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탈북 환경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10/29 10:03:52.029773 GM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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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탈북 환경 북중 국경지대에 설치된 철조망.
/AP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달 18일, 중국 길림 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탈북자가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해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CNN 방송 등 외신들까지 보도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국 안에서도 무려 2,200만 명이 탈북자가 달아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죠. 아마 이 방송에서도 관련 뉴스를 전해드렸겠지만 중국이 15만 위안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수배했어도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이유는 탈출 장면이 고스란히 감시 카메라에 찍혀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높이가 5m가 넘는 건물을 기어 올라가 밧줄로 고압 전기선을 차단하고 뒤따라 나온 간수들과 죄인들이 보는 가운데 감옥 담장을 훌쩍 넘어 뛰어 달아났습니다. 특수부대 출신이란 말도 있는데 알 수는 없습니다.

이 탈북민의 이름은 주현건이고 올해 만 39세이며 함경북도 탄광에서 근무했다고 하는데 키는 160㎝로 작습니다. 주현건은 2013년 도문에 넘어와 강도짓으로 230달러 정도 뺏었는데 그 과정에 저항하는 여성을 칼로 찔러 11년 3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수감 중에 모범수로 인정돼 총 14개월 감형을 받아 2023년 8월 출소할 예정이었는데 1년 10개월을 앞두고 달아났습니다. 이 정도가 세상에 알려진 내용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주 씨가 왜 목숨 걸고 탈옥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되실 겁니다. 원래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남은 형기에 절망하고 출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희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민은 그 반대입니다. 출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립니다. 출소한다는 것은 북한으로 끌려간다는 의미이고 북한에 끌려가면 최소 교화소행입니다. 특히 김정은 시대엔 탈북한 사람을 배신자라며 더 엄격하게 처벌합니다. 북한 교화소는 중국 감옥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해서 살아서 나오는 것이 기적이니, 중국 감옥은 그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탈옥한 주 씨도 감옥에서 나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형수가 사형집행일을 세듯이 북에 끌려갈 날짜를 손꼽아 세어봤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이 가까워지면 없던 용기와 힘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목숨 건 탈옥으로 이어졌겠죠. 어쩌면 탈옥에 실패하더라도 형기가 더 늘어나면 나쁘지 않다고 계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강도짓으로 11년 넘게 형기를 선고받은 최악의 인생처럼 보이는 주 씨가 어떤 탈북민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탈북해서 중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서 경유하던 동남아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한국에 새로 입국하는 탈북민이 올해 3분기에 12명이었습니다. 한 달에 고작 4명이 온다는 것인데 이 정도면 완전히 막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숨어 지내기도 최악입니다. 지역 간 이동이 통제되고 단속이 강화되면서 돈을 벌기도, 은신처를 옮기도 매우 힘듭니다.

이런 사정이니 중국에 머물다 체포되는 탈북민도 늘어나지만, 북한이 받지 않아 중국 내 감옥에 기약 없이 잡혀 있습니다. 최소 내년 6월까진 북한이 탈북민 북송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란 정보도 있습니다. 물론 올해 7월 북한은 비밀을 많이 아는 고위급이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탈북민 50여 명은 끌고 갔는데 살려두려고 끌고 가진 않았겠죠. 이렇게 비극에 처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중국 동북의 여러 감옥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잡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주현건이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죄를 짓지 않고 체포되면 곧바로 북송이지만 강도짓이라도 해서 형을 선고받으면 중국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형기만큼 사는 날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사태가 체포된 탈북민에게 강제로 형을 부여한 효과가 있습니다. 가령 작년 3월에 체포됐다면 바로 끌려가서 지금쯤 북한에서 배신자로 낙인돼 죽었을 수도 있지만 코로나 덕분에 1년 7개월이나 더 살 수 있게 된 거죠. 지금 중국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가 영원히 종식되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감옥에 오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석방이 두려운 탈북민들은 어쩌면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25일 중국은 국경을 무단 침범한 자가 저항하면 발포를 허가하는 조항을 담은 ‘육지국경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내년 1월1일부터 법이 공식화되는데 한마디로 국경 넘다 걸렸는데 달아나거나 칼 같은 것을 들고 저항하면 총으로 쏜다는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올해 중국은 북중 국경을 따라 뚫기 어려운 가시철조망을 설치하고 감시 카메라도 촘촘하게 설치했습니다. 분계선 넘기 못지않게 어려운 철조망을 넘어야 하고, 넘는 과정에 감시 카메라에 잡히고, 달아나다 걸리면 총으로 쏩니다. 그걸 기적적으로 극복해 중국에 숨어들어도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길이 막혀 더 움직이기 힘듭니다.

제가 20년 기자로 있으면서 지금처럼 탈북이 어려운 상황은 못 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들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 탈북할 생각을 품고 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위험한 환경이 조성됐으면 그걸 여러분들에게 정확히 말해야지, 대책도 없이 탈북하라고 해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북한과 중국이 결탁해 강력한 탈북 방지 대책을 세워도 시간이 지나면 좀 느슨해지지 않을까요. 이제 북한은 정말 감옥 그 자체가 됐습니다. 감옥 담장을 넘은 주현건처럼 용기와 함께 운까지 따르지 않으면 그 지옥의 세상을 벗어나기도 힘들게 됐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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