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북한보다 빨간 남한 김치
2024.12.04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지난주에는 남한에 첫눈이 오기도 했어요. 정말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데요. 이순희 씨께서는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요즘 날씨가 정말 추워져서 첫눈이 더 빨리 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면 한반도 사람들을 해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요. 바로 김치 담그기잖아요. 얼마 전에 민주평통 대구시 협회에서 진행한 김장 나눔 자원봉사에 참여해서 김치를 담갔어요. 저도 그때 담근 김치를 한 통 가져왔죠.
기자: 요새는 가정마다 김치냉장고가 있긴 하지만 원래 김장독에 보관했기 때문에 김장하는 시기가 중요했습니다. 김장하는 시기는 평균 온도가 섭씨 4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가 적기라고 해요. 그러면 올해 남한의 김장 시기는 언제였나요?
이순희: 올해 남한에서는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가 김장을 담그기 좋은 시기였어요. 기온이 너무 높을 때 김장하면 김치가 너무 빨리 익어버리고, 온도가 너무 낮으면 김치가 맛이 안 들고 얼거든요. 그런데 또 지역마다 온도가 조금씩 다르니까 남쪽 지방일수록 김장 시기가 조금씩 늦어져요. 예를 들어 서울은 11월 말이면 부산은 12월 말에서 1월에 하는 거죠.
기자: 김치는 남북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기 때문에 배추 수요가 굉장한데요. 그래서 “김장철 배추는 금값, 금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요즘 남한에서의 배춧값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순희: 올해 날씨가 무척 더웠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배추 농사가 잘 안됐대요. 한 달 전만 해도 배추 한포기에 1만 원이 넘었거든요. 이 가격이면 나가서 국밥이나 돈가스를 한 그릇 시켜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비싼 거예요. 그런데 최근에 김장철이 다가와서 상점이랑 유통업체에서 할인 판매를 하기 시작해서 한 포기당 엄청 저렴하면 2천 원에서 3~4천 원 하는 것 같아요. 다들 배춧값 싸지는 이때를 노려서 김치를 담가요.
기자: 배추 가격이 갑자기 내려갔으니, 대량으로 사재기하는 현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순희: 네, 그렇죠. 어제까지만 해도 1만 원이 훌쩍 넘었던 배추가 5분의 1 가격으로 내려갔으니 다들 상점으로 배추를 사려고 모이거든요. 한 명이 모조리 사가면 다른 손님들이 난처하기도 하고 상점 입장에서도 불이익이 많으니 이를 방지하려고 한 명당 살 수 있는 개수를 제한해 둬요. 어제 제가 갔던 상점에는 “1일에 배추 3포기로 구매를 제한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어요. 또 국가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식료품이 비쌀 때는 국가가 나서서 그 값을 인하하려는 조처를 하고 있어요.
기자: 남북한의 김장 모습은 무엇이 다른가요?
이순희: 제가 북한에 살 때는 김치냉장고도 없고 겨울에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도 없어서 김장철이 되면 절여놓을 채소들은 모조리 담가야 했어요. 겨울에는 채소가 나오지 않으니 새 채소가 밭에서 날 때까지 먹을 식량이기도 했고, 또 그때 김장하지 않으면 못 먹게 됐거든요. 그런데 남한에는 김치냉장고가 집마다 있을 뿐 아니라 비닐하우스 농법이 발달해서 배추를 상점에 가면 사시사철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김장철이 돼도 그렇게 많은 양의 김장을 하지 않아요. 보통 김치냉장고에 배추 10포기 정도 김치로 담가서 넣어두면 김치냉장고가 알아서 숙성해주고 익혀서 먹기 좋게 만들어줘요.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비슷하더라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양념을 얼마나 풍족하게 쓰는지 몰라요. 이번에 김장 나눔 봉사하러 가서 김치를 담그는데 제 딴에는 양념을 많이 넣는다고 넣었는데 옆에 남한 분이 제가 양념 넣은 것을 보더니 “배추가 빨갛지가 않다”면서 더 넣으라는 거예요. 배추를 맨 처음 포기부터 마지막 포기까지 빨간 양념을 빈틈없이 바르더라고요. 어느 한 잎도 양념이 조금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기자: 북한에서는 양념을 배추보다 더 넉넉하게 준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낯서셨죠?
이순희: 맞아요. 봉사활동 하면서 고향에서 김치 담그던 생각이 나서 그때 얘기를 들려줬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북한에는 김치냉장고가 없고 비닐하우스 농사도 거의 없기 때문에 김장철에 반년 치 먹을 채소 반찬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제일 적게 김장하는 집이 100포기 정도 하고, 식구가 3~4명 되는 집들은 보통 200~300포기씩 담갔거든요. 그렇다 보니 그 모든 배추에 남한처럼 양념을 많이 넣을 수가 없었어요. 또 양념값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배춧잎 가운데에만 양념을 조금 묻힌 채로 독에 넣었다가 김치 꺼낼 때 가운데 양념 묻은 건 김치로 먹고 안 묻은 건 지져 먹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했어요. 절인 배추다 보니 국을 끓여도 생배추로 끓인 된장국보다 맛이 없긴 해요.
또 (북한에는) 김치냉장고가 없으니, 마당에 창고를 지어서 보관하거든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김장독을 보관할 데가 없으니, 집마다 일정한 크기의 땅을 나눠주고 그곳에 창고를 짓게 하죠. 그 창고에다가 독을 5~6개씩 묻어서 통김치, 동치미, 섞박지 등 다른 종류 김치들도 보관했어요. 함께 봉사하던 남한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니 “김장철마다 200~300포기를 김장하려면 온 가족이 고생했겠다”고 놀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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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장철 담그는 김치는 빨간 양념의 배추김치 외에도 다양한데요. 남한에 와서 다른 김치도 담가보셨나요?
이순희: 네, 그럼요. 남북한의 김치가 조금씩 다르긴 한데 동치미 담그는 방법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더라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무우를 채로 쳐서 양념에 버무린 김치는 잘 안 담그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한 독씩 담갔어요. 남한에도 무채김치가 있긴 한데, 먹고 싶을 때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데 이것도 좋아요.
기자: 남한에서는 특히 요즘 세대들은 김장철에 아예 김치를 담그지 않는 집도 많아졌어요. 마트에 가면 다양한 김치를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순희: 맞아요. 남한 젊은 세대 중에는 상점에 가면 편하게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다면서 굳이 김장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남한에는 김치 공장, 김치 브랜드도 많아요. 자유경쟁 사회니까 김치를 맛있게 만들어야 잘 팔리잖아요? 그래서 공장에서 만든 김치도 직접 김장한 김치만큼 맛있어요. 그러니 젊은이들은 브랜드별로, 종류별로 편하게 사 먹죠. 심지어는 절인 배추만 팔기도 하거든요. 김장에서 가장 힘들고 품이 많이 드는 게 배추를 절이는 거잖아요? 그 배추를 사다가 본인이 원하는 양념만 묻혀서 먹으면 되니 얼마나 편리해요.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가족 혹은 이웃끼리 모여서 김장도 하고 맛있는 수육도 만들어 먹으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은 어느 고장이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자: 바로 김장한 겉절이김치에 수육을 얹어 먹는 것이 별미긴 하죠.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김장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