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이제 2022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요.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이제 2022년도 저물어 갑니다. 오늘은 무엇을 갖고 오셨나요?
도명학: 네, 오늘은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남한노래를 준비해봤습니다.
MC: 지난 시간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혹시 트로트를 갖고 나오신 건가요?
도명학: 네, 그렇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미로'와 '또 만났네요'를 들어 보고 가사도 살펴 보면서 이야기 나눌까 합니다.
MC: 그럼 어떤 노래부터 들어 볼까요?
도명학: 먼저 지난 1984년에 발표된, 남한 가수 최진희가 부른 '사랑의 미로'부터 들어 보시겠습니다.

사랑의 미로
(작사 : 지명길 / 작곡 : 김희갑)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을 알 수 없어요
사랑으로 눈먼 가슴은
진실하나에 울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흐르는 눈물은 없어도
가슴은 젖어버리고
두려움에 떨리는 것은
사랑의 기쁨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때로는 쓰라린 이별도
쓸쓸히 맞이하면서
그리움만 태우는것이
사랑의 진실인가요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노래: 사랑의 미로 / 최진희 / 출처: 유투브 채널 '루트리스')
MC: 선생님, 가사를 보면 아주 전형적인 사랑 노래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이 노래의 가사를 문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노래 사랑의 미로 가사는 문학적으로 봐도 잘 쓰여 진 한편의 서정시라고 생각됩니다. 곡을 떼고 가사만 읽어도 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거기에 곡도 좋습니다. 가사와 곡의 궁합이 정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MC: 어떤 면에서 이 노래가 북한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도명학: 사랑에 대한 감정은 남북이 따로 없는 보편적 감정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북한에는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 노래가 많은 남한보다 북한에서 더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죠.

MC: 북한은 애정표현에 있어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사랑의 미로'를 일반 북한 주민들이 어디서든 맘 놓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도명학: 일단 이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남한 노래니까 자유롭게 불러도 되는 노래라고 할순 없습니다. 그러나 노래에 북한 체제를 자극하는 대목이나 윤리 도덕적으로 불건전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도 없기에 부르다가 단속돼도 큰 처벌은 받지 않습니다. 물론 간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렀다면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번지겠지만 일반주민들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부릅니다. 또 단속해야 할 사람들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니 통제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사람들은 남한 노래를 부르다가 걸리면 남한 노래인 줄 몰랐다고 우깁니다. 중국 연변 노래인 줄 알았다고 오리발 내밀죠. 아무래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고 연변은 조선민족자치주다보니 연변 노래를 불렀다면 처벌이 덜하다는 점을 알고 그러죠. 실지로 연변 가요들이 북한에 돌아다니는데 남한 것과 구분이 잘 안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MC: 다음에 들려주실 노래는 어떤 건가요?
도명학: 네, 다음은 남한 트로트이 전설이죠. 가수 주현미의 '또 만났네요' 입니다.
‘또 만났네요’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야속한 그 사람
약속이나 한것-처럼
또 만났네
나도 모르게 생각만해도
설레이는 내 마음
언-제 볼까 궁금했는데
또 만났네-요
어쩌다 눈길이
마주칠 때면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네
그 언제쯤 말을 붙일까
때가 되면은
때가 되면은
사랑을 고백 할거야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야속한 그 사람
약속이나 한것-처럼
또 만났네
나도 모르게
그려만 봐도
보고싶은 내 마음
며-칠 동안 안보이더니
또 만났네-요
당신과 헤어져
헤어질 때면
자꾸만 아쉬워
아쉬워 지네
이게 바로 정 이란걸까
때가 되면은
때가 되면은
사랑을 고백 할거야
어쩌다 눈길이
마주칠 때면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네
그 언제쯤 말을 붙일까
때가 되면은
때가 되면은
사랑을 고백 할거야
(노래: 또 만났네요 / 주현미 / 출처: 유투브 채널 'southkoreanfolksongs')
MC: 청취자 여러분도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이 노래 역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 북한주민들이 트로트, 그 중에서도 '사랑의 미로'와 더불어 바로 이 노래 '또 만났네요'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노래들이 순수한 사랑을 진솔하고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어서죠. 사랑의 미로를 제가 처음 들은 것은 열차에서였습니다. 혜산에서 평양까지는 급행열차였는데 달리던 중에 정전이 되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온밤 노상에서 지내야 했죠. 그때 캄캄한 열차 내에서 무료함에 지친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오락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노래를 부르라고 지목된 한 사람이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이 워낙 노래를 잘 부르기도 했지만 노래 자체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같은 심정이어서 다시 한번 불러달라고 앵콜까지 받았죠. 그날 그 손님이 딱 두 번을 불렀는데도 가사와 곡이 전부 외워지더라고요. 다만 그 노래가 남한노래인지 중국연변노래인지는 몰랐습니다. 훗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남한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됐죠.

노래 “또 만났네요”는 몰래 부를 필요가 없어진 특별한 경우입니다. 2004년 8월 평양모란봉 공원에서 열린 남한의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 평양편이 북한 전역에 생방송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평양을 방문한 가수 주현미와 송대관이 초대 가수로 나와 노래를 불렀죠. 송대관이 “네박자”를 불렀고, 주현미가 “또 만났네요”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숱한 사람들이 녹음했던 것 같아요. 바로 이튿날부터 그 노래를 거리에서도 들릴 정도로 오디오를 크게 틀어놓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가 됐죠. 중앙방송으로 전국에 생방송 했으니 당국이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거죠. 물론 그 후 사람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부르니까 자제하라고는 했는데 처벌받았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절로 대중가요가 되어버렸다고 할지 아무튼 인기가 대단했고 북한 주민 전체가 송대관, 주현미 팬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MC: 북한에도 사랑 노래가 있나요? 있다면 남한 노래와 다른 점은 뭔가요?
도명학: 물론 북한에도 사랑을 주제로 가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덧칠하니까 진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든다면 북한에서 꽤 인기 있는 노래들인 "처녀시절", "아직은 말 못해"를 들 수 있습니다. 가사 내용을 보면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잘생긴 미남자라거나 직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광산의 깊은 갱에서 당의 방침 관철을 위해 일밖에 모르는 청년광부입니다. 여성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도시로 시집갈 생각이나 할 것이 아니라 당국이 중요시하는 광물생산과제를 수행하느라 몸 바쳐 일하는 광산 청년들과 많이 결혼할 것을 독려하는 노래죠.
MC: 북한에서 남한 노래처럼 가사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도명학: 이념과 무관한 사랑을 소부르주아적 사랑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적인 감정으로만 맺어지는 사랑은 동물들도 하는 암수 관계나 다를 바 없지 않냐는 거죠.
MC: 남녀간의 사랑까지도 북한 정권이 관리 감독하겠다는 의미로 봐도 무리는 아닐까요?
도명학: 사랑을 하라 말라, 강제하는 건 아니니까 관리 감독이라고까지 하긴 그렇지만 아무튼 남녀 간 사랑이 이념에 기초한 관계여야 한다는 주입은 늘 하고 있죠. 예컨대 군대에서 부상으로 장애인이 된 영예군인, 남한에서는 상이군인이라고 하는, 제대군인에게 시집가면 크게 표창한다든가, 너무 일찍 결혼하면 조혼이 낡은 사회 잔재라고 비판합니다.
MC: 트로트는 가사도 그렇지만 멜로디가 참 독특합니다. 문학이라는 주제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북한에서 트로트 풍의 멜로디로 작곡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글쎄요. 저는 음악이 전문가나 아니라서 작곡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트로트 풍의 곡이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곡과 거리감이 있다고 보여져 그렇지 않나 생각됩니다..
MC: 2022년 한 해를 보내며 북한에 있는 청취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네, 북한동포 여러분 온 한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경봉쇄와 이동통제로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듯 머지않아 인민의 행복한 새 세상이 밝아올 것입니다. 새해 2023년 역시 어려움이 지속되겠지만 어떻게든 꿋꿋이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
MC: 지난 한해동안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명학: 수고하셨습니다.
MC: 오늘은 북한 주민들이 많이 따라 부른다는 남한의 인기곡 백단아가 부른 '찔레꽃'을 들으시면서 마치겠습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한 해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는 2023년 새해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노래: 찔레꽃 / 가수 백난아 / 출처: 유투브채널 ‘루트리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