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사진작가 석재현
2007.03.28
지난 몇 년간 중국 내 탈북자들의 망명과정을 돕다가, 혹은 취재하다가 중국공안에 체포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일부는 여전히 수감돼있지만, 최근 들어 대다수가 석방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지난 2003년 1월, 중국에서 수십 명이나 되는 탈북자들의 보트 탈출을 동행취재하려다 체포돼, 중국감옥에서 14개월을 보냈던 한국의 사진작가 석재현씨를 모셨습니다.

석씨는 미국 유학시절에는 미국의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의 일상을 포착하기도 하는 등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계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고단한 삶을 담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삼년 전 꼭 이맘때 석방됐는데요, 그동안 과거 수감생활에 대해 별로 밝히지 않고 조용히 지내오신 것 같습니다만.
석재현: 예. 그랬죠.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조심스러웠던 게 최영훈씨가 계속 수감돼있었쟎아요. 그래서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저만 먼저 나온 상황이었잖습니까? 최영훈씨가 저로 인해서 불편함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에 조용하게 있으려고 했었습니다. 일단은 같이 중국감옥에 잡혀갔던 최영훈씨도 최근에 돌아오시고 해서, 그동안 마음 한편에 있던 불편함이 조금 덜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전에 중국가기전에 하던 일들을 다시 찾아서 진행해왔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해왔습니다. 최영훈씨 같은 경우, 돌아오셔서 적응하는데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요. 저와는 달리 돌아오셔서 당장 시작할 일이 없으셔서요. 몇 차례 만나기도 했는데, 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교수직을 박차고 다큐멘터리, 즉 기록영화 사진작가로 현장에 뛰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소개해주시죠.
석재현: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도에 (사진작가 일을) 시작했는데요, 사실 탈북하신 분들이 남쪽에 정착하는 숫자가 늘면서 저희가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또 외신 쪽에서도, 특히 뉴욕타임즈와 함께 그런 문제를 같이 취재하면서부터 저도 같은 동포로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조금 더 심각하고 깊이 있게 내용을 봐야겠다하는 생각으로 개인적 작업을 한국과 중국에 있는 탈북동포들 대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동포들이 훨씬 어려운 생활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듣고 대체 어떤 생활들을 하고 있는지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기 위해서 중국을 다녔었습니다.
2003년 1월 18일 새벽, 산동성 엔타이항에서 최근 석방된 최영훈씨와 함께 체포됐던 거죠?
석재현: 네.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엑소시스트 21’ ‘두리하나’ 등) 여러 비정구기구단체들과 함께 준비를 하셨더라구요. 소위 ‘기획망명’이죠. 일명 ‘리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 작업을 기록하기 위해서 합류해 진행하는 도중에 같이 중국공안에 체포된 거죠.
일부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감옥에 탈북자 지원혐의로 수감된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하던데, 혹시 함께 체포됐던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 중국 감옥에 수감된 사람 있습니까?
석재현: 아뇨. 몇 년 전에 함께 일했던 분들은 사실 다 나온 상황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움직이시는 분들은 체포가 돼도, 체포됐다는 사실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한국에 오신 탈북자들 중에서, 한국에 와서 한국여권을 취득한 뒤에 다시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돕는다거나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나온다거나 하다가 중국공안에 체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 사례가 있습니까?
석재현: 예. 두어 달 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적으로 아는 분은 아닙니다.
최근 돌아온 최영훈씨의 경우 심각한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건강도 아주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 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석교 수는 현재 건강상태는 괜찮습니까?
석재현: 네. 지금 상태는 비교적 양호해요. 중국감옥에 있는 동안에 (20kg이 훌쩍 빠지는 등) 체중이 심각하게 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동상이 걸리고 피부병에 걸리는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는데요, 그나마 많이 회복되어서 생활을 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쎄요. 지금도 문득문득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만, 참 어렵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지 않았나하는 감사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탈북자 지원활동을 했다가 수감됐던 김희태 전도사의 경우, 2002년 수감당시 중국공안에게 고문과 구타를 당했었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었읍니다만, 석교수도 혹시 그런 가혹행위를 경험하셨는지?
석재현: 육체적, 신체적 접촉에 의한 그런 부분은 아니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일반 중국 죄수들과 제가 같이 자게 된 방에는 사형수까지 한 방에 집어넣었었어요. 제가 시력이 무척 나빠서 안경이 없으면 생활이 무척 곤란한데, 안경을 뺏어서 주지 않고 일 년 이상을 안경 없이 지냈더니, 불안감이 상당히 증가되더군요. 그런 상황가운데 식생활도 어려웠었어요.
가족을 못 만나고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너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고요. 한마디로 기본적인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차이를 두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나 최영훈씨의 경우에 일반 중죄인들과 같이 생활들을 하도록 하게 했다는 것도 좀 어렵게 했던 점이죠.
그 동안 크게 맘고생 했던 가족들은 잘 있습니까?
석재현: 예. 이제 시간도 꽤 지났구요, 부모님들과 저희 가족들, 특히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저희들은 사실 굉장히 감사해요. 회복중이죠. 또 중국에 다녀와서 첫아이를 가졌어요. (기자: 지금 몇 개월인가요?) 이제 24개월 지났어요. (기자: 아. 예)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져서 이런 좋은 부분도 생긴 것 같습니다. (웃음)
워싱턴-장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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