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 전자결제카드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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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월급 인상, 북한 주민들은 불만?

-전자결제카드 사용의 선제 조건

-한국 드라마 보는 내 자식을 신고하라고?

월급이 오르면 사람들은 보통 기뻐하죠. 그런데 북한에선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지금 북한에선 한국 드라마를 보는 비사회주의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자녀를 어머니에게 신고하라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이예진: 지난해 12월, 북한 공무원과 공장 노동자들의 한달 생활비, 월급이 15배 올랐다고 하죠. 모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생활 안정에 도움이 될 만한 제도를 만든 게 아닌가 싶었는데, 정작 주민들은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문성휘 기자, 생활비(월급) 인상이 왜 주민들에게 불편하고 위험한 거죠?

문성휘:네, 월급이 기존의 10배, 15배로 올랐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주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 당국이 공무원,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렸다고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고 생산을 하는 공장기업소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고 하면 노동당과 근로단체 조직, 사법기관과 국영기업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병원과 교육기관, 철도, 전력 부문의 공무원, 근로자들도 해당되는데요.

그 외 같은 공무원, 근로자라 해도 지방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기관기업소에서 일을 하게 되면 높아진 월급을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지방 산업공장들이 생산을 못하고, 그에 따라 지방의 재정이 늘 적자니까, 공무원이나 근로자들도 받을 월급이 없는 겁니다.

문제는 지방의 경우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기업소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비율이 40%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엔 지방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기업소나 지방산업공장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들인 거죠. 한마디로 지방에는 높아진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인구의 40% 정도이고, 애초에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의 비율이 60% 정도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월급을 높였으니 이젠 장사를 그만두고 모두 공장기업소에 출근을 해라, 장마당에서 식량, 해산물, 국영기업소들에서 생산한 생필품들을 팔지 못한다, 이러니 지방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기업소, 지방산업공장의 근로자들은 난리가 나는 거죠.

국가예산으로 운영돼 북한 돈으로 월급 3만원, 3만5천원을 받는 주민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쌀 1kg의 가격이 6천원(0.7달러)이니 높아진 월급 3만원으로는 쌀 5kg밖에 못 산다는 겁니다. 북한 서민들의 식량인 강냉이는 kg당 2천7백원이니 11kg밖에 살 수 없고요. 자식들을 포함한 4인 가족의 경우 이 정도의 식량으로 열흘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는 월급이 없다고 해도 장사를 하면서 근근이 버텼는데 이제는 월급이 올랐으니 일체 장사를 못한다, 이러니까 주민들은 차라리 예전처럼 월급을 적게 받아도 장사를 허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죠.

이예진: 특히 이번 조치에서 인상된 생활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결제카드로 지급해 백화점과 양곡판매소에서만 거래하도록 했다는 건 결국 주민들이 갖고 있는 화폐를 무력화하고, 주민들의 화폐를 중앙은행 체계에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라고 보셨는데요. 전자결제카드의 사용으로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북한 당국이 원하는 대로 회수할 수 있을까요?

문성휘:이게 과연 효과가 있고, 전망이 있느냐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거고요. 지금처럼 장마당을 무력화하고 주민들이 국가가 운영하는 백화점과 종합상점, 양곡판매소에서 생필품과 식량을 구하게 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백화점과 종합상점, 양곡판매소를 통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식량을 넉넉히 공급할 수 있느냐 입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양곡판매소만 보아도 북한 당국이 입쌀(쌀)을 공급하면 입쌀만 팔고, 강냉이를 공급하면 강냉이만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입쌀과 강냉이만이 아닙니다. 찹쌀을 요구하는 주민도 있고, 밀이나 보리가 필요한 주민도 있고, 주민들은 다양한 곡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북한의 경제가 국가계획경제이고, 북한 당국은 국가계획경제에 따라 농장에서 심을 곡종까지 일일이 지정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농장에 지정해준 곡물만 거둬들이게 되고, 따라서 양곡판매소에서도 국가가 거둬들인 곡물만 팔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최근 메주콩과 줄당콩, 기장이나 찹쌀과 같이 국가적으로 심지 않는 곡물을 장마당에서 일부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요. 다만 곡종 별로 10kg 이상을 팔 수 없도록 통제해 주민들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종합상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백화점이나 종합상점엔 아직 기초식품인 된장이나 간장도 준비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양념 재료나 남새(채소)같은 것도 팔지 않고요. 기껏해야 소금 정도만 팔고 있는데, 이 마저도 장마당에서 kg당 북한 돈 600원(0.07달러) 하던 소금을 백화점과 종합상점에선 kg당 800원에 팔아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는 양곡판매소와 백화점, 종합상점을 통해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국가가 주민들이 만족할 만큼 식량과 생필품을 팔지 못하면 주민들은 당연히 비경제권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장마당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민들의 수중에 장악된 화폐를 회수하기 어렵게 된다는 거죠. 또 주민들의 수중에 장악된 화폐를 회수하지 못하게 되면 재정이나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이러한 악순환을 무한히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북한은 이미 2010년 나래카드를 출시하면서 주민들의 전자결제카드 사용을 유도하기 시작했고요. 2021년에는 주민들의 현금 유통량을 줄이기 위해 전자결제법을 제정하면서 제도 정립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북한의 불안정한 전기 사정인데요. 전기 공급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전자결제카드 사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문성휘: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당연히 전자결제카드를 사용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북한은 늘 모순 덩어리라고 지적하는 겁니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은 많은 수력발전소들을 건설했고, 지금도 단천발전소를 비롯해 크고 작은 발전소들을 건설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수력발전은 여름철에 효과가 높고, 가뭄이 심하거나 겨울철이 되면 효과가 높지 않은 결함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북한은 계절에 상관없이 출력이 높은 화력발전소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화벌이를 위해 화력발전 원료인 석탄을 전부 해외에 팔고 있기 때문인데요. 여기다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화력발전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북한의 전력 문제와 관련해 눈 여겨 볼 대목도 있는데요. 지난 15일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제 10기 14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앞으로 원자력발전소, 조수력발전소까지 운영하게 되면 우리는 얼마든지 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원자력발전소를 이미 건설해 놓았으니 운영하면 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앞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인지는 명백치 않습니다. 다만 김정은 정권이 전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은 명백해졌는데요. 전자결제카드의 정상적인 사용이 아닌, 북한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아무쪼록 전기 문제만큼은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눈물까지 보이며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신경을 많이 썼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어머니대회 참가자가 주민강연회에 직접 나서서 비사회주의 범죄를 저지른 자녀를 어머니가 신고하면 당국이 교양한 후 용서해준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남한 영상물을 봤던 아이들마저 공개 처형했던 북한 당국이 용서해주겠다는 이 말,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현지 분위기는 어떤 것 같습니까?

손혜민: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북한사회 분위기는 불안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법당국이 반사회주의적 행위와 비사회주적 행위를 척결하겠다고 지난해 2월부터 사회안전성 포고를 발표하고 주민 단속과 통제를 집중적으로 강화해 왔지만 효과가 미비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지난해 12월 평양에서 진행된 제5차 어머니대회 참가자들을 내세워 자녀의 범죄를 신고하라고 회유하는 겁니다. 자식을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는 당국이 보지 못한 자녀의 범죄를 잘 알 것이니 자발적으로 자녀의 범죄를 법기관에 신고하면 용서해준다고 여맹조직 강연회에서 말했다고 하는데요.

여맹조직은 가정주부 단체입니다. 어머니조직인 거죠. 매주 진행되는 여맹강연회는 당조직이나 여맹간부가 진행해왔지만, 이번에는 가정주부 단체의 성격에 맞게 어머니대회 참가자를 내세워 자신의 자녀가 한국영화를 몰래 보았거나 국가재산, 즉 공장설비나 농장 알곡을 훔치는 등 사회범죄 사건을 솔직하게 신고하면 사법당국이 책임지고 교양하겠다는 것이지만 주민들 속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입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전국어머니대회 참가자가 1만여 명에 달했죠. 앞으로 주민강연회를 비롯해 대회에 참가했던 어머니들의 새로운 선전, 선동이 펼쳐질 가능성,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손혜민:올 한해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가정 단위를 사회세포라며 중시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김정은이 제5차 어머니대회에서 당 대회 못지않게 어머니대회가 중요한 것은 가정교양을 강화하여 비사회주의를 근절하는데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기 떄문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어머니들에게 호소한 건데요. 공권력이 담당할 사회치안 문제까지 가정주부 역할로 부여한 것은 그만큼 김정은 정부로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북한 체제 근간이 불안정하다는 근거겠죠.

3일만 굶으면 인간의 사고가 정상에서 벗어난다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하물며 코로나 생활고가 장기화되고 있어 사회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북한이 자처한 문제라고 봅니다. 기초적인 식량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니 북한이 자처한 문제인 거죠.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주민통제 강화로 사회질서를 세우겠다고 주력하고 있으니 주민들의 반감만 점점 커지고, 민심이반이 부각되는 겁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불안은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당국이 어머니들을 회유하거나 압박하는 사상교양과 선전사업을 지속해도 효과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예진: 북한 주민들 사이에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등 외부 문화가 얼마나 넓고 깊게 퍼졌으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어머니들에게 떠넘겨 자기 자식을 신고하라는 얘기가 나올까 싶은데요. 손 기자라면 신고하시겠습니까?

손혜민:먹고 살기 힘들어 농장 밭의 옥수수를 훔치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라 사회문제입니다. 즉 정책에 문제가 있는 거죠. 공장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국가로부터 받는 월급 가치가 있다면 누가 공장 자재나 농장 알곡을 훔치는 등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하겠나요.

또 반사회주의적 행위도 같습니다. 즉 반동사상문화라고 하는 ‘한국영화를 왜 시청하는가’가 같은 문제라고 봅니다. 수령만을 선전하는 허위적인 영화만 제작하지 말고 한국영화처럼,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문제를 진솔하게 반영한 다양한 영화를 북한도 제작해 방영한다면 청년들이 왜 한국영화를 목숨 걸고 보겠는지 북한 정부도 한번쯤 고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당국이 문제의 본질을 체제구조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청년들과 주민들의 사상적 문제에 있다고 보면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다 못해 이제는 자기 자식을 신고하라고 어머니를 다그치니 황당한 겁니다. 어느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신고하겠습니까.

이러한 조치는 애당초 먹히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반감만 키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머니들 자신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덕적 풍모를 지닌 공산주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하고 있지만, 사상이 밥 먹여주냐는 게 일반 주민들의 인식입니다.

물론 어머니 대회에서 공산주의어머니 영예상을 받거나 최고지도자로부터 금가락지 선물을 받은 어머니들의 당에 충성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신의주의 한 여성은 특류 영예군인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많이 낳아 나라에 바치겠다고 결심하거나 북창군에서는 어머니대회에 참가했던 여성들이 고아들을 데려다 양육하는 등의 소행들이 선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머니들의 역할을 이용하여 젊은 청년들과 주민들을 다잡으려는 북한의 기만적인 선전에 불과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