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국가에서 즐기는 김정은의 취미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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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투기 비행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투기 비행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 며칠 날씨가 추웠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추위 속에서도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 것 같더라고요. 며칠 새만 봐도 24일에는 추격기, 폭격기 훈련을 가서 보고, 또 27일에는 기계화 부대들의 겨울철 도하 공격 훈련을 가서 보았습니다. 도하 공격 훈련을 보니까 황병서와 현영철이 자행포와 장갑차를 직접 타고 선두에서 나서 지휘를 하던데, 그 장면을 멀리서 쌍안경으로 지켜보면서 김정은은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 답답합니다. 아니, 국가지도자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맨날 군사놀이만 즐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20대엔 싸우는 것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영화를 봐도 전쟁영화, 격술영화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이건 남이나 북이나 다 같습니다. 김정은도 젊었으니 싸우는 것 구경하길 좋아할 것이라 봅니다. 김정은이 스위스에 있을 때 생활을 들어보니 미국 격술영화 좋아하고, 격렬한 농구도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젠 북한이 자기 것이 됐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젠 영화를 보는 정도로 성이 차지 않겠죠.

전화로 “공군 사령관 비행대 훈련 보겠다” “기계화 사령관, 공격부대와 방어부대로 나누어 전투 훈련을 해”하고 지시하면 누구 말인데 안 듣겠습니까. 훈련이 다 준비되면 직접 현장에 나가 “땅크 전진하라, 저쪽 부대는 뭐해, 뒤로 돌아 반격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막 지시를 하고 그러면 그 지시대로 병사들이 헐레벌떡 뛰어다니고...거기에 포를 쏘고 폭격을 하고 하면 사방에서 빵빵 소리가 요란하고 물기둥이 치솟고 그러면 가슴이 막 펄떡펄떡 뛰고 골치 아픈 세상만사 모든 시름 다 날아가고. 상상만 해도 이런 사령관 놀이는 얼마나 신날까 싶습니다. 게임도 아니고 눈앞에서 내 지시에 따라 수천 명의 군인들이 땅크 타고 다니면서 포도 쏘고 총도 쏘고, 죽는 시늉을 하고. 제가 김정은이라고 해도 매일 봐도 질리지 않겠습니다.

지금 북한이 한국을 향해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하는데, 이거 진짜로 중단하면 김정은이 얼마나 심심할까 싶기도 합니다. 이쪽이 군사훈련 하지 않으면 북한도 당연히 못하겠는데, 군사놀이를 못 보면 괴롭지 않겠습니까. 저는 개인적 취향으로 군사놀이 좋아하는 것은 뭐 당연히 그럴 순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면 자기 취향에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지도자가 됐으면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나라에 군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체육 행정 등 수많은 분야가 존재합니다. 이거 다 돌보노라면 시간이 늘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국가라면 대통령이 군사훈련 가서 보는 것은 정말 재임 시기에 몇 번 정도밖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이 1년에 군사훈련 도대체 몇 번이나 가서 보는 겁니까. 할 일이 그것밖에 없는 겁니까.

40살이 넘은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1993년 3월 1일 김정일은 노동당 기관지 ‘근로자’에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는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엔 김정일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1년에 논문 하나 이상 발표했습니다. 물론 김정일이 직접 썼겠습니까. 밑에서 다 써준 거 그냥 자기 이름으로 발표만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논문이 해마다 나올 때마다 북한 전체 주민들은 매번 그걸 암송하느라 정말 머리가 아팠죠.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는 논문은 사회주의가 왜 붕괴되었는지에 대한 서방학자들의 분석을 비난하는 형태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방학자들의 견해를 일부 소개하고 여기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했는데, 문제는 그때 저는 아주 젊을 때였지만 그걸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논문은 서방 학자들의 견해를 아주 조금만 소개할 수밖에 없는데, 가령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라느니, 병영식이라느니, 행정명령식이라느니 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이런 대목도 있었죠. 저는 그때까지 ‘전체주의’ ‘병영식’ ‘행정명령식’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어를 듣고 보니 “야, 이거 우리 사회를 정말 너무 잘 분석해 정의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겁니다. 김정일이 아니라고 하면 아닙니까. 실제 그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맞는 말이라고 여겨지는데 말입니다. 김정일이 사회주의 우월성이라고 논문에서 자랑하는 것을 쭉 보다보니 황당무계한 궤변은 다름 아닌 김정일이 하고 있더라고요. 아마 그 논문을 보고 “서방 학자들의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네”라고 생각하면서 의식이 계몽된 북조선 사람들이 저 뿐만 아니라 아주 많을 것이라 봅니다.

자, 그 논문을 지금쯤 와서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 이후에 선군 정치한다면서 전체주의 병영식 행정명령식 사회 체제가 굳어지지 않았습니까. 지금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완전히 병영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남쪽은 재능과 열정을 경제력을 발전시키는데 쏟아서 이젠 너무 잘 사는 나라로 됐는데, 북에선 똑같은 재능을 가진 같은 민족이 군사놀이 하느라 추운 날에 뛰어다니니 말입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일 시켜 본 외국인들이 말하길 같은 뜨개옷을 만들어도 무늬가 복잡한 앞면은 북에서 만들고 밋밋한 뒷면은 중국에서 만든 답니다. 북한 사람의 손재주는 중국 사람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런 재주와 저임금을 활용하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김정은이 쏘는 걸 좋아하는 지도자에서 빨리 벗어나 앞으로 북한 공장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을 보고 좋아하는 지도자가 되는 날을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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