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 갑] 느려터진 태양호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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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뉴스보다 새로운 정보가 더 빨리 모이는 인터넷 소통공간 SNS. 지금 한국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인들이 관심 갖고 있는 남북한의 뉴스를 분석해 보는 <화제성 갑>.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진이고요.

김금혁: 안녕하세요? 저는 평양 출신 시사평론 유튜버 김금혁입니다.

이예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년 5개월 만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습니다. 장소를 우주기지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겠죠?

김금혁: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두 독재자가 어디서 만날까, 누구를 만날까, 혹은 누구를 동행할까 등등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공개되었는데 모스크바도, 블라디보스토크도 아닌 러시아의 우주기지였습니다. 북한이 최근 강행한 두 번의 인공위성 발사는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기술적 원인이 이유라고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즉 인공위성 기술이 빈약한 북한이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죠. 그렇게 봤을 때 이번 우주기지 방문은 그 실마리를 풀고 싶은 김정은 위원장의 강한 의지와 북한의 최대 관심사를 잘 파악하고 있는 러시아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라며 "이것이 우주기지에서 김정은과 회담하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죠. 이번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에서 북한이 원하는 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예진: 정상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예측하는 회담 내용들이 좀 있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에게, 러시아가 북한에게 절실한 것들이 명백하기 때문인데요. 김정은과 푸틴이 어떤 사안들에 대해 조율했을 것으로 예측하십니까?

김금혁: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필요하다면 우리는 북한 동무들과 유엔 제재 해제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유엔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과 무기 거래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했습니다. 북한과 무기나 군사 기술을 거래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죠.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논의될 수 있다며 식량 제공도 시사했습니다. 즉 북한은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전쟁 물자와 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식량지원 및 군사기술을 넘겨 받는 것입니다. 미국 측은 무기 거래에 관한 논의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포탄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포탄과 로켓 등을 구매해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선 보다 실질적이고 규모가 큰 무기 제공 논의가 이뤄지리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포탄을 보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데다 북한의 군사력은 러시아의 지원과 장비로 시작했기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제 무기를 자체적으로 개량한 무기들과 포탄, 재래식 전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포탄 뿐만 아니라 다련장로켓이나 탱크, 장갑차 등등 거의 모든 육해공 전력 수단은 러시아 장비와 호환이 되고 육로로 이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러시아에 정찰위성과 핵잠수함과 관련한 첨단 군사기술 및 식량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주 기술에서는 미국과 최상위를 겨루는 러시아에게 기술을 이전 받고, 빠른 시일안에 자신들이 추진하는 우주 추진체의 답을 얻고 싶은 것이겠죠. 또한 당면한 급선 과제인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에게 무기를 판 돈으로 식량을 구매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야심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는 핵잠수함 기술 이전도 이번 회담의 중요 의제로 다뤄질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북한이 공개한 전술핵운용잠수함은 사실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을 개량하여 만든 것이기에 북한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죠. 잠항 능력도 떨어지고 배의 수명도 억지로 늘려놓은 거라 언제까지 임무를 수행할 지 미지수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보복 능력, 은밀하게 다가가 미국을 때리기 위해서는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잠항 능력과 내구성을 갖춘 핵잠수함이 필수적이죠. 김정은도 이를 이해하고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잠수함 보유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러시아는 그런 북한이 원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반미 국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그런 핵잠수함 기술을 넘겨 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겐 큰 위협이 되겠죠.

이예진: 이렇게 되면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관계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앞으로의 국제 정세, 어떻게 펼쳐질까요?

김금혁: 푸틴과 김정은이 만나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과거 매우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던 푸틴이 아닌 다른 푸틴이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과거 푸틴은 어느 정상을 만나든 자신이 가장 돋보이고 러시아 제국의 권위가 드러날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매우 즐겨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차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번 만남은 조금 달랐습니다. 과거의 푸틴은 어디 가고 매우 공손하고 친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푸틴이 나왔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금 러시아는 심각한 무기 부족 상태를 겪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기전으로 흘러가면서 준비 부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기전을 기획했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장기전으로 끌려가면서 준비했던 무기와 물자가 바닥나고 그동안 비축해 두었던 미사일이나 탱크마저 절반 넘게, 어쩌면 거의 대부분 소진했을 지도 모릅니다. 반면 생산량은 그 수요를 쫒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부분의 중요 국가들이 러시아에 등을 돌렸고, 무역을 중지하거나 그 규모를 대폭 줄였죠. 또한 무기 생산에 필수적인 부품들이 제재로 인해 러시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러시아가 대국이고 큰 영토를 가진 국가라 할지라도 이 정도 수준의 제재를 받으며 버티는 것은 무리겠죠.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력의 빵빵한 지원 덕에 기존에 사용하던 러시아제 무기에서 이제는 나토식 무기와 전술을 전수받은 신생 군대로 재탄생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도 이제 지원을 좀 받고 싶은데 중국은 러시아를 외면하고 있고, 다른 국가들도 미국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 편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구세주처럼 등장을 한 것입니다. 마침 모든 무기체계가 같고, 따로 고치거나 적응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바로 전장으로 가져가 사용하면 될 수준의 포탄들과 무기들이 북한에 쌓여 있다 보니 러시아는 북한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며 북한으로부터 군수품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러시아와 북한 모두 이번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면 아마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다음 단계로 격상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북한은 러시아의 중요 파트너로 체급을 올리겠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북한 편을 들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예진: 이런 가운데 한국도 가만 있지만은 않는 모양새입니다. 한국 정부가 시진핑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고요?

김금혁: 네. 그렇습니다.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외교적으로 풀어서 방한을 성사시켜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시기가 참으로 미묘합니다. 북한은 지금 중국을 제쳐두고 러시아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죠. 얼마 전 진행되었던 열병식에서도 김정은은 쇼이구 국방장관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중국에서 파견한 대표단은 냉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럴 때 만약 한국이 중국과 관계 진전을 이뤄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겁니다. 지금 중국은 러시아 만큼은 아니더라도 자국 내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중국은 과거처럼 고압적인 자세로 한국과 주변 국가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융화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고, 그 출구 전략으로 한국과의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입니다.

이예진: 이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해 한국 인터넷 이용자들은 조금 색다른 부분에 관심을 크게 갖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위해 선택한 교통 수단, 바로 태양호인데요. 2시간이면 갈 거리를 3박4일 갈 정도로 느리다는데 한번 놀라고, 초호화 열차라는데 한번 더 놀라고 있습니다. 3대째 북한 지도자들이 태양호를 애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김금혁: 김 씨 일가는 모두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따라서 격추나 추락 가능성이 있는 비행기보다 느리고 시간도 지체되지만, 대신 훨씬 안전한 육로 운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태양호는 그런 김씨 일가가 애용하는 열차인데요. 북한에서는 1호 열차라고 부른다죠. 말이 열차지 움직이는 호텔, 움직이는 요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일단 객실 내 모든 조건은 최상위 수준에서 맞춰져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열차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고급진 모습을 갖추고 있죠. 객실에는 김정은의 취향에 맞게 북한식부터 중식, 러시아식, 한국식, 일본식, 프랑스식 등 어떤 요리도 주문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있으며, 진귀한 와인이나 심지어 살아 있는 바다 가재도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두 대의 초고가 외제 차도 열차 내부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비상탈출에 사용할 수 있는 차량들인 거죠. 또한 언제 어디서든 회의를 할 수 있는 사무실과 통신 장비, 적의 공격으로부터 열차를 보호할 수 있는 두터운 장갑판과 스텔스 기능, 숨어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박격포까지 탑재하고 있는 거대한 요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종 장치가 추가되다 보니 열차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는데요. 시속 50km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열차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암살 위협에서 안전하고 언제 어디서든 대처할 수 있는 필수 인력들을 상시 동반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협소한 비행기보다 열차 운행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예진: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화제성 갑, 진행에 이예진, 평양 출신 시사평론 유튜버 김금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