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고 ‘다문화 동아리’ 토론회] “편안∙안락함 탈북청소년과 나누겠다”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09.12.22
snk_youth_305 탈북 청소년과 경기여고 학생들이지난 20일 서울에서 ‘탈북 청소년의 사회적응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북한인권시민연합
MC: 탈북 청소년과 한국의 경기여고 학생들이 지난 한 학기 동안 함께한 주말 활동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서 20일 ‘탈북 청소년의 사회적응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이 활동을 지켜본 학부모와 교사들은 지난 한 학기 동안 경기여고 학생들이 많은 걸 깨달은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의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기여고 <다문화 동아리>의 1학년 학생 10명이 지난 일요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어느 강당에 다시 모였습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한 달에 두 번가량 북한의 현실과 인권 상황에 대해 공부하며 탈북 청소년과 어울려 온 이들이 이번에 준비 한 건 토론회입니다.

학부모와 교사를 포함해 100여 명의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여고 학생 7명과 탈북 청소년 3명이 발표를 맡았습니다. 경기여고 학생들은 ‘북한의 교육제도’에서부터 ‘탈북 청소년의 부적응을 낳은 남한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갖고 준비한 내용을 진지하게 발표합니다.

정부의 통계치와 법률 용어까지 동원한 발표의 내용도 눈에 띄었지만, 더 주목받은 건 발표자로 나선 탈북 청소년을 배려하는 경기여고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탈북 청소년 3명이 발표할 순서가 되자 사회를 맡은 경기여고의 허지영 학생은 신경을 좀 더 곤두세우는 모습입니다. 첫 번째 발표자인 문성일 학생이 15세의 초등학생인데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영 편해 보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성일: 한국에서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데 힘들었던 점을 말하겠습니다. (한숨)

결국 문성일 학생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는 걸 중도에 포기합니다.

허지영: 네, 문성일 군이 약간 당황한 관계로…

문성일 학생이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허지영 학생이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허지영: 문성일 군, 지금 일반 학교에 다니나요?

문성일: 네.

허지영: 일반 학교에서 겪었던 어려움 같은 건 없나요?

문성일: 처음에 한국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말부터 틀리고 노는 행동도 다르고 해서 힘들었습니다.

허지영 학생의 질문에 문성일 학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갑니다.

허지영: 친구들이 문성일 군을 놀리지는 않나요?

문성일: 친구들이 놀려도 어느 정도 그냥 무시하고 같이 어울려서 놀곤 합니다. (웃음)

이들 두 학생은 이미 지난 4-5개월 동안 함께 농촌 생활을 체험하거나 남북 음식을 같이 만드는 등 다양한 주말 활동을 통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교류를 통해 허지영 학생은 문성일 학생의 성격과 좋아하는 대화 주제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래서 토론회에서 대화를 자연스럽게, 주도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탈북 청소년과의 교류를 통한 학습효과는 경기여고의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잘 나타납니다. ‘왠지 뭔가 우리와 다를 것 같다’는 편견을 갖고 대하던 탈북 청소년들을 이젠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 그리고 내 옆집 이웃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겁니다. 박성은 학생입니다.

박성은: 이전에는 뭔가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은, 그러니까 그냥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관련 기사가 있으면 찾아서 보게 되고, 내 일인 것 같고, 우리 사람인 것 같고, 편견도 사라진 것 같아요.

경기여고 학생들은 또 탈북 청소년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주체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탈북 청소년의 어려움과 우리의 인식변화’라는 주제의 발표를 맡은 노우현 학생입니다.

노우현: 청소년은 같은 청소년의 기분과 생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 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똑같이 연예인을 좋아하고, 이성에게 관심이 많고,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고민을 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고, 챙겨주고, 도움을 준다면,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 똑같이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누군가가 선생님도, 심리 치료사도 아닌, 우리 서로라고 생각합니다.

경기여고 학생들은 이젠 탈북 청소년을 ‘불쌍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친구’로서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합니다. ‘탈북자의 입국 과정’에 대해 발표한 김현진 학생입니다.

김현진: 제가 이 발표를 준비하고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지금까지 편하게 살아왔다는 점을 알게 됐고, 제가 그것도 모르고 불평불만을 많이 부렸다는 점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탈북 청소년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고요.

남한 학생들의 변화는 학부모의 생각도 바꿔놨습니다. 처음엔 공부에 방해가 될까 걱정했지만, 대학입시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게 사회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장여진 학생의 아버지인 장길수 씨입니다.

장길수: 처음엔 봉사활동에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기니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긴 했는데,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을 보니까, 정말 학생으로서의 진정성도 보이고, 이런 부분이 더 발전돼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어떤 쪽으로 진로를 정할지를 택하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해서 적극 지원하게 됐습니다.

탈북 청소년과의 교류 활동에 참가한 경기여고 학생들은 모두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인재들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지만,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 과정과 통일 후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설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기여고의 김병오 교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김병오: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밤 12시 반까지 공부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선 놀라운데, 오늘 이 아이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보고 ‘정말 많은 걸 얻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오히려 제가 많이 얻어가는 느낌입니다. 중간에 어떤 아이가 발표할 때는 제 얼굴에 솜털이 일어날 정도로 저도 긴장하면서 들었거든요. 우리 아이들, 대단한 것 같습니다.

탈북 청소년과의 주말 활동을 지도해 온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다음 해에는 참여 학교를 더 늘려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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