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실체: 보천보 전투

200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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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지난 4일 북한에서는 보천보 전투 70주년을 맞아 북한 전역의 주민들이 김일성 동상에 가서 헌화를 하는 등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이날 행사에 다녀오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한에서 기록하고 있는 보천보 전투에 대한 개요를 잠깐 설명해 드리자면, 보천보 전투는 지난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이끌던 조선인민군혁명군 부대가 만주 국경을 넘어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를 습격한 사건입니다. 당시 김일성은 약 100여명의 유격대와 함께 보천보 내에 일본 주재소 습격 사건을 계획했습니다. 유격대는 성공적으로 주재소를 소탕하고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 등을 노획했습니다. 당시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경찰과 조선인 경찰은 이미 도망치고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농사시험장, 삼림보호소, 소방서, 우편소등도 습격 불태웠습니다. 이날 밤 피해자는 대부분 조선인이었고, 일본인 중에 죽은 사람은 식당을 운영하던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보천보 습격이후 일본군은 김일성 부대를 추격했고, 김일성 부대는 6월 30일 만주 장백현에서 쫓아오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보천보 전투의 승리 소식은 곧 동아일보등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당시 국내에 전혀 기반이 없던 김일성의 이름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유명해 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를 역사적 사변으로 일컬으며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 가운데 가장 큰 업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북한은 정권 수립 후 지금까지 보천보 지역을 김일성 항일 유격지라며 마치 성지처럼 꾸며놓고 주민들로 하여금 숭배하게 하는등 김일성 신격화 우상화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천보 전투의 이름을 딴 북한의 보천보 경음악단은 현재 북한의 2대 음악단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한 학계에서는 보천보 전투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남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보천보 전투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고, 또 만주항일무장투쟁사에서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승전 중에 하나인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투는 역사적 사실 중 하나일 뿐,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역사상 한 획을 그었던 만큼의 업적은 아니었다고 남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남성욱: 학계에서는 보천보 전투가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 열악한 무장으로 일본의 경찰서, 공공기관을 공격해서 인명 피해를 가져온 것은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상당한 공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것을 과장해서 선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일본 경찰들을 많이 살상했다고 하는데 많이 살상한 것은 아니고 사망자 숫자에 관해서는 10배정도 과장한 면이 있습니다.

남성욱 교수는 김일성은 이후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동족상잔에 비극을 가져온 전범자로 추락하게 되었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경력에 대해 자세히 교육하지 않고 있다 덧붙였습니다.

한편, 남한에서는 한때 김일성 주석이 실제 보천보전투를 이끌었는지에 대한 이른바 '가짜 김일성' 논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전투를 김일성의 항일 경력으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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