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한국 사랑회 이강원 회장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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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보스톤 한국 사랑회가 주관한 안보 강연회에 탈북자 김영순 씨가 강사로 참가했다. 왼쪽은 이강원 회장.
2012년에 보스톤 한국 사랑회가 주관한 안보 강연회에 탈북자 김영순 씨가 강사로 참가했다. 왼쪽은 이강원 회장.
사진-보스톤 한국 사랑회 제공

지난 1966년 KBS 서울 중앙 방송국에선 당시 26세의 초등학교 교사인 ‘이강원 스토리’가 방송됐다. 45분짜리 6.25 특집 드라마였다. 이는 이강원 씨 아버지와 작은형이 공산당으로부터 학살된 반공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 이홍은 옹은 건국에 관여한 우익 인사로 대한청년단 춘천지역 단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6.25 때 공산당에 의해 반동 괴수로 낙인 찍혀 살해됐으며, 큰형은 경비대 입대 6.25 전쟁에 참가했으며, 작은형은 군번 없이 전투에 참여했다 전사했다. 온 가족이 전쟁으로 산산 조각난 상태였다. 이강원 씨는 강원도인으로 미국에 와 시카고 한인회와 보스톤에서 한인회 창립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보스톤 한국 사랑회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이강원 씨 가족 이야기와 보스톤 한국사랑회 활동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이강원 씨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다.

이강원: 저희 아버님은 해방 직후 반공 청년단에 소속되어서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 남한에 있는 공산당들을 전향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을 조직 속에서 하다가 제헌 국회에 아버님을 나가라고 조직원들이 추천했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공산당 빨갱이들을 때려잡아야지 제헌국회에 나가면 뭐하느냐! 라며 제헌국회에도 출마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요.

이강원 씨는 아버님이 이승만 박사와 함께 빨갱이 척결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6.25 나자 이민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는 어려움을 겼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강원: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나서 대한청년단에서 이승만 박사와 함께 빨갱이 척결에 대해 일을 했어요. 저도 현지에서 봤습니다만, 우리 집이 상당히 큰 부잣집이었는데 마당에다가 빨갱이들 열아홉 명씩 끌어다가 대한민국으로 전향을 시키는 것을 현장에서 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전향을 시키는 일을 하다가 6.25가 나니까? 아버지가 검찰이나 경찰보다도 더 반동 괴수로 찍어서 붙잡혀 처형당하셨는데 그때 어렸을 때 봐도 연일 서울을 출장 갔다 오시곤 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빨갱이 척결하는 단체에서 활동하시느라 다니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이런 일을 하시다가 잡혀 처형을 당하셨죠.

이강원 씨는 작은 형에 대한 이야기 들려준다.

이강원: 큰 형님은 전쟁이 나기 전에 경비대 시절에 군대에 가셨기 때문에 6.25 때는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셨고요. 그리고 작은 형님이 국민학교 교사로 있다가 6.25가 터지니까? 바로 거시서 방위군에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교사로 있다 들어갔으니까? 방위군 장교로 들어간 것 같은데 인제로부터 인민군이 처들어오는 바람에 적에 포위가 되면서 방위군이니까? 이동을 제때에 하지 못해서 아마 학부형내 집에 총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붙잡혀가는 것을 학부형들이 봤답니다. 그다음에 소식이 없으니까? 인민군들이 그때는 죽이고 하니까, 정식 군인이 아니고 방위군이었으니까 죽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강원 씨는 아버지가 1963년에 순국 반공청년 유공자 공적 표창을 받았지만, 유공자로서 대우나 명예 회복은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강원: 1963년 10월 11일 자로 순국반공청년유공자 이렇게 공적 요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6.25  때 무명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됐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대통령 취임하기 전에 전국에 반공청년유공자들을 조사해서 내각 수반이 표창했습니다. 표창내용은 순국 반공청년유공자로 수록이 됐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차원의 유공자가 됐는데 국회를 통과하는 유공자 법에 의해서 모든 절차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국회에서 법으로 정해 놓지 않아서 어느 귀퉁이도 이분들은 유공자로서의 대우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강원 씨는 온 가족이 산산조각난 상태로 6.25전쟁 중에 삶은 고통스러웠다고 들려준다.

이강원: 저희는 그 반동 괴수의 집이기 때문에 6.25가 나자마자 인민군들이 우리 집을 전부 큰 종이에 각개 표시를 해서 문들을 전부 봉해 놓았어요. 그리고 도장을 찍고요. 그래 집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래 그 집을 다 차압을 한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반공 괴수 네 집이 되니까? 동네의 빨갱이 아닌 집들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어서, 와서 도와 주다가 자기들도 잘못될까 봐 얼씬도 안고 도와주지도 못하고, 우리는 그 집에 뻔히 내 집이니까? 광에 곡식이 있고 집에 들어가면 옷가지 등 다 있는데 일단 들어가지를 못하니까? 그 당시 우리는 굶고 있을 때도 감자는 캐 먹지 못하고 울타리에 있는 호박을 몰래 따먹고 연명을 하며 고생을 했습니다.

이강원 씨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초등학교 교사 시절 이야기로 넘어간다. 춘천 사범을 졸업한 이강원 씨는 첫 부임지 평창군 진부초등학교에서 어린 국민학생들을 돕고 지도하던 이야기는 사회 개혁가의 삶이라고 생각된다

이강원: 제가 교사로 나갈 때는 1961년도에 나갔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시골로 갔습니다. 평창이라는 곳인데 가보니까? 아이들이 뭐 코를 손등으로 닦아서 손등이 반들반들 할 정도로 터지고, 이빨도 안 닦고 해서, 저는 학교에 나가자마자 이런 아이들을 건강에 집중해야겠다 해서 물을 데워서 학교에서 대야에 손을 담가 뿌려서 강제로 씻어주고 칫솔을 하나씩 준비해서 학교에다 걸어 놓고 점심만 먹으면 다 일제히 나가 일을 닦게 하는 등 이런 일도 하고요. 옛날에는 그런 음악 기구가 있고 그래도 한 번도 쓰지 않고 먼지가 가득한 것을 전부 꺼내서 타악기 주악 대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악 대 행진도 시키고 운동회 때도 활동하게 하고요.

이강원 선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교 교실에서 결혼식을 올려 세상의 큰 화제가 된단다.

이강원: 제가 결혼은 이렇습니다. 이미 약혼을 해 놓은 사람이 있어서 약혼하고 2년 동안 있었지마는 결혼을 못 하고 있었는데 66년 6월 1일 날 직원회의가 있었는데 직원회의에서 월 중 계획이 나오는데 6월 5일이 토요일이고 6월 6일이 현충일이고 6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농번기 휴가를 하는 걸로 해서 조회 시간에 얼른 생각할 때 아 요 때에 내가 결혼을 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조금도 지장이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직원회의가 끝나자마자, 교장 선생님에게 6월 5일 날 결혼을 할 테니 내일부터 3일간만 휴가를 주십시오. 직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교실에서 환경정리 해 놓은 아이들 작품 그대로 놔두고 앞에만 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해 제 교실에서 학부형들과 함께 결혼식을 올려 그 당시만 해도 아주 획기적이고 정말로 그런 결혼식을 처음 봤기 때문에 좋은 점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강원 씨는 미국에서 시카고 한인회와 보스톤에서도 한인회 창립하는데도 힘썼다. 그리고 지난 2006년에는 지금의 보스톤한국사랑회 전신인 보스톤에 안보단체를 만들었단다. 바로 2세들을 향한 정체성을 길러주기 위함이었단다.

이강원: 저는 아버지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 또 반공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분이라서 어떻게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건국한 대한민국인데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그 울분이 저 자신 가슴속에서 잠재되어 나오기 때문에 이거 안 되겠다. 보스톤에서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 정체성을 길러서 우리가 미국에 살지만, 미국에 사는 후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갖도록 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마침 여기 재향군인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보스톤에서요. 그래 여기 한인회장님들, 전직 한인회장님들, 현재 한인단체장님들, 전직 단체장님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안보에 관해서 관심 있는 교수나 이런 분들과 안보협의회를 조직해서 이 지역에서 안보 관련 행사를 하다 보니까? 안보협의회 하면 젊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하고 뭔가 고리타분(하는 짓이나 분위기 따위가 새롭지 못하고 답답하다 뜻)한 생각을 해서 보스톤한국사랑회로 명칭을 바꿔서 활동은 안보에 관한 활동을 하면서 거기에 우리 회원과 위원은 젊은 사람들까지도 지금 함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대학원생이나 박사과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보스톤 한국 사랑회가 그동안 펼쳐온 행사 중에 안보 강연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

이강원: 하버드 대학에는 세계 각국에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와서 공부하고 언젠가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면 10년 후든 20년 후든 자기 나라의 지도자들이 될 사람들이 여기 하버드 대학에 와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안보강연회도 하고 옛날 돌아가시기 전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 같은 분도 모셔다가 안보강연을 했는데, 재작년에는 한국의 탈북자 중에서도 유명한 김영순 씨라는 탈북자가 있습니다. 김영순 씨를 하버드 법대생을 모아서 김영순 씨로 하여금 체험담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런 행사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김영순 씨의 북한에 대한 실증을 들어보면 이 사람들이 언제가 자기 나라에 가게 되면 정말로 북한에 대해서 분명한 것을 알지 않겠나 그래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강원 씨는 지난 2013년 자신의 회고록을 발간한 바 있다. 이강원 씨는 회고록 발간에 보통사람들이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크고 귀하게 생각하고, 순간의 작은 일이라도 기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내용들이 책에 담겼다고 들려준다.

이강원: 개인적으로 살아온 여러 가지가 평탄하게 살아온 게 아니라 굴곡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가 살아온 것을 책에 남김으로써 요즘 젊은 사람들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살아왔다는 것을 책에 남김으로써 그걸 본 사람이 한 두 사람이라도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한국에서 산 것, 미국에서 산 것, 그리고 신앙을 갖고 사는 것, 그동안에 쓴 시집 이런 걸 합해서 회고록을 냈습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이강원 씨 가족 이야기와 보스톤 한국사랑회 활동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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