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중국 송금도 간단하게
2024.10.1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순희: 지난주에 제가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다녀왔어요. 저희 집 근처 은행 업무시간이 9시부터 4시인데요. 은행이 멀지는 않지만, 저도 근무가 있으니 이 시간에 맞춰 은행에 다녀오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자투리 시간을 내서 은행에 다녀왔는데요. 업무를 마치고 일어서려니까 은행 직원이 저한테 “고객님, 이 업무는 모바일뱅킹으로도 가능하세요”라고 안내해 주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제가 집에서도 혼자 처리할 수 있겠더라고요.
기자: 모바일뱅킹이란 손전화를 뜻하는 ‘모바일’과 은행을 뜻하는 ‘뱅크’가 합쳐져서 휴대전화나 스마트기기로 집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죠. 어떤 업무를 보셨길래 휴대전화로도 가능했던 건가요?
이순희: 제가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서 돈을 송금해야 했어요. 공인인증서라고 하면 북한 청취자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남한에서는 전산상에 신분증 같은 역할을 하는 전자인증서가 있어요. 이걸 공인인증서라고 부르는데요. 주로 거래하는 은행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본인인증을 하면 발급해 줘요. 그런데 보안카드라고 하는 예전에 발급받아 뒀던 카드만 있으면 제가 집에서 혼자 공인인증서를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더라고요.
기자: 온라인, 모바일 등 원거리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은행 업무가 많아졌는데요. 특히 은행이 집으로부터 멀리 있어서 찾아가기 어려운 분들께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직접 사용해 보니 어떠셨나요?
이순희: 모바일뱅킹을 사용해 보니 너무 편리하죠. 예전에는 은행 업무는 꼭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다가 은행 창구로 가서 은행원과 1:1로 업무를 보거나 그 옆에 입출금하는 ATM 기계가 있어서 그걸 이용했는데요. 제가 남한에 와서 ATM기기가 있는 걸 보고 ‘참 간편하다!’고 놀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이렇게 금방 또 발전해서 집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밥 먹으면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니 새삼 놀랍죠. 특히 북한 은행이랑 비교하면 더 차이가 나요. 북한에도 은행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은행으로서 제 역할을 못 했어요. 제 급여가 70원일 때 20원씩 의무적으로 은행에 (적금을) 들어야 했거든요. 이 적금은 직장생활 끝날 때까지 해야 했어요. 적금에 이자는커녕 그냥 본전만 찾는 거였어요.
기자: 남한에서도 이자율이 낮은 적금 상품은 인기가 없는 이유가 물가 상승 때문인데요. 인플레이션이라고도 하는 물가 상승은 화폐의 가치를 떨어트려서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 예금한 금액보다 그 가치가 떨어지게 되죠.
이순희: 맞아요. 남한에서 같은 짜장면이 2000년도에는 3천 원이었는데 요즘에는 6~7천 원을 넘기는 곳이 많아요. 쉽게 말해 3천 원을 20년간 저금하면 2020년에 똑같은 짜장면을 반 그릇도 못 사 먹게 되는 거죠. 제가 (북한에서) 1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강제로 적금을 부었는데요. 직장을 이직하게 되면서 은행에 찾아가 적금을 찾으러 갔어요. 그런데 액수가 1,800원밖에 없다는 거예요. 20원씩이면 적어도 3천 원은 넘을 텐데요.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은행 직원이 당당하게 돈을 못 찾는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돈인데 왜요?”라고 물으니까 “묻지 마세요. 국가가 하는 일입니다”라는 거예요. 전 그 돈을 적금하는데 13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결국 한 푼도 못 받고 국고에 들어가고 말았어요. 그러니 누가 적금을 하겠어요?
기자: 남한에 온 지 꽤 되셨는데 남한에 와서는 적금을 들고 계신가요?
이순희: 남한은 자유 경제체제라서 돈을 관리하는 방법도 다양한데요. 물론 적금도 그중 하나죠. 저 같은 경우는 적금으로 돈을 어느 정도 모으면서 소소하게 다른 곳에도 투자하곤 해요. 그래도 남한에선 적금이 믿을만한 자산이에요. 그리고 큰돈이 들어갈 때 있으면 돈을 2년 혹은 3년씩 안전하게 모으기에 적금만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화폐개혁까지 하니까 주민들은 말라 죽어갔죠.
<관련기사>
[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셀프서비스 적응기 — RFA 자유아시아방송
[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타임머신 타고 온 남한 생활 — RFA 자유아시아방송
기자: 화폐개혁이란 신권을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존의 화폐 가치를 절하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직접 북한에서 화폐개혁을 겪으셨던 건가요?
이순희: 네, 그럼요. 적금은 절대 안 돌려주고요. 게다가 장사한다고 큰돈을 가지고 물건을 거래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장사밑천인 돈이 다 휴지 조각이 됐었어요. 특히 중국 연변 쪽의 국경지대 사람들은 큰돈을 움직였거든요. 절망에 빠진 일부 주민들은 자살까지 했고요. 이전에 북한에서는 10년에 한 번꼴로 화폐를 개혁하니 사람들이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었죠.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와서 10년이 넘게, 15년 정도를 살았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화폐개혁을 한 적이 없어요. (남한의) 직장 동료에게 물어보니 아주 예전에 화폐개혁이 있긴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대요. 또 북한처럼 은행에서 적금을 안 돌려주거나 돈을 교환해 주지 않은 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남한에서는 1962년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화폐개혁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요. 앞서 말씀하신 모바일뱅킹 얘기를 이어서 하자면요. 돈을 송금할 때는 어떻게 모바일뱅킹을 이용할 수 있나요?
이순희: 기존에 가입해 둔 은행 애플리케이션에서 송금받을 사람 정보와 보낼 금액을 입력하고 본인 인증만 하면 끝이에요. 본인인증도 등록된 휴대전화 번호나 공인인증서 또는 휴대전화에 등록된 지문만 있으면 되는데요. 보통 한번 인증해 두면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에 빠르면 30초 안에도 돈을 보낼 수 있어요. 예전에는 하루 휴가를 받거나 반차를 내고 송금할 돈을 직접 들고 가서 업무를 봤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집에 들어앉아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요.
기자: 그럼 해외에서도 모바일뱅킹이나 전자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데요. 직접 경험해보셨나요?
이순희: 네, 해봤죠. 제가 외국 여행 갔을 때 그 나라에서 운영하는 매점이 있었는데 그 매점에서 바로 한국 카드 사용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현금을 안 가져가고 한국 카드만 가져가서 제가 필요한 물건 다 샀어요. 그런데 카드뿐 아니라 그 나라에서 통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제 카드를 등록하면 바로 결제가 가능하더라고요. 어제도 중국에 돈을 보낼 일이 있었는데 단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집에 앉아서 휴대전화로 송금했어요. 중국뿐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이런 방법으로 송금할 수 있고요.
기자: 해외 송금은 수수료가 붙지 않나요?
이순희: 네, 맞아요. 해외송금은 수수료가 붙는데 이건 중간 업체마다 가격이 다르긴 해요. 그런데 평균적으로 몇십만 원, 몇백만 원 보낼 때 (수수료가) 몇천 원 정도이기 때문에 해외송금이 필요한 사람은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모바일뱅킹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