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strong>김영삼: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말이야. 얼마나 큰 희생이 생길지 모른다는 말이야. (미국이 영변을) 때리면 말이야. 나는 전쟁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에게 전화로 절대 반대했지요. </strong> <br/>
북한이 지난 1993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혹 속에서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자, 이듬해 6월 한반도는 전쟁 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당시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2대의 항공모함과 군함 33척을 동해안에 배치하고 영변 핵시설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3일 SBS 라디오 특별기획 ‘한국 현대사 증언’에 출연해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영변 핵시설을 타격하면 이는 북측의 대남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공격 계획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영삼: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말이야. 얼마나 큰 희생이 생길지 모른다는 말이야. (미국이 영변을) 때리면 말이야. 나는 전쟁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에게 전화로 절대 반대했지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증언은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대화와 더불어 무력행사를 대북 정책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과 “강하고 직접적인 (tough and direct)” 대화를 하겠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이 대북 정책에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동국대학교 김용현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김용현: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 편으로는 당근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채찍도 드는, 양면적인 대북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미국의 입장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는 미국 나름대로 강력한 제재도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94년 당시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반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해 6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을 북한에 특사로 파견해 미북 회담 재개에 합의했고, 같은 해 10월 제네바 합의가 체결돼 1차 핵위기는 해결 국면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