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참관용 과학기술보급실

김연호-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2024.12.24
[김연호의 모바일 북한] 참관용 과학기술보급실 선교편직공장 노동자들이 내부에 꾸려진 과학기술보급실에서 학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바일 북한’ 김연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참관용 과학기술보급실입니다.

 

지난주 노동신문은 과학기술보급실 운영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을 잘 꾸려 놓은 곳은 많지만 운영을 실속 있게 잘 해서 인재역량을 실제로 강화하고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운영 계획을 형식적으로 세우고 총화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과학기술보급실에 가보면 텅 비어 있거나 자기 분야와 상관없는 원격교육대학의 분교가 돼 버린 단위들이 있다고 합니다.

 

열성독자는 둘째 치고 과학기술보급실에 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단위들이 있다는 건데, 노동신문은 이걸 선전용, 참관용 과학기술보급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설로 전락한 곳들이 꽤 있나 봅니다. 전에도 이런 식의 비판 기사들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을 계속 보도하는 건 그만큼 북한 당국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과학기술보급실은 참관용, 선전용이 아니다, 이렇게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을 신랄하게 비판한  기사는 올해에만 열 건이 넘습니다. 사실 과학기술보급실을 실속 있게 운영해라, 운영을 정상화해라, 이런 얘기가 나온 지는 꽤 됐죠. 멀리는 2016 3월에 함경남도 북청군의 한 과학기술보급실이 내용적으로 전혀 실속이 없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컴퓨터 망은 고사하고 컴퓨터가 한 대도 없고 책걸상만 있어서 회의장인지 과학기술보급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에는 중앙의 지시를 아직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단위들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2016 7차 당대회에서 과학기술보급실을 잘 꾸려놓고 운영을 정상화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2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과학기술 보급기지들의 운영을 실속있게 총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목표했던 만큼 운영 정상화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겠죠.

 

운영 정상화의 책임은 각 단위의 당 일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의 운영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자료기지를 폭넓고 쓸모 있게 구축하는 한편, 과학기술보급원들을 제대로 훈련하라는 주문이 이어졌습니다. 과학기술보급실 운영의 기본은 자기 공장과 직종에 맞는 전문지식 습득이라는 점이 거듭 강조됐는데요, 사실 이건 과학기술보급실의 기본 목적이죠. 그런데도 이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나 봅니다.

 

특히 과학기술보급실은 ‘원격교육이나받는 장소가 아니라는 지적이 거듭되고 있는데요,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과학기술보급실에서 자기분야와 상관없는 원격교육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만합니다. 각 단위들의 전문분야가 있을텐데, 근로자들이 그와는 상관없는 분야를 전공하는 이유가 뭘까요? 북한은 원격교육을 지식경제시대에 걸맞는 일하면서 배우는 고등교육체계로 선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원격교육을 받는 근로자들이 자기 단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단위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원격교육대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각 단위에서 대학생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과학기술보급실을 이용했을텐데, 중앙에서는 자기 단위의 생산활동과 직접 관련 있는 전문지식 습득을 위해서만 원격교육을 받으라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이건 굉장히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신발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문학이나 예술, 외국어, 혹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제품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로자들은 생산기계의 일부로 취급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난 뒤에도 과학기술보급실에 가서 공부하라고 근로자들에게 강요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과학기술보급실에서 자기 공장, 기업소의 생산적, 단위별 특성과는 상관 없는 것까지도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근로자들의 복지차원에서 기업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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