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은 여섯 번째 순서로 북한이 올해 직면하게 될 국내외 주요 현안과 대외정책 등에 관해 변창섭 기자와 함께 살펴봅니다. 변 기자, 북한이 올해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신년사가 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육성으로 발표가 됐는데요. 이번 신년사는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작년 12월 고모부이자 권력 2인자로 종종 알려져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 숙청한 뒤 다소 어수선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을 끌지 않았습니까? 오늘 특집 시간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북한 국내의 정정 불안 문제, 경제 문제, 나아가 대외 관계 등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지요. 우선 장성택 이 소위 '국가전복혐의'로 숙청된 이후 나이도 어리고 국정 경험도 미미한 김정은의 권좌가 현재 얼마나 든든하느냐가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 아닙니까?
기자: 맞습니다. 제가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는데요. 대체로 이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현 상황에서 김정은의 권좌는 든든한 것 같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정은도 이번 신년사에서 비록 장성택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안에 배겨있던 종파오물을 제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면서 ‘당과 혁명대오가 더욱 굳건히 다져지고 우리의 일심단결이 백배로 강화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김정은은 장성택이 제거된 뒤 막강한 실세로 부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호위를 받으며 권력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앵커: 하지만 20여년 이상 자기 사람들을 북한 정부와 군, 당 곳곳에 심어놓은 장성택의 잔존 세력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올해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 않습니까?
기자: 실은 그 부분이 궁금한 점이긴 한데요.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박봉주 내각 총리와 지재룡 주중대사가 실은 장성택과 가까운 인물이지만 아직 건재합니다. 반면 내각 사무국장이던 김영효, 금속공업상이던 한효상, 석탄공업상인 림남수 등이 최근 전격 교체됨으로써 이들이 장성택계 인물이 아니었느냐는 관측이 일고 있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 김정은이 속도조절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요. 이와 관련해 미국 해군분석연구소의 북한 지도부 연구의 권위자인 켄 고스(Ken Gause)는 숙청의 대상이 장성택 일파에 한정한 경우 김정은 정권이 최소한 단기적으론 안정을 되찾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정한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예견했는데요. 고스의 견해를 들어보시죠:
KEN GAUSE: “제가 볼 때 이 모든 것은 숙청이 장성택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정밀 숙청’에 한정하되 앞으로도 자신의 주위에 최룡해와 김경희 비롯한 섭정 체제를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이런 현상이 유지된다면 최소한 단기적으론 김정은 정권이 안정적일 겁니다. 하지만 이 같은 숙청이 기존의 섭정체제를 완전히 없애고 김정은 스스로 선친 김정일처럼 모든 권력을 쥔 최고 지도자로 나선다면 그 경우 상황은 김정은의 지도자적 자질 여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만일 그가 재능있는 지도자요, 복잡한 권력을 맘대로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지나치게 앞서 간다면 2014년에 진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고, 북한은 불안정해질 수도 있습니다.”
앵커: 북한은 과거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결속을 다지기 위해 대외 도발을 일삼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올해도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국내 상황이 안 좋으면 도발 가능성도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국제사회를 겨냥해 다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이 군사합동훈련을 시작하는 올 3월 키 리졸브 훈련을 전후에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입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키 리졸브 훈련 직전인 2월에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단행한 적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번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이 유독 남한과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표시해 관심을 끌었는데요. 구체적으로 김정은은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선 안 된다”면서 북한도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문제는 그 같은 발언에 진정성이 있느냐 여부인데요.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현재 처한 지정학적인 어려움을 감안할 때 김정은의 발언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북한이 지금까진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는데 이젠 여기서 탈피해 남한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그러기 위해선 남한과 관계개선을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건데요. 여기서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견해를 들어보지요.
ANDREI LANKOV: 제가 보니까 지금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은 지금 남북관계 개선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북한은 요즘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장성택 사건 때 북한은 이 같은 의존도에 대해서 중국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생각은 후원국가가 적어도 2~3개는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런 나라들의 경쟁을 잘 이용할 수 있고, 양측에서 양보와 지원을 얻으면서도 정작 이런 나라들이 필요한 양보는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겐 지금 중국밖에 없으니까 한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다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앵커: 네, 란코프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북한이 왜 남한과 관계개선에 적극적인지 짐작이 가네요. 그런데 북한이 남한 말고도 실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시급한 상황이지만 핵 개발 문제로 인해 관계 개선의 길이 꽉 막혀있죠?
기자: 맞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공표하지 않는 한 올해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북한은 5년 전 미국에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제대로 된 핵협상을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는데요. 북한은 지난해 봄 미국에 무조건 고위급 대화를 갖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먼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혀야 한다며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핵화를 전제로 한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경제발전과 핵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이른바 ‘병진노선’까지 지난해 봄 선언한 상태입니다.
앵커: 방금 북한의 ‘병진노선’을 말씀하셨는데요. 올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은 어디에도 미국을 겨냥해 ‘비핵화’란 말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핵전쟁의 검은 구름이 항시적으로 떠돌고 있는 조건’이란 표현을 써가며 ‘자위적 힘으로 나라의 자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겠다’고 핵무장 결의를 다지지 않았습니까?
기자: 신년사를 보면 비록 ‘병진노선’이란 말이 보이진 않지만 올해도 북한은 이 같은 노선을 유지할 게 확실해 보입니다. 문제는 북한이 지금처럼 핵을 고집하는 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제사회의 고립만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점인데요. 미 외교협회 한반도 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병진노선은 미국과 ‘충돌의 길’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요. 스나이더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게 뭔지 이렇게 말합니다.
SCOTT SNYDER: “비핵화 협상에 나와 진정성을 보이라는 겁니다. 그냥 무조건적인 회담을 원한다는 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비핵화가 아닌 북한이 원하는 식의 회담은 안 된다는 것이죠. 미국이 원하는 것은 협상이 열리면 이건 비핵화에 관한 것임을 북한이 인정하고, 핵을 포기할 것임을 확약하며 이를 위해 행동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겁니다.”
앵커: 북한 핵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의 최대 당면 과제인 경제난 해결도 힘든 것 아닙니까? 올해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이 농업분야를 비롯, 여러 경제부문에서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경제개혁을 하겠다는 내용은 없는데요. 그런 점에서 올해도 북한의 경제개혁은 ‘물 건너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김정은은 재작년 여름 이른바 ‘6-28 조치’를 통해 이를테면 협동농장에서 목표생산량을 초과하면 개인이 가질 수 있도록 한다든가 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해 내외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이 조치는 북한이 유지해온 배급경제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지 경제개혁과는 관련이 없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만큼 북한은 경제개혁에 부담을 느낀다는 의미인데요. 사실 북한은 1990년대 대기근이 몰아 닥친 뒤 경제 개선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혁조치는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개혁에 따른 후유증 때문인데요. 북한경제 전문가인 루디거 프랭크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수의 말입니다.
RUDIGER FRANK: 제가 보기에 김정은이 하고 있는 것은 그냥 경제개혁을 방해하지도 않고, 개인 경제활동이나 상업활동을 방해하지도 않는 겁니다. 또한 무역이나 투자 등 대외경제활동을 장려하긴 하지만 아직까진 그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중대한 조치를 취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김정은은 경제개선 조치를 취하고 싶어하지만 좀 더 적절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금방 프랭크 교수가 ‘적절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김정은이 경제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적절한 여건’이란 뭔지 궁금하네요.
기자: 프랭크 교수는 구체적으로 ‘국내 정치적 안정’ 문제와 ‘대외적 위험’ 요인을 꼽았습니다. 우선 국내적으론 북한이 일단 경제개혁을 시작하면 북한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역동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데 이게 김정은 정권엔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다음으론 북한이 개혁을 시작하면 훨씬 더 잘사는 이웃인 남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만일 개혁이 실패할 경우 남한에 흡수통일될 가능성을 김정은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프랭크 교수는 김정은이 북한경제를 살리려면 개혁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의 견해를 들어보죠.
FRANK: 김정은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선택이 있습니다. 즉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형제국 중국처럼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쪽으로 상황을 조성해 개혁을 하든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걸 무시하고 실패의 길을 걸었던 동유럽의 독재자들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앵커: 김정은 위원장의 프랭크 교수의 이런 충고를 듣는다면 섬뜩하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런 점에서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경제를 살려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역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기자: 실은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점이 바로 이건데요. 김정은이 살길은 결국 경제개혁을 통한 북한 경제회생뿐이라는 겁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 란코프 박사의 견햅니다.
ANDREI LANKOV: 제가 볼 때 김정은 정부 입장에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입니다. 옛날 방법으론 김정은이 북한경제를 살릴 수 없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에서 남아 있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식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계를 개발해야 합니다.
란코 프 박사는 경제 개혁으로 북한 국내정치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란코프 박사는 “개혁이 정치적으론 너무 불안하지만,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대안이 별로 없다”면서 김정은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올해 반드시 경제개혁, 혹은 개선 조치를 취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신년기획 ‘2014 북한 새해 전망’ 오늘은 북한의 국내외 주요 현안과 관련해 변창섭 기자와 함께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