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씨는 북한의 참상과 참상이 있게 한 정권을 고발하기 위해 이 시집을 내게 됐다고 말했는데요.
'희세의 장군'이라는 시에서 국가지도자를 풍자하기도 한 장진성 시인은 바람직한 국가지도자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용단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영윤 기자가 장진성 시인을 만나봤습니다.
MC:
저자 서문을 보면, 장진성 시인께서는 북한에서 잘 나가는 시인으로서 살면서 분명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하셨는데요, 노예의 행복임을 깨닫게 된 특별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진성 시인:
대학 때까지만 해도 저는 김정일을 만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살 만큼... 지금 보면 참 단순했죠. 그 체제하에서는 그런 목표밖에 설정할 수 없었던 거고.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연고관계로 해서 김정일의 의료원으로 일했던 분과 마주앉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우리의 지도자고 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말하는 김정일은 다시 말해 인민 뒤의 김정일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던 거죠. 우리는 밤새워 일하는 수령인 줄 알았는데 그가 증언하는 김정일은 굉장히 타락한 김정일이었고...
MC:
기대했던 김정일의 모습이 아니었단 말씀이시군요. 그게 큰 계기가 되는 건가요?
장진성 시인:
그게 큰 계기라기보다도 그런 것들이 축적되다 보니까 사회를 보는 시야도 좀 깊어졌다고 할까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의식의 변화가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저는 그때부터는 더는 김정일을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보지 못했고 저 사람이 없어야지 만이 북한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올수 있지 않느냐 생각하게 됐습니다.
MC:
2004년 남한에 입국하셨는데요, 탈북하시면서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보고 겪었던 경험들을 메모해 놓은 시작노트들을 가지고 나오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걸리면 무척 위험할 수도 있는 메모들을 지닌 채 탈북하셨던 당시 심정은 어떠셨는지요?
장진성 시인:
저는 오히려 시집이 있어서 가야 되겠다는 용기도 생겼고 갈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지 않은가 생각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가지고 나올 수 있는가, 북한 안에서 적발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 다 3대 멸족되지 않겠어요?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북한의 많은 작가들이 자기만의 스케치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적발돼서 정치범 수용소에 간 작가들도 많습니다.
MC:
그렇다면 북한의 작가분들 중에는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꽤 있겠군요?
장진성 시인:
많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북한의 많은 작가들이 역사, 사극 그런 소설을 많이 씁니다. 현실 문학을 하기에는 너무나 허위를, 신격화로, 정치문학만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그럴 바에야 역사문학 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그릴 수 있고 형상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 문학을 많이 합니다.
MC:
장진성 시인이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하신 지 햇수로 5년째에요. 그런데 첫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내신 건데요. 시집을 출간하실 때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유였고 어떤 목적이었습니까?
장진성 시인:
저는 북한에서 3백만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사실은 우리 한반도에 김정일이 지금 핵개발을 한다고 하지만은 이미 북한에 핵을 터뜨린 거나 같아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바로 북한 핵실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3백만의 곡성이라고, 지금 북한 주민들은 3백만 아사 연고자들이거든요.
그리고 살아있는 양심이고 분노인 것이죠. 저는 이런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고, 이렇게 대량 아사가 평화시기에 이런 대량아사가 있었던 것을 김정일 정권은 오늘도 고난의 행군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참상과 참상을 빚어낸 정권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고발하고 싶었고, 남한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MC:
이 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선생님의 시집 제목인데요. 북한의 장마당에서 목격했던 비극적인 상황을 시로 표현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때의 상황, 기억나십니까?
장진성 시인:
서평양에는 동대원구역이라고 있어요. 동대원구역 시장이 평양시에는 중구역, 모란봉구역이 있는데 동대원구역이 가장 후진 곳인데 제가 그곳에 갈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북한에서는 시장에서 공개처형이 많이 진행돼요. 북한에서의 공개처형은 형벌이 아니고 교양 목적이거든요.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선전선동 수단인데.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공개처형인가 했었는데 들어가 보니까 딸을 파는 모성과 팔리는 딸을 봤을 때는 처음엔 소름이 돋았죠.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그 여자는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해서 처음엔 벙어리인줄 알았어요. 보다 못한 군인이 돈을 쥐어주면서 내가 딸을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그 여자가 그 돈 쥐고 어디론가 막 뛰어가는 거예요. 처음엔 저 여자는 뭔가 부족한 여자기 때문에 딸도 저렇게 시장에 데리고 나오지 않았겠냐 많은 사람들이 격분했었는데, 갑자기 ‘아저씨, 아저씨’ 하며 찾는 소리에 돌아보던 시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딸을 탄 100원으로 밀가루빵 한봉지 사들고 와서 아이에게 주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자기 모성을 보여줄 단돈 100원도 여자 수중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이러한 사실들을 그냥 지나버릴 순 없겠다 해서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MC:
그러면 이 시집이 있게끔 한 원동력이 장마당에서의 모녀의 비슷한 모습이었군요.
MC:
희세의 장군 (124쪽)은 김정일에 대한 비판 의식이 물씬 풍기는 시인데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존재는 어떠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국가 지도자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장진성 시인:
그 어떤 지도자에게나 카리스마가 있어야죠. 대중을 이끌만한... 무엇보다 용단이라고 봅니다. 가장 지도자의 기질은 자기가 그 어떤 업적을 위해서 어려움도 헤치고 그것을 부정하고 용단을 내릴 수 있는 용단, 그것과 함께 자기가 잘못됐으면 사직할 수 있는 용단도 있어야죠. 김정일에 대해서 솔직한 심정으로 얘기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세계적으로 가장 겁이 많은 지도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겁이 많아서 개혁개방도 못하고 있고 겁이 많아서 독재를 유지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도 썼지만 희세의 장군이라고 북한에서는 말하거든요. 적군이 아니라 아군 3백만을 총 한방 쏘지 않고 굶겨 죽인 그런 희세의 장군을 풍자하고 싶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용단보다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엇인가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용단, 또 그런 용단 속에서 비장한 용단이 있을 때 아이디어도 나오고 창의력도 생기고 헌신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김정일은 자기 개인을 위한 용단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독재를 유지하는 용단, 그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을 죽여도 되는 용단... 그 사람이야말로 겁이 많은 독재자, 비유해서 말하면 대낮의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MC:
시 중에서 ‘우리의 이별’이라는 시를 보면 북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들의 아픈 마음을 표현하신 것 같은데요. 탈북자들의 심정이라는 게 남한에 와서 살면서도 가족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장진성 시인: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것이 그것이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 다 있지만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그냥 날인 것이죠. 여기서도 썼지만, '3월12일 내 아버지 생신/ 나는 술잔을 붙들고 흐느껴 운다/ 3월은 여기 있는데/ 12일은 북에 있어'
이런 시도 있는데요. 탈북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분단을 아프게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MC:
남한에 정착하신 탈북자들을 만나 뵈면 남북이 통일되면 어디서 사실 거예요 라고 물었을 때 당연히 북으로 가야죠.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참 많아요. 트럭에다 먹을 것, 입을 것, 온갖 물건 싣고 가야죠 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만큼 떠나온 조국이지만 아직도 애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남한의 정착한 탈북자들의 심리는 참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심정이실까 궁금한데요.
장진성 시인:
저도 북한이 붕괴되면 북한에 가고 싶죠. 북한에 두고 온 그리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가야죠. 그러자면 우리는 이별을 속이고 왔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이별의 아픔조차 주지 못하고 온 죄인이고요.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게 죄책감, 마음의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탈북자들이 북한이 붕괴되는 그날까지는 정착을 잘 하고 돈도 잘 벌고, 앞으로 돌아갈 때 모습은 탈북할 때 모습과 달리 떳떳하고 자랑스러워야 하지 않겠는가?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요, 일제 때 안창호의 자기수양론이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면 수양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지 진정한 독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수양론을 이야기 했는데요. 우리 탈북자들이 안창호의 자기 수양 북한적인 것을 다 버리고, 쓸 게 없어요. 북한적인 것은. 그러기 때문에 수양을 해서 그래야지만이 진정한 동등이고 통일이지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북한이 붕괴된 이후에도 물리적인 분단보다도 그 체제하에서 체질화될 수밖에 없었던 속성들 때문에 심적인 분단이 더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도 썼지만, ‘탈북자 우리는 먼저 온 미래고/ 북은 과거, 남은 내일이라고 봤을 때 그 경계선을 지으며 분연히 일어선 인간 38선이라고 썼는데요. 그런 점에서 탈북자들이 더 노력해 주시고, 어찌 보면 여기 남한 분들에게도 탈북자들은 통일의 연습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MC:
장진성 선생님, 감사합니다.
장진성 시인: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