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유럽 체제변혁 20년, 현장을 가다]③우크라이나-핵 포기 통해 안보 얻어
키예브-박정우 parkj@rfa.org
2009.10.21
2009.10.21
RFA PHOTO/ 박정우
동유럽 국가들의 공산주의 독재 청산과 자본주의, 민주주의 안착을 위한 20년간 노력의 현장,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를 통한 안보 획득 과정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박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브 도심에 있는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1986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브 외곽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입니다.
사고 당시 쓰였던 구급차와 소방차 등이 놓여 있는 박물관 앞 주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자 2층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에 빼곡히 들어선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사고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사라진 마을’이 표지판에 새겨져 이곳 박물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한편을 가득 메운 희생자들의 사진에서 당시의 참상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 초기에 원자로 해체를 포함해 사고 처리에 동원됐던 20만 명 중 2만5천 명이 유출된 방사능 탓에 사망했습니다. 또 35만 명 이상의 주민이 방사능에 오염된 거주지를 떠나야 했습니다.
마침 박물관에 현장 학습을 나온 키에브 시내 한 초등학교 학생들과 마주칩니다. 12-13살 난 어린이답게 아이들은 박물관 이곳 저곳을 재잘거리며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당시 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는 박물관 안내인의 설명에 이내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올해 12살 난 샤샤도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아마 영원히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잊지 못할 거예요.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는 우크라이나가 1994년 구소련에서 넘겨받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우크라이나의 유력 민간 연구소인 라줌코프센터의 올렉시 멜닉 선임 연구원은 주장합니다.
멜닉:체르노빌 폭발 사고는 핵 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성을 잘 보여줬습니다. 특히 평화적인 목적이 아닌 무기 개발을 위한 핵 시설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꽤 큽니다.
안보 전문가로 국방장관 선임 보좌관을 역임한 멜닉 연구원은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편입하기 위해서 핵 포기는 필수였다고 지적합니다.
멜닉: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다고들 얘기하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우크라이나는 당시 핵을 포기하는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현재도 일부 정치인이 종종 우크라이나가 다시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하는데요, 과연 우크라이나가 핵을 가지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멜닉 연구원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다시 핵 개발에 나서면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제재를 받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강조합니다.
멜닉: 그러면 다시 1994년처럼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겁니다. 더구나 핵무기는 매우 비싼 무기인데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당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안전 보장까지 받은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멜닉 연구원이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 우크라이나의 핵 폐기에는 ‘넌-루거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넌-루거 방식’은 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는, 대표적인 협력적 위협감축(CTR) 프로그램입니다.
‘넌-루거 방식’은 특히 핵 탄두와 그 운반 수단인 미사일의 해체와 폐기뿐 아니라 과학자를 지원합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핵과 미사일 등과 관련한 기술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개발자였던 ‘무기 과학자(weapon scientists)’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STCU)는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기술의 확산을 막는 첨병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전 무기 과학자들에게 평화적인 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 앤드루 후드 사무총장은 무기를 개발하던 과학자를 평화적인 민간 분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후드: 무기 과학자를 확산에서 차단하는 일은 미사일을 한 데 모아놓고 폭파시키면서 사진 한 장 찍으면 되는 것과는 다르죠. 매우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매우 느리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도 하고요. 누구나 직업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니까요.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는 우선 구소련 아래서 무기 개발에 종사했던 과학자들이 관련 기술을 확산하는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과학자들이 생소한 민간 분야에서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게 기술의 상업화와 선진 과학자들 간 교류와 협력도 알선합니다.
실제, 우크라이나 국립 과학원 산하 원자력 연구소의 야로슬라브 콜레스니첸코 선임 연구원은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에 큰 만족감을 나타냅니다.
콜레스니첸코: 센터의 지원으로 중요한 실험 장비와 컴퓨터를 샀습니다. (5;20) 올해 저와 제 동료는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를 방문해 많은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재정 지원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 구소련 아래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콜레스니첸코 박사는 구 소련 해체 뒤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으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콜레스니첸코: 당시엔 연구소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과학기술센터의 자금 지원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5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예산이 없어 연구소에 난방이 끊겼을 정도니까요. 임금이 낮아 연구원들이 무척 힘들었는데요,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몇 년 만에 10배나 오른 임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핵 무기 개발에 더는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콜레스니첸코 박사는 말합니다.
콜레스니첸코: 구소련 시절 과학 기술 연구소의 문제점 중 하나는 국방 관련 연구에 주력했다는 점입니다. 전 무기 연구를 별로 원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센터의 지원으로 평화적 연구에 전념하면서 무기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하지 않아도 돼서 매우 기뻤어요.
2008년 현재 콜레스니첸코 박사처럼 과거 무기 개발에 관여했던 우크라이나 과학자 2천30명이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으로 평화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상업용 위성 발사로 방향을 바꾼 전직 미사일 과학자도 있고 핵무기 개발 대신 방사선을 이용해 천연 보석에 색을 입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전직 핵 과학자도 있습니다.
‘넌-루거 방식’을 북한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일단 구 소련의 핵 폐기에 맞춰 고안된 ‘넌-루거 방식’을 북한의 핵 폐기에 적용하는 데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의 후드 사무총장은 낙관적입니다.
후드 사무총장: 물론 과도한 단순화는 금물이지만, 구 소련의 핵 폐기에 적용된 ‘넌-루거 방식’의 북한 적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과거 몇 년간 협력적 핵 프로그램을 직접 운용하면서 쌓은 경험은 북한의 핵 폐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 매우 짧은 시간에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넌-루거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후드 사무총장은 “이라크와 리비아에 이 같은 경험과 교훈을 적용하고 있다”며 “결국 관건은 북한이 핵 폐기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협력하느냐”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북한 지도부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는데요, 협력적 위협감축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서로 협력에 의해 이뤄지니까요.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과 함께 구 소련에서 넘겨 받은 핵탄두는 1천800기가 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국제사회로 편입해 안보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키예브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정우입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브 도심에 있는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1986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브 외곽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입니다.
사고 당시 쓰였던 구급차와 소방차 등이 놓여 있는 박물관 앞 주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자 2층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에 빼곡히 들어선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사고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사라진 마을’이 표지판에 새겨져 이곳 박물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한편을 가득 메운 희생자들의 사진에서 당시의 참상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 초기에 원자로 해체를 포함해 사고 처리에 동원됐던 20만 명 중 2만5천 명이 유출된 방사능 탓에 사망했습니다. 또 35만 명 이상의 주민이 방사능에 오염된 거주지를 떠나야 했습니다.
마침 박물관에 현장 학습을 나온 키에브 시내 한 초등학교 학생들과 마주칩니다. 12-13살 난 어린이답게 아이들은 박물관 이곳 저곳을 재잘거리며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당시 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는 박물관 안내인의 설명에 이내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올해 12살 난 샤샤도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아마 영원히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잊지 못할 거예요.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는 우크라이나가 1994년 구소련에서 넘겨받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우크라이나의 유력 민간 연구소인 라줌코프센터의 올렉시 멜닉 선임 연구원은 주장합니다.
멜닉:체르노빌 폭발 사고는 핵 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성을 잘 보여줬습니다. 특히 평화적인 목적이 아닌 무기 개발을 위한 핵 시설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꽤 큽니다.
안보 전문가로 국방장관 선임 보좌관을 역임한 멜닉 연구원은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편입하기 위해서 핵 포기는 필수였다고 지적합니다.
멜닉: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다고들 얘기하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우크라이나는 당시 핵을 포기하는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현재도 일부 정치인이 종종 우크라이나가 다시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하는데요, 과연 우크라이나가 핵을 가지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멜닉 연구원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다시 핵 개발에 나서면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제재를 받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강조합니다.
멜닉: 그러면 다시 1994년처럼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겁니다. 더구나 핵무기는 매우 비싼 무기인데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당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안전 보장까지 받은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멜닉 연구원이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 우크라이나의 핵 폐기에는 ‘넌-루거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넌-루거 방식’은 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는, 대표적인 협력적 위협감축(CTR) 프로그램입니다.
‘넌-루거 방식’은 특히 핵 탄두와 그 운반 수단인 미사일의 해체와 폐기뿐 아니라 과학자를 지원합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핵과 미사일 등과 관련한 기술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개발자였던 ‘무기 과학자(weapon scientists)’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STCU)는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기술의 확산을 막는 첨병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전 무기 과학자들에게 평화적인 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 앤드루 후드 사무총장은 무기를 개발하던 과학자를 평화적인 민간 분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후드: 무기 과학자를 확산에서 차단하는 일은 미사일을 한 데 모아놓고 폭파시키면서 사진 한 장 찍으면 되는 것과는 다르죠. 매우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매우 느리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도 하고요. 누구나 직업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니까요.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는 우선 구소련 아래서 무기 개발에 종사했던 과학자들이 관련 기술을 확산하는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과학자들이 생소한 민간 분야에서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게 기술의 상업화와 선진 과학자들 간 교류와 협력도 알선합니다.
실제, 우크라이나 국립 과학원 산하 원자력 연구소의 야로슬라브 콜레스니첸코 선임 연구원은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에 큰 만족감을 나타냅니다.
콜레스니첸코: 센터의 지원으로 중요한 실험 장비와 컴퓨터를 샀습니다. (5;20) 올해 저와 제 동료는 프린스턴 플라즈마 물리 연구소를 방문해 많은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재정 지원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 구소련 아래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콜레스니첸코 박사는 구 소련 해체 뒤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으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콜레스니첸코: 당시엔 연구소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과학기술센터의 자금 지원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5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예산이 없어 연구소에 난방이 끊겼을 정도니까요. 임금이 낮아 연구원들이 무척 힘들었는데요,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몇 년 만에 10배나 오른 임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핵 무기 개발에 더는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콜레스니첸코 박사는 말합니다.
콜레스니첸코: 구소련 시절 과학 기술 연구소의 문제점 중 하나는 국방 관련 연구에 주력했다는 점입니다. 전 무기 연구를 별로 원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센터의 지원으로 평화적 연구에 전념하면서 무기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하지 않아도 돼서 매우 기뻤어요.
2008년 현재 콜레스니첸코 박사처럼 과거 무기 개발에 관여했던 우크라이나 과학자 2천30명이 과학기술센터의 지원으로 평화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상업용 위성 발사로 방향을 바꾼 전직 미사일 과학자도 있고 핵무기 개발 대신 방사선을 이용해 천연 보석에 색을 입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전직 핵 과학자도 있습니다.
‘넌-루거 방식’을 북한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일단 구 소련의 핵 폐기에 맞춰 고안된 ‘넌-루거 방식’을 북한의 핵 폐기에 적용하는 데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의 후드 사무총장은 낙관적입니다.
후드 사무총장: 물론 과도한 단순화는 금물이지만, 구 소련의 핵 폐기에 적용된 ‘넌-루거 방식’의 북한 적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과거 몇 년간 협력적 핵 프로그램을 직접 운용하면서 쌓은 경험은 북한의 핵 폐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 매우 짧은 시간에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넌-루거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후드 사무총장은 “이라크와 리비아에 이 같은 경험과 교훈을 적용하고 있다”며 “결국 관건은 북한이 핵 폐기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협력하느냐”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북한 지도부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는데요, 협력적 위협감축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서로 협력에 의해 이뤄지니까요.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과 함께 구 소련에서 넘겨 받은 핵탄두는 1천800기가 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국제사회로 편입해 안보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키예브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정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