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말복이 지나갔습니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를 삼복이라고 하고 가장 더운 시기라고 하지만, 요즘은 조상들이 만든 24절기가 맞지 않게 됐습니다. 실제로 기상관측 결과를 봐도 100년 전과 비교해 여름은 20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습니다. 봄과 여름 시작일도 각각 17일과 11일 빨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6월은 사실상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의 최고 기온이 30.1도로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여름이 118일, 가을 69일이라고 하는데, 여름은 너무 길고 가을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죠. 제가 자랄 때와 지금이 같은 나라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어릴 땐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추워 계절이 명확했고, 그 사이사이 꽃샘추위, 장마와 폭염, 태풍과 삼한사온 이런 것들이 찾아왔죠.
지금은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나니 국지성 집중호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의주 홍수 같은 재해가 자주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의 삶에선 과거 계절 기준에 맞춘 생활방식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휴가입니다. 휴가는 방학과도 직결되는데, 학교 방학은 보통 7월 중순에서 8월 말까지이고, 아이들이 이때 집에 있으니 어른들의 휴가철도 이 시기에 집중됩니다. 휴가철에는 전국 어딜 가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저는 이때는 피해서 휴가를 씁니다. 사실 6월 말이나 7월 초의 날씨가 훨씬 더 좋거든요. 저는 한국에 온 뒤 이렇게 많이 놀아도 되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주 5일제가 정착돼 보통 일주일에 2일을 쉽니다. 여기에 공휴일까지 합쳐지면 쉬는 날짜는 더 늘어납니다. 올해 같은 경우 한국에선 주 5일 직장인의 경우 모두 119일을 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또 14일 정도 휴가가 추가로 있습니다. 그럼 133일을 쉬죠. 여기에 저 같은 경우엔 연차 휴가라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근속연수 2년마다 하루씩 휴가가 붙어서 지금 14일 휴가에 더해 열흘을 추가로 휴가로 쓸 수 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5년에 한 번씩 또 근속 휴가라는 것을 2주 줍니다. 올해 마침 제가 근속 휴가를 받는 해라 제가 받을 수 있는 휴가는 38일에 이릅니다. 공휴일 119일에 휴가 38일을 더하면 무려 157일을 쉬는데, 1년이 365일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절반을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저렇게 일을 하지 않고도 어떻게 잘 살 수 있는지 의아해하실 수 있는데, 저도 사실 이렇게 놀아도 되냐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쉬는 날에도 개인적인 업무를 많이 처리하는데,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방송하는 일도 동아일보 기자 업무 이외의 일입니다.
휴가를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제가 목숨 걸고 한국에 온 보답을 톡톡히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살 때 저는 휴가 제도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보니 있긴 있던데, 이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힘 있고, 빽이 있는 자들은 아프다고 하고 휴가를 쓰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김장 휴가나 나무를 해오는 월동 휴가 정도를 쓸 수가 있을 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여름에 외국이나 제주도, 동해안 등 바다를 가거나 계곡 같은 곳에 가서 시원하게 지내는데, 북한 사람들은 이 무더운 날에도 휴가가 뭔지 모르고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가진 것이 없으면 늘 동원 나가야 하는 일이 제일 고달픈 것입니다.
김정은이 지시한 날짜까지 공사 기간을 맞춘다며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데, 아무리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쉴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쉬는 날이 오면 또 당정책 학습이니 뭐니 불려 다녀야 하죠. 저는 북한 시절을 생각하면 그냥 노예였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일을 해봐야 생산성이 나지 않으니 그냥 몸만 괴롭습니다. 한국은 다 기계로 하다 보니 쉴 때는 확실히 쉬지만, 일할 때는 또 많은 일들을 처리합니다. 북한은 장비가 없으니까 사람의 힘으로 때워야 합니다. 굴착기 한 대면 될 일을 사람이 백 명이 달라붙어도 못합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평양 공사 현장을 보면 수천 년 전 피라미드 건설 때와 뭐가 다르지 싶습니다. 한국의 건설 현장을 보면 기계만 가득한데, 북한은 사람만 가득합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도구의 사용 여부입니다. 도구를 쓰지 않고 몸으로 모든 것을 때우면 그건 짐승이지 사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세계를 보면 정말 기계화 수준이 너무 높은 단계에 이르렀고, 이제는 기계를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조종하고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이렇게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결국 어떤 지도자를 만났느냐, 그리고 지도자가 인민을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한 한국은 성공했고, 사회주의를 한다는 북한은 거지가 됐습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북한 하나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국가들은 뒤늦게나마 시장경제를 다 도입했습니다. 이건 지도자가 바뀌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만 사회주의를 한다며 세습 왕조 체제를 구축했으니, 손자가 가문을 부정해 다른 체제를 만들 수 없겠지요. 즉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계속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고, 노예의 삶도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체제가 바뀌어 북한 사람들이 여름에 제주도에 놀려오고, 제주도 사람들은 시원한 백두산을 찾아가 휴가를 보내는 시절이 언젠가 반드시 오겠지만, 그게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