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 김씨 족보 곁가지 김정은

김주원∙ 탈북자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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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평안남도 안주지구 '마두산 혁명전적지'를 '제2의 백두산'으로 내세우며 '백두혈통' 우상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마두산 지역에서 '발굴'했다고 소개한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ㆍ김정숙ㆍ김정일) 찬양 구호나무들.
북한은 평안남도 안주지구 '마두산 혁명전적지'를 '제2의 백두산'으로 내세우며 '백두혈통' 우상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마두산 지역에서 '발굴'했다고 소개한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ㆍ김정숙ㆍ김정일) 찬양 구호나무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우리 민족은 동방의 다른 민족들과 함께 오랜 옛날부터 태어난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성씨를 기준으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또 조상을 섬기면서 성씨를 지켜온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지금도 남한이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자기의 조상을 대를 이어 길이 전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어 대대손손 전해오고 있는데 이 족보 책에는 몇 백 년 전 자신의 조상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유물에 속하는 족보 책은 북한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 인민들이 사멸해 버린 족보와 김일성이 왜 우리 인민의 성씨와 본관을 말살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드리려 합니다.

족보 책은 성씨의 뿌리를 대를 이어 자손들에게 전달하여 선조들을 기리고 같은 혈통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기 위해 선조들과 가족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족보를 보려면 우리의 성씨와 본관에 대하여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성(姓)씨는 삼국시대 양반과 평민들만 사용하였고 노비와 천민들은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시대 말기인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우리 민족 모두가 성씨와 본을 의무적으로 사용 하도록 제도화했습니다.

현재 우리 민족의 성씨는 286개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면 우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성과 본(本)관이 적힌 문건을 작성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족보를 중시하기 때문에 본관도 명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름과 가족관계를 문서화하기 위해 성씨만 존재할 뿐 본관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지어 자식들한테 본관을 알려주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 우리 탈북자들 중에도 의외로 자신의 본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방 후 북한에도 성씨를 바탕으로 갈라진 많은 조상들과 그 후손들이 기록한 족보가 가보로 존재해 왔습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 후에는 이러한 족보를 기록한 책이 잃어버린 가족들과 형제들을 찾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부터 독재 권력에 야심을 품은 김일성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진보세력을 반동이라는 딱지를 붙여 잔인하게 탄압했습니다. ‘6.25전쟁’ 후에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아 무자비하게 숙청했습니다.

또 김일성은 권력을 지키고 대물림 하기 위해 가족주의, 지방주의를 종파의 온상이라고 낙인 찍으며 가족 주의와 지방주의가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한다는 구실아래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이고 가보인 족보 책을 모조리 회수해버렸습니다.

김일성이 북한 인민들에게서 족보 책을 모두 회수한 배경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조상을 숭배하고 족보를 가보로 여기는 민족에게 수령이라는 우상이 먹혀들 리 없었습니다. 수령우상화 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은 족보 책이었습니다.

조상으로 엮인 인민의 집단적 저항을 말살하려 해도 무엇보다 가문의 혈연적인 관계를 기록한 족보 책부터 없애버려야 했습니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조상의 묘들을 모두 파헤치고 족보를 중심으로 모인 가족집단을 해체한 시기는 1958년입니다.

1958년 사회주의를 선포한 북한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모두 빼앗으면서 족보와 조상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가족집단도 해체했습니다. 그런 마을에는 ‘신해방지구(6.25 후 북에 넘겨진 땅)’에서 살던 주민들을 통째로 옮겨 놓았습니다.

사회주의가 선포된 북한에서 인민들이 처음 경험해야 했던 것은 조상의 땅과 족보를 잃는 슬픔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족보를 말살한 김일성은 수령중심의 사회주의를 떠들며 자신의 조상들을 선전하기에 안간힘을 썼습니다.

제가 평양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시기인 1980년대 북한은 강연회를 통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본관이 남한의 전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전주 김씨들이 모여서 통일되면 김일성을 맞이할 환영준비위원회도 설립하였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남한에 와보니 전주 김씨들은 ‘6.25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 준 김일성의 본관이 전주라는데 대해 코웃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주 김씨는 조상대대로 김일성과 같은 역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주 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 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의 9세손인 김태서(金台瑞)입니다. 그는 1232년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상장군•문하시랑평장사•보문각대제학 등을 역임한 유명하고 지혜로운 학사, 군사가였습니다.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의 묘는 전주 모악산에 있는데 2천년 6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했을 때 김정일은 “기회가 된다면 전주 김씨 시조 묘에 가고 싶다”고 말해 많은 전주 김씨들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딱히 족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조상들의 업적을 기록한 책은 어느 나라에나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에게 인터넷이라는 생활공간이 마련되면서 이젠 족보 책도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족보를 확인할 수 없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북한의 인터넷은 폐쇄된 감옥일 뿐 개인이 세계와 소통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남한만 해도 인터넷으로 세계의 그 어떤 인물이나 자료를 다 접할 수 있습니다.

남한에 입국하여 처음으로 인터넷 검색 창에 ‘김정일’이라고 적어 넣었더니 김일성의 족보부터 김정일의 복잡한 여자관계, 김일성과 김정일의 자식들이 몇 명이 되고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 지까지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북한 인민들에게서 족보와 본관을 빼앗아 내고 ‘백두의 혈통’, ‘김일성 조선’이라는 괴이한 혈연 국가를 만든 김일성과 김정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뒤가 구린 인간들이었습니다. 특히 여자관계에서 이들의 족보는 너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죽자 김일성은 김성애를 후처로 받아들여 김평일과 김영일, 김경진을 보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함께 살면서 자식들을 낳은 부인은 성혜림과 고영희, 김영숙, 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4명이었습니다.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인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5살 나이가 많았는데 당시 작가동맹 위원장이었던 리기영의 첫째 며느리였습니다. 리기영의 맏아들인 리평은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사로 일하면서 성혜림과 결혼해 자식까지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27살 때 32세인 성혜림과 불법적으로 동거하면서 그의 남편인 리평과 강제로 이혼을 시켰습니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살면서 맏아들 김정남을 낳았습니다. 분을 삭일 수 없었던 성혜림의 남편 리평은 대동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성혜림과 김정일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김일성의 권고로 성혜림을 버린 김정일은 출신성분이 좋은 김영숙과 결혼해 두 딸인 김설송과 김춘송을 보게 됩니다. 김영숙은 현재 북한에서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 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성관계라면 쪽을 못 펴는 김정일은 일제의 앞잡이 후손인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를 몰래 첩으로 데리고 살면서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보았고 죽기 전까지는 자기보다 나이가 22살이나 어린 서기실 타자수 김옥과 동거했습니다.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엔 결혼식 사진도 없습니다. 김정일의 첩으로 산 고영희에게 결혼식 사진이 있을 리 없고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의 대를 물려받았다는 점에 의문을 감출 수 없습니다.

김정은은 아직까지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김일성은 김정일이 비밀리에 첩으로 데리고 산 고영희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러다나니 김정은의 존재도 몰랐다고 알려졌습니다. 김정은의 배다른 맏형인 김정남과 삼촌인 김평일은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이 조상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혈연관계를 알 수 없도록 족보 책까지 모두 빼앗아 낸 김일성은 ‘곁가지’라는 이상한 말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복잡한 여성관계와 자식관계, 이들 가운데서 대를 이을 자식을 바로 정하기 위해 김일성이 만들어 낸 용어가 ‘곁가지’입니다. 가족이라 해도 ‘곁가지’에 속하면 권력이라는 마당에 얼굴조차 들이 밀 수 없는 것이 김일성 일가의 원칙입니다.

김정일의 동생인 김평일이나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그런 ‘곁가지’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곁가지’ 중에서도 가장 쓸모 없는 ‘곁가지’인 김정은이 어떻게 권력을 이어 받을 수 있었는지 북한 인민들은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 인민들의 족보와 본관을 말살해 버리면서까지 권력에 집착한 김일성과 김정일이지만 친일파 후손인 어머니를 둔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 줌으로서 저들만의 족보이고 본관인 ‘백두혈통’마저 제 발로 뭉개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김일성이 북한 인민들로부터 빼앗아 낸 족보와 본관, 그리고 자신들의 영원한 권력을 위해 만들어 낸 ‘백두혈통’이라는 족보와 본관에 과연 정통성이란 게 있는지, 순수한 혈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제 김정은 정권은 증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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