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여 안녕, 북·쿠 동맹의 위기] ➀ 쿠바 김일성 고등학교와 동맹의 현주소

쿠바 아바나-김진국 kimj@rfa.org
2024.04.22
[동무여 안녕, 북·쿠 동맹의 위기] ➀  쿠바 김일성 고등학교와 동맹의 현주소 아바나 대표적 관광지인 말레꼰 해변의 거리의 악사들.
/RFA PHOTO

음악과 축제의 흥이 넘치고

고전 영화의 스크린을 찢고 나온듯

강렬한 원색의 오래된 미국산 클래식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는

혁명과 열정의 시간에 머문 나라

북한의 지구 반대편 태평양 너머 13천 킬로미터의 거리 만큼이나 북한과는 거리 풍경도 분위기도 다른 나라먼나라, 섬나라인 쿠바입니다.

 

거리는 멀지만 쿠바는 북한의 가장 가까운 친구 나라 중 하나라고 북한 외교관 출신의 고영환 한국 통일부 장관 특보는 설명합니다.

 

(고영환) 북한말로 딱친구한국식 표현으로 찐친이라고 하죠. 김일성 주석도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쿠바는 사회주의 서방초서, 조선은 사회주의 동방초소. 두 나라는 같은 참호를 쓰는 동지. 이렇게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발렌타인데이의 충격, 한국·쿠바 손잡다

 

하지만 60년이 넘는 동맹을 자랑하던 북한과 쿠바의 우정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시점은 2024214일 발렌타인 데이였습니다.  

 

(RFA 리포트/ 김지수 기자) 14일 한국 주유엔 대표부는 이 날 쿠바공화국과 양국 유엔대표부 사이 외교 공적 편지 교환을 통해 양국 간 수교를 맺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형제국으로 불렸던 쿠바가 한국과 공식적으로 손잡게 된 겁니다.  

 

북한을 당황하게 한 선택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쿠바로 향했습니다.

 

(항공사 승무원) We would like to be the first to welcome you to Havana, Cuba, where it's currently 3.45 pm.

 

3월 말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이르고 햇살도 뜨겁습니다.  

북한과 쿠바의 친교를 상징한다며 북한 관영 언론에 등장했던 곳부터 찾아봤습니다.

 

쿠바 김일성 고등학교에서 사라진 두 나라 친교

 

아바나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가량 거리인 시골 마을. 도로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길 오른편에 페인트가 벗겨진 2층 건물이 보입니다.

 

거리에서 담소하던 주민에게 어떤 건물이냐고 물으니 김일성고등학교라고 답합니다.

 

아바나 주민: 낮에는 김일성학교이나 야간에는 호세 마르세 직업학교입니다

 

건물 벽을 따라 열 걸음 정도 걸어서 학교 건물 현관이 있는 왼쪽으로 돌면 낡고 허름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화려한 간판. 가로세로 어른 팔길이 정도의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의 영문 ‘김일성’ (KIM IL SUNG)이 크게 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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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벽에 부착된 김일성 고등학교 명패. /RFA Photo

  

지난 2018년 4월, 아바나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나와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 학교 역사를 소개하는 글에는 2011년 9월 개교했으며 쿠바 교육부에서 쿠바와 북한의 우호 관계를 위해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북한 관영 언론은 이 학교에서 “ 두 나라 사이의 친선과 단결에 적극 이바지하도록 학생들을 교육, 교양하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기자와 만난 김일성 고등학교 교장의 설명은 달랐습니다.

 

조선어 교육도 김일성과 관련한 교육 과정도 없으며 일반 쿠바 공립학교의 교과 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기자: 여기서 한국어(조선어)도 가르치나요?

김일성 학교 교장: 아니요. 영어만 가르칩니다.

기자: 왜 학교 이름을 김일성 고등학교라고 지었죠?

김일성 학교 교장: 쿠바와 북한의 친선관계를 위해 그렇게 지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북한 지도자의 이름을 학교명으로 사용하지만 북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나 학업 관련 두 나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면서 건물이 낡고 학용품 등 부족한 것이 많아 교육부를 통한 외부 세계의 지원을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관광이 국가 경제에 큰 부분 차지하는 쿠바는 코로나 세계 대유행으로 외국 관광객이 급격히 줄고 잇단 경제 정책의 실패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북 닮은 쿠바: 정전, 무너진 배급체계, 화폐개혁 실패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로 이동하는 중 불꺼진 신호등 아래 차량들이 교통 경찰의 수신호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자는 미국서는 드문 40-50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차에 시선이 갔지만 취재진과 동행한 현지 안내인은 불꺼진 신호등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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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시의 지역별 정전 일정을 알리는 전기 회사 홈페이지.  

 

(현지 안내인) B4에 해당하는 지역은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정전이고 B2지역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정전입니다. 다음날은 다른 지역이 정전됩니다.

 

올해 들어 전기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수도인 아바나도 매일 몇 시간씩 정전되는 것이 일상화 됐고 지방은 하루에 몇 시간 근근히 들어온다고 합니다.

 

평양의 창광 거리나 서울의 명동 거리를 연상하는 아바나의 오비스뽀(Obispo) 거리.

(기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나요?

(쿠바 안내인) 은행에서 현금을 찾으려는 줄입니다.   

 

쿠바 정부가 시도한 화폐개혁들이 실패하면서 쿠바화폐(CUP)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쿠바인들은 자국 화폐 대신 미국 달러나 유로를 가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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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배급소에서 빵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쿠바 시민들. / RFA PHOTO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공공배급소에도 배급 음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공공배급량은 최근들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안내원) 한 달에 닭 다리 하나 받아요. 계란은 예전에는 17알 정도였는데 다섯 알로 줄었습니다. 설탕, , 소금, 스파게티, 담배, 시가, , 커피 이런 것들을 받습니다. 근데 절대적 양이 부족합니다.

 

관광에 의존하던 국가 경제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자 쿠바 정부의 공공배급도 크게 줄었고 어린아이를 위한 우유 공급도 끊겼습니다. 

 

(쿠바 시민) 공공배급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3살 아이에게 먹일 우유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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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부족해 비어 있는 선반이 대부분인 바나 시내 약국 . /RFA PHOTO

일상이 된 정전과 무너진 배급체계, 화폐개혁 실패, 텅빈 선반의 약국과 상점 그리고 미국의 제재까지

 

20243월 쿠바의 모습은 북한 내부 소식통들이 전하는 북한의 20243월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북한은 닮아가는 쿠바는 20242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선택을 합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짧은 시간에 경제 선진국으로 발전한 한국과의 수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합니다.

 

(고영환 한국 통일부 장관 특보) 쿠바로서는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기술도 있고 자본도 있는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영원한건 절대 없어. 60년 동맹의 공든 탑도 무너질까?

 

(Music – ‘삐딱하게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한국과 수교한 쿠바는 60년 동무인 북한에 대한 헤어질 결심을 하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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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북한대사관 전경. /RFA PHOTO

 

쿠바 시내에 인공기를 휘날리며 우뚝서 있는 북한 대사관과 대사관저 등 쿠바의 수도 아바나엔 참호 동지인 북한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여전합니다.

 

동맹의 위기를 진단하기 위해 쿠바 속의 북한을 더 찾아 봐야겠습니다.

 

RFA 특별기획 <동무여 안녕, 북한-쿠바 동맹의 위기> 1편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제작, 진행에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팁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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