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보는 한반도 역사] ⑭흥선 대원군과 갑신정변에 대한 남과 북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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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적 인물 중에서 존경과 비난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조선 말기의 흥선 대원군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을 도와 조선의 법률제도를 확립하고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확립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편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국제관계를 악화시키고 조선의 개화를 늦어지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은 흥선 대원군과 개국과 쇄국의 충돌인 갑신정변에 대한 남과 북의 시각을 살펴봅니다.

<음악>

지난 1980년대 초 남한의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반도 역사상 가장 존경하기 어려운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학생들의 대다수가 흥선 대원군을 꼽았습니다. 그 이유는 흥선 대원국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의 개화가 늦어지고 결국 한반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흥선 대원군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시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남한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의 하원호 교수는 남쪽에서 흥선 대원군에 대한 시각이 바뀐 배경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1960, 1970년 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자체가 개방정책이 아니면 불가능 했다. 흥선 대원군 식의 쇄국정책은 박정희 정권의 개방정책과 전혀 맞지 않았고 그래서 아주 비판적으로 서술됐다...그 교육의 영향으로 80년대 초 대원군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으나 80년대 이후 자주화 경향과 관련해 쇄국정책이 재평가 받고 대원군 역시 재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남쪽에서 흥선 대원군에 대한 평가가 아주 긍정적으로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흥선 대원군에 대한 남쪽 역사학계나 국민들의 평가는 부정과 긍정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흥선 대원군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남쪽의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개혁파와 쇄국주의자들의 충돌이었던 갑신정변에 대해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갑신정변은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 개화파가 개화사상을 앞세워 조선의 자주적 독립과 근대화를 목적으로 일으킨 정변입니다. 하원호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중적이다 갑신정변의 경우 민중적인 인식의 가진 역사학자들은 소수의 민중을 의식하지 못한 개화파들의 변혁운동이지만 실패로 돌아 갈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서는 농민들에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개화파에 의해서만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시각이 교차된다.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두 가지 시각을 을 함께 고려하는 쪽이다.>

그렇다면 갑신정변에 대한 북한의 역사적 평가는 어떨까요?

공교롭게도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은 근대화를 목적으로 일어난 갑신정변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때 혁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갑신정변을 높이 평가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개혁운동 수준으로 평가절하 됐지만 여전히 개화파의 갑신정변과 개화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남한보다 높게 평가한다.>

자신들조차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개혁과 근대화를 위해 벌어진 갑신정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모순된 입장이지만 북한의 이러한 입장에는 나름대로의 이데올로기 적 이유가 있다고 하원호 교수는 설명합니다.

<북한이 갑신정변을 높이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주의가 들어오기 이전에 부르주아 혁명이 존재한다는 1950년대 말의 김일성의 발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이후 북한에서는 갑신정변을 사회주의 전 단계에서의 부르주아 혁명, 부르주아 개혁으로 높이 평가하고 그 평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렇게 같은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일관적인 평가가 존재하는 반면 남한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학문의 객관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하원호 교수는 말합니다.

<남한은 북한과 달리 다양한 학문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고 그 논의들의 역사 인식에서도 상당히 차별성이 있다. 북한은 하나의 역사관으로 정리되지만 남한에서는 역사관 자체가 학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반듯이 일률적으로 말해질 수 없다.>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하는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과 같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일률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진행에 이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