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수입병

김주원∙ 탈북자
2021.02.10
김정은의 수입병 평양 대성백화점 귀금속·시계 매장에 스위스의 스와치 그룹(Swatch Group)의 오메가(OMEGA), 티쏘(TISSOT) 상표(빨간 네모)를 볼 수 있다.
연합

북녘동포 여러분, 북한당국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텔레비전 등 북한 언론매체들에서 자주 수입병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에 청취자 여러분들도 수입병에 대해 잘 아실 것이라고 봅니다. 수입병은 북한에서 생산된 설비나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한 것만 고집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활필수품이나 식료품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것만 선호하는 것도 수입병에 해당되죠. 이렇게 수입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수입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20203 9일 노동신문에 실린  '수입병을 없애는 것은 생산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수입병을 없애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존엄사수, 권익수호와 직결된 심각한 정치적 문제"이며 "수입하지 않으면 생산도 건설도 할 수 없고 현대화도 불가능하다는 이 악성종양은 철저히 사상적 변질의 산물"이라는 내용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수입병 배척운동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정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입병을 가장 싫어한다고 주장하는 김정은이 가장 큰 수입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북한주민들은 적을 것 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은의 외국산 사랑, 수입병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김정일이 자신의 본처였던 김영숙 몰래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였던 김정은의 친엄마인 고영희를 초대소들에 숨겨놓고 동거하면서 김정은 형제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것이라고 봅니다. 김정일은 이러한 사실이 김일성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고 또,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정은 형제들을 초대소에서만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김정은은 소학교 시절까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엄마인 고영희에게서 국어와 수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도 북한에서 다니지 못하고 스위스에 가서 유학을 하다보니 북한에 소학교와 중학교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외국산 제품만 사용하다보니 북한산 제품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북한 땅에서 성장하면서 자랐다고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초대소에서 자라다보니 북한의 상점들에서 파는 국내산 옷이나 학용품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과 서방의 선진국들에서 생산된 물건만 쓰면서 자란 김정은은 북한에서 생산된 물품의 질이 어떤지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김정은은 7살과 8살 때인 1991년과 1992년에는 재포 출신인 엄마 고영희를 따라 일본에 가서 일본상품이 가득 넘친 도쿄의 백화점 거리를 구경했고 13살 나던 1996년 중학교 시절부터는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다보니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의 질이 어떤지 알 수 없었습니다.

1998 6 26, 이날은 김정은의 엄마인 고영희의 46살 생일이었습니다. 스위스에 유학을 가있던 김정은도 엄마의 생일이어서 북한에 돌아왔고 초대소에서 엄마의 생일을 함께 쇠고 있었습니다.

당시 생일 연회음식을 하느라 초대소에 있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날 15살이었던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와의 대화에서후지모토, 외국의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서 보니 어디를 가나 물자와 식료품들이 넘쳐나서 놀랐어. 우리나라 상점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17살 나던 2000 8월에 스위스 유학을 하다가 방학 차 귀국했던 김정은이 원산에서 평양으로 가는 전용열차 오락차량에서 후지모토 겐지와 술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나눈 이야기를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 자세히 밝혀 당시의 김정은의 심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술을 마시면서 후지모토 겐지와 5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내용은 후지모토 겐지의 일기장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은우리나라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공업기술이 한참 뒤떨어져있다”, “우리나라에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지하자원인 우라늄 광석 정도일거야”, “초대소에서도 자주 정전이 되고 전력 부족이 심각해 보여라는 내용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구경을 갔다가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일본은 미국에 졌지만 멋지게 부활해 상점에 가 봐도 물품들이 얼마나 넘쳐나던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떨까?”라는 말로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또 김정은은 김정일에서 들었던 얘기라면서후지모토, 위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 중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 같아. 공업이나 상업, 호텔, 농업 등 모든 것이 잘 나가고 있다고 위에서 얘기하더군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라고 말한 것은 김정은이 김정일을 가리킬 때 하던 표현이었습니다.

김정은은 그날 5시간 동안 김정일의 전용 요리사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가 겪었던 일본과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토대로 북한과 비교하면서 심중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릴 적 성장하면서 북한산 제품은 사용하지 못했던 김정은의 수입산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스위스 유학시절 그가 자주 신고 다니던 신발은 한 켤레 가격이 200달러에서 400달러에 달합니다. 김정은이 처음 스위스 유학시절에 학교에 입학하면서 입었던 복장과 신발은 당시 같은 학급의 친구들에게도 부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외국산 체육단복(트레이닝)과 운동화였습니다.

당시 김정은과 한 학급 친구였던 포르투갈 유학생 조아오 미카일로와 세르비아 유학생 니콜라 코바체비치, 독일 유학생 마르코 아임호프는 입학 초기에는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 운전수의 아들이라고 알려졌지만 후에 김정은이나는 북한 최고 영도자의 아들이라고 말해 학급 친구들이 그가 입었던 의복들과 신발이 고급스러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김정은이 입는 옷과 신발, 시계, 가죽장갑, 색안경 등을 보았겠지만 그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를 거라고 봅니다.

김정은이 봄가을에 자주 입는 코트는 산양의 부드러운 털로 짠 모직천으로 한 벌 가격이 수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한국의 한 대학에서 피복학(패션디자인과)을 가르치는 최재영 교수는김정은의 코트는 순모 100%의 원단을 사용해 만든 옷이며 이런 재질의 옷감으로 코드를 만들려면 최소 수천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가 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2020) 10 10일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던 김정은의 주석단 사진에는 그가 착용한 손목시계가 파악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아이더불류씨(IWC) 회사 제품인 김정은이 착용한 포르토피노 오토메틱 시계는 현재 시장에서 약 1 3천 달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북한에서 환율이 1달러에 7천원으로 봤을 때 북한돈 9 1백만원에 달하는 셈이죠. 이 돈이면 시장에서 약 23톤의 입쌀을 살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2018년 남북 고위급 정상화담 당시 판문점에 타고 온 승용차는 독일산 벤츠 중에서도 최고급형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에스600(S600) 승용차입니다. 전문가들은 방탄을 위해 특수 제작된 길이가 6.5m인 이 차량의 가격이 1백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수해피해지역을 현지지도하면서 김정은이 타고 다니던 라이토방(라이트밴의 일본식 발음-SUV)차량은 일본 도요타 회사에서 제작된 고급형 승용차로, 한 대의 가격이 12만 달러가 됩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수입산 제품만 써오던 김정은이 지금은 최고의 고가제품들을 사용하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국가로 전락되었지만 인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김정은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제품만을 사용하면서도 인민들에게는 수입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김정은, 결국 그래서 김정은의 운명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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