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대북 정책 평가 Q/A]

한국에서는 요즘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서 노 전 대통령이 펼친 다양한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 서울의 박성우 기자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박성우 xallsl@rfa.org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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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노 대통령(왼쪽)과 김 국방위원장이 환송 오찬을 하는 모습.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노 대통령(왼쪽)과 김 국방위원장이 환송 오찬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진행자: 박성우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박성우: 네,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평화’와 ‘번영’입니다.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번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지요.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질서 창출을 목표로 대북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이런 대북 정책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4개월여 남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한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10.4 선언이지요.

현 시점에서 보자면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고 2차 핵실험을 연이어 한 상황이기 때문에 10.4 선언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돼 버렸습니다.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집권 유산인 10.4 선언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작년에도 공개적으로 강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2008년 10월 1일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 10.4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요. 노 전 대통령이 여기서 특별 강연을 하면서 다양한 비유를 동원해 10.4 선언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아쉬워했습니다.

당시 특별 강연은 자신의 대북 정책과 구상에 대해서 1시간 동안 설명하는 자리였는데요.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을 때 대북 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한 건 이 자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노무현: 10.4 선언은 저희로서는 참 공이 많이 들어간 선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꿈을 모으고 정성을 모아서 열정으로 만들어낸 선언이었죠. 저는 그 안의 내용이 그저 상징적인 정치적 선전 문구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이고 심지어 실무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그런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매우 가치 있는 선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특히 남북 경제가 우리 한국 경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이 선언은 참 의미 있다고 스스로 평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선언은 버림받은 선언입니다. 그래서 1년 쯤 됐으면 잎이 좀 더 싱싱하게 피고, 가지도 좀 무성하게 뻗고, 그래서 내년엔 열매도 좀 주렁주렁 달렸으면 좋겠는데. 이 나무가 지금 말라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념한다는 것은 지금이 마음 편하고 즐겁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가득할 때, 이럴 때 기념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저는 다 죽어가는 나무 하나를 놓고도 기념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깜짝 좀 놀랐습니다. 이렇게 서글픈 것도 기념할 수 있구나.


진행자: 네, 10.4 선언을 “말라비틀어진 나무”라고 표현했군요. 박 기자, 10.4 선언에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내용도 있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의 큰 틀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도 담겨있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 정책의 큰 틀이 담겨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특히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서 관련 당사국 간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을 10.4 선언 합의문에 포함시켰습니다.

지금 와서 보자면,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체제나 동북아 평화구조의 정착 같은 목표는 먼 훗날의 일인 듯 느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통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한반도의 평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들어보시죠.

노무현: 특히 통일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평화구조가 앞서 가는 게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평화구조라는 건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정착, 동북아시아 평화구조,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 추진이라는, 이런 논리적 순서를 갖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평화 정책을 통일 정책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독자적인 정책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노 전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습니까?

박성우: 네, 통일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노 전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전쟁을 통한 통일, 어느 일방의 붕괴로 인한 통일, 그리고 평화 통일, 이렇게 세 가지였는데요. 물론 평화 통일이 필요하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다만,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자면 남과 북의 개별 정권이 조금씩 자신의 권력을 양보해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나 일방의 붕괴를 통한 통합보다는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노 전 대통령은 갖고 있었습니다. 들어보시죠.

노무현: 그런데 ‘이것 참 어렵다,’ 얼른 들으면 ‘불가능 한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그래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입니다. 국가의 통일, 민족 통합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상의 이념입니다. 이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그것 또한 역사에 대한 반역입니다.


박성우: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평화 통일에 대해서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이나 북한은 모두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조하고, 또 “너무 쉽게” 통일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상 통일은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좀 더 진지하고, 과학적으로, 책임 있게” 이야기 하자는 의미에서 평화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특별 강연에서 덧붙였습니다.

진행자: 당시 특별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좀 민감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면서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금기를 깨고 현실을 말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북쪽 땅에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고, 북한 정권은 사실상 국가 권력”이라고 말했고요. “하지만 한국 헌법에는 북한 땅도 한국 영토이고, 북한 정권은 반국가 단체”라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현실을 인정하자고 말하면, 이건 북한 체제를 인정하자는 말이냐’라는 반문을 불러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자신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노 전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북한이라는 정치 체제에 대해서 한국 사회가 진행해 온 담론을 요약해서 정리한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변화하지 않는데 한국만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게 보수층에서 내놓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는 현재도 수많은 사람이 과거 6.25 전쟁 당시의 참화를 기억하고 있고, 또 그 전쟁으로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이산 가족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독재 정권인 북한 김정일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노 전 대통령의 “현실을 말하자”는 발언도 보수층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는 거죠.

진행자: 그럼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 노 전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뭔가요?

박성우: 네,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북한이라는 주제를 놓고 정쟁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게 “올바르고 생산적인 정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들어보시죠.

노무현: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북 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은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전략 논쟁도 아니고 논리적 비판도 아니고, ‘빨갱이 만들기’ ‘친북 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 이념 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념 대결로 생긴 분단을 넘어서자고 하면서 이념 대결에 매달리고 있는 거죠. 민주화 이후로 달라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사고의 구조는 아직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정치가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정치와 정쟁을 가치와 전략의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인들 스스로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는데, 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네, ‘국민의 힘’을 강조했군요. 박 기자, 이번엔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을 잠시 살펴보지요. 노무현 정부 때는 ‘대북 퍼주기’ 논란으로 상당히 시끄러웠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한국이 쌀과 비료를 북한에 제공했는데, 북한은 이에 상응하는 선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버릇만 나쁘게 했다’는 게 ‘퍼주기 논란’의 주요 내용입니다. 북한이 2006년 7월에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이어서 10월에 핵실험을 했을 때, 보수적 논객들은 한국이 ‘퍼다 준 돈으로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다’면서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선 ‘너무 퍼준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순탄하지도 않았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임기 첫해인 2003년에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명목으로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수사를 승인합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건넨 돈에 대해서 특별 검사가 수사를 하도록 승인한 거지요. 북한은 반발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받아들였습니다. 남북관계가 상당히 얼어붙는 계기가 됐고요. 또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지요. 남북관계도 얽힌 상황에서 북핵 문제까지 대두된 겁니다.

이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병행 발전시켜서 선순환적 구조를 형성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 결과로, 20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시사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이끌어 냈고, 이게 바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지요.

진행자: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핵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남북 관계도 탄력이 생겼습니다. 6자회담 2.13 합의가 나온 다음에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됐고요. 2007년 10월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퇴임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진행자: 당시 10.4 선언의 내용을 두고도 말이 많았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10.4 선언의 내용이 너무 방대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구상은 물론이고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을 위한 방안이 이른바 ‘실무자급 수준’의 합의문이라고 할 만큼 세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시 한국 정치권의 상황도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요. 10.4 선언이 만들어질 당시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기 때문에,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관계의 틀은 바꾸기 힘든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걸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도 이 같은 추정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인정했습니다. 지난해 10월 1일에 열린 10.4 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노 전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들어보시죠.

노무현: 저는 사실 전임 사장이 계약을 하면, 후임 사장은 이행을 하는 것이... 회사의 CEO들은 다 그러기에, 저는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 (박수) 회사에서 그렇게 안 하면 부도가 나거든요. 그런데 국가 CEO는 안 그래도 되는 줄 미처 몰랐어요.

박성우: CEO는 회사 사장을 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북한과 남북관계의 틀을 잡아놓으면 후임자인 이 대통령이 이걸 준수할 줄 알았다는 말을 농담 삼아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6.15와 10.4 선언의 합의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진행자: 지금 상당히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데요. 작년 10월에 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전망했습니까?

박성우: 네, 앞서 노 전 대통령은 10.4 선언이 ‘말라비틀어진 나무’라고 표현했죠. 하지만 이 나무에서 싹이 돋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노무현: 이 안에서 우리가 의미를 한 번 되짚어 보면서, 국민의 역량을 모아서 희망의 불씨를 다시 한 번 살려봅시다. 뿌리가 다시... (박수) 아직 이 나무 안 죽었거든요. 물을 주고, 볕이 좋으면, 뿌리가 왕성하게 뻗어 나갈 겁니다. 알 수 있습니까? 내년 봄에라도 새싹이 힘차게 돋아날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박성우:
그런데 봄이 되자 북한은 장거리 로켓 실험을 했고, 최근에는 2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남북 관계도 점점 더 얼어붙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날 수 있다’는 노 전 대통령의 희망은 아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지금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관해서 알아봤습니다. 박성우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성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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