코로나로 인해서 북한 장마당에서 설탕맛내기는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데, 내구성이 강한 상품, 즉 의류처럼 오래 입는 상품에 비해 기초식품은 매일 소진되어 수요량이 높은 상품이기 때문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북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은이 박사: 사실은 코로나사태로 인해서 돈이 안 돌잖아요. 주민들의 활동 반경도 확실히 줄어서 소비도 줄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시장이 영향을 받는 것도 있고...

코로나 시대에 대응해 자구책을 마련해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력도 주목됩니다. 수입 조미료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음식조리용 조미료를 자체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요.

금값이 되어버린 맛내기나 다시다를 돈주가 아닌 이상 누가 사먹을 수 있겠냐면서 맛내기 대신에 주부들은 두부콩을 닦아서 보드랍게 가루 내어 시라지(시래기)국 끓일 때 국물에 넣는데, 국물이 구수하고 맛이 있어서 일반 개인식당업자들도 이런 걸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현지 주민들은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막대기(1만달러)주고라도 (화물차)곡축만은 살 데 없단 말입니다.

특히 북한에서 수 천달러를 현금으로 주어도 살 수 없으며 대용품도 없는 게 차량 부품입니다. 택시나 승용차도 그렇지만 개인화물운송업자들과 공장 기업소, 군부대 소속 화물차량들이 고장이 나면 수리할 부품이 없어 세워놓을 수밖에 없어 물품 수송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말했습니다.

평양시의 한 주민 소식통은 평양에서 운행하는 택시를 비롯한 버스, 화물차량은 거의나 수입산 외제차량이어서 차량에 필요한 부품도 반드시 수입으로 들여와야 한다면서 그러나 무역이 막히면서 차 부품을 수입하지 못하다 나니 평양에서 차량 부품을 구입할 길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평양 주민 소식통: 한 막대기 들고 가도 없단 말입니다. 한 막대기가 1만 딸라란 말이에요. 한 막대기 주고라도 곡축을 사야 까마즈(러시아산 화물차)고 대박차(중국산 20톤화물차)고 뭐 뛸 게 아닙니까...(부품이)없단 말입니다.

특히 차량 부품 중에 곡축(크랭크)은 차량의 핵심부품이어서 수요가 몰리는 제품인데요. 화물트럭 곡축은 수요는 많은데 수입이 완전히 끊겨 달러 현금을 주고서도 구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급해 맞은 화물차 운전수들이 무역회사에 찾아가곡축 비용을 선불로 줄 테니 중국 대방에게 주문해 밀수로 들여올 방법이 없느냐고 사정하고 있지만 무역회사들도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우린 원시사회로 후퇴하고 있어요.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일반 화물차량 곡축 한 개에 500~800달러 정도면 장마당이나 중고 부품 상점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평양 장마당에 가보면 화물차량 곡축은 아예 없고 승용차나 택시에 필요한 곡축은 어쩌다 눈에 띄는데, 가격이 3500달러까지 상승했다고 소식통은 전합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양강도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요.

양강도 주민 소식통: 자동차 엔징 안에 피스톤 올리밀고 내리밀고 하는 게 곡축하고 연결됐습니다. 힘쓰는 화물차는 곡축만 부러지는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근데 중국 아이들(중국산) 부품이 좀 약합니다 그게 완전 허리(심장)나 같은 건데... 우리도 곡축은 생산하지만, 수입차가 많이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거 교체하려면 외국 공장에 주문해 들여와야 되거든요

소식통은 군인들의 식량을 비롯한 후방물자 운송이 시급한 군부대들은 할 수 없이 낡은 목탄차를 꺼내 들고 바위고개 넘나들며 후방물자를 운반하고 있다면서 나무를 태워 연기를 내뿜으며 운행하고 있는 목탄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다시 원시사회로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고 전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규철 부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 (2021.1)에서 국경 봉쇄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들이 부족하게 되어 생산 활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서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비공식부문이 위축되면 북한경제 활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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