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지키지 못하는 약속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1-0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에서 열린 '전통고추장 담그기' 체험 행사에 참여한 다문화·새터민 여성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고추장을 담그고 있다.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에서 열린 '전통고추장 담그기' 체험 행사에 참여한 다문화·새터민 여성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고추장을 담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언제 한 번 밥 먹자’는 한국 토박이들의 안부와도 같은 인사말에 그 언제가 언제인지, 날짜도 안 정하고 왜 그런 약속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요.

반대로 한국 토박이들은 탈북자들이 약속을 하면 제 때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약속에 임하는 탈북자들의 자세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지난 시간에 가을을 맞아 탈북민들을 위한 체험행사들이 많다는 소식 전해주셨는데요. 법원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법률적으로 상담이 필요했던 탈북민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겠네요.

마순희: 네. 게다가 남부법원의 법원장님을 비롯해서 변호사님들과 함께 산책도 하고 남북한의 서로 다른, 그래서 더 어려웠던 법률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좋았고 함께 찍은 사진들도 CD로 만들어서 다 보내주었기에 더 좋았습니다. 그날 이후 여러 탈북민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다음번에는 자신들도 꼭 함께 가도록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바로 어제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제주도 가는데 혹시 선생님도 가시는지요? 함께 가면 만날 수 있을 텐데요’ 하고 말이죠.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2박 3일을 즐겁게 보내다 오시라고, 아마 서울이라 저한테는 연락이 안 온 모양이라고 답장했습니다. 사실 서로 일하다보면 7-8년 전에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할 때 만난 적이 있었던 분이었는데 그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만났으면 좋았을 뻔했지만 서로 일정이 다르다 보면 마음대로 안 되기도 해요.

이예진: 워낙 바쁘신 분들이 많잖아요. 선생님은 내일 제주도에 가시는데, 이분은 그 다음 주에 가시는군요. 이렇게 탈북자 분들을 위한 행사나 체험, 여행, 혹은 탈북자 분들이 따로 조직하는 단체 활동이 참 많잖아요. 이런 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마순희: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낯선 한국 땅에서 정착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워야 되는데 배움이라는 것이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실생활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더구나 이런 여러 가지 행사들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정치, 경제, 문화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관계, 살아가는 모습 등 모든 분야의 산지식과 정보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정착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면서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한 정서도 함께 느껴보는 자연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에 북한에서 왔다는 한 어르신은 고향의 사과와 한국의 사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설명하시기도 하더군요. 사과 한 알 마음 놓고 못 먹었던 지난날을 회고하시면서 정말 별세상에 온 것 같아서 요즘엔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즐거워하셨습니다. 화담숲에 갔을 때에는 그동안 법률적인 문제로 고민이 되었던 한 탈북여성이 법원의 변호사님과 함께 산책하면서 차분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탈북민들이 여러 행사에 많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사진들을 본인들에게 이렇게 일일이 보내주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이런 행사는 잊지 말고 불러달라고 했었습니다.

사실 탈북민들을 모집해서 행사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보니 제가 인원을 20명으로 제한을 해서 참여명단을 보냈는데 아마 내년에는 인원을 더 늘려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20명 조직하는 것도 사실은 어려움이 있더군요. 경기도 시흥에서 오신다는 한 남성을 위해 거의 40분을 기다려야 했고요. 또 한 분은 전날 저녁까지 문자도 주고받으면서 꼭 참여한다고 하시던 분이 아침에 연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전화하다가 출발시간이 지나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그 때에야 일어났다는 겁니다. 택시를 타고 가면 안 되겠는가고 하는데 그분이 사신다는 강서에서 법원이 있는 목동까지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안 나와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40분이나 지연되어 출발하다보니 법원 실무자들 보기가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이예진: 그렇죠.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기다리는 거니까요.

마순희: 네. 우리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적응을 못하는 부분이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인데 그분은 10년이 다 되는데도 아직도 시간을 잘 못 지키더군요. 사실 누구나 다 휴대폰이 있기에 깨고 싶은 시간을 맞추어놓으면 울리는 알람이 있어 그리 힘들 것도 없는 일인데도 습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행사들에 참여하라고 하면 그냥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정작 가기 싫으면 이러저러하게 구실을 붙여가면서 빠지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북한처럼 호상비판을 하거나 생활총화를 하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한 번 그렇게 신용을 안 지키면 다음에는 중요한 일이 있어도 그런 사람들은 찾게 되지 않더라고요. 더구나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모임이라면 자신이 참여하지도 않을 거면서 이름만 등록되어 있으면 정작 참여하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도 인원이 다 차서 신청을 못 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탈북민들과 행사들을 자주 하고 있다는 어떤 남한 분이 탈북민 행사는 10시에 시작하면 9시라고 해야 10시에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어서 같은 탈북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었지요. 사실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약속시간은 철칙처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살다보면 부득이한 이유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럴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미리 알려주면 되는 것이거든요. 자신이 늦어서 10분 정도 모임을 지연시켰다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의 시간을 10분씩 앗아가는 격이 된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이예진: 시간이 돈이라는 말도 있기 때문에 요즘처럼 바쁘게 사는 분들에겐 약속이 참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북한에서 혼자 와서 외로운 분들도 많고, 먼저 탈북한 분들에게 정착과 관련해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어서 그런 행사에 참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늦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여러 행사들에 참여하면 그 행사의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정보들도 알게 되고 사람들도 서로 알아가는 좋은 점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전화로 문의하고 상담 받는 것보다 함께 만나서 궁금한 점이나 상담 받을 일들에 대해 얘기한다면 더 잘 알 수 있고 이해도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사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경우도 있고요. 그 전에 저희들이 한국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어떤 단체에서 행사를 조직한다고 하면 웬만하면 내 일을 미루더라도 불러주어서 감사한데 어떻게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랴 싶어서 거의 거절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저도 그렇고 단체에 관여하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지금은 모임을 조직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탈북자들이, 탈북자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 또 요즘 개인적인 성향의 탈북자들이 많은 이유,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