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지난해 큰 인기를 얻었던 연속극 중 '선덕여왕'이 있습니다. 신라 제27대 왕이자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향상시켰던 것은 물론 첨성대와 황룡사 9층 석탑을 건립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습니다. 선덕여왕의 가장 큰 업적은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삼국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가 한국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남한과 북한의 신라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입니다.
'바로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은 신라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살펴봅니다.
북한의 '조선통사'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동족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통치배들에 의해 오랫동안 전쟁을 계속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또 7세기에 들어서는 신라의 통치배들이 당나라 침략자들을 끌어들여 국내에서 전쟁을 벌임으로써 나라의 발전을 가로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역사책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이 국사 교과서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를 이용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려는 야심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 땅에 각각 도독부와 도호부를 두고 한반도를 지배하려 했으나 이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연합해 당나라와 정면으로 대결했습니다. 결국 신라는 당나라의 세력을 요동성으로 밀어내고 삼국통일을 이룩했다고 국사교과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국사교과서는 신라가 삼국통일 후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와 전통을 수용하고 또 경제력을 확충함으로써 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을 신라의 삼국통일의 의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통일이 외세를 이용했다는 점과 대동강에서 원산만 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역사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자체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통일연구원 이교덕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이교덕: 통일신라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남쪽에서의 역사는 최초의 통일국가를 신라로 보는데 북한에서는 고려라고 본다. 그 이유는 북한은 발해를 우리 국가로 보고 남한에서는 남북국으로 본다.
이교덕 연구원이 말한 남북국시대는 일반적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뒤부터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 시기를 신라가 정통왕조라는 '삼국사기'의 사관에 영향을 받아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해 북쪽인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왔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서 실학자들 사이에 한국사와 만주의 역사에 대한 많은 관심이 모아져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에 주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역대 역사학자들이 발해 사를 한국사에 편입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라는 책을 통해 엄연히 북국인 발해가 있었으니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지 말고 '남북국 시대'라고 불러야 한다며 최초로 남북국 시대를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발해를 한국 역사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이교덕 연구원의 말입니다.
이교덕: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발해가 우리나라이냐, 우리나라 역사에 포함될 수 있는 국가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국사학계 일부 그런 의견을 나타내는 분들이 있고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단재 신채호의 민족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발해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국가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성격이 우리나라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중국이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남쪽에서도 발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한의 국사 교과서도 7세기 말에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발해가 건국됨으로써 고구려의 전통이 계승되었다고 말하고 있어 '남북국 시대'에 대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전통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최초의 민족적 통일로 평가하고 그렇게 교육해 왔습니다. 북한도 1950년대 까지 이러한 견해에 동감을 하다가 1960년대부터 신라의 삼국통일은 부분적인 통합이라고 입장을 바꾸고, 다시 1979년 발간한 조선전사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부분적인 통합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전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당나라 강점군을 몰아내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이라고 표현하고 신라가 인민대중의 반 침략투쟁에도 불구하고 사대굴종사상으로 말미암아 국토의 남부를 통합하는데 그침으로써 후기 신라로 전환하게 한다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압록강 이북의 옛 고구려 땅에서는 유민들이 지속적인 반침략 투쟁을 벌여 발해국을 세웠다며 발해국 창건의 의미를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함으로써 고려의 후 삼국통일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려가 민족의 최초 통일국가라는 북한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발해가 건국된 것은 고구려가 멸망한지 30년이 지난 뒤고 또 신라의 삼국통일이 마무리 된 지 20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따라서 발해는 이미 통일국가가 형성된 이후에 나온 국가라는 것입니다.
'조선전사'에서 나타나 있듯이 북한은 삼국통일 과정과 발해의 건국을 봉건지배층과 인민들의 대립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조선전사는 발해와 통일 신라의 통치 기구와 군사제도 정비를 인민에 대한 봉건적 지배와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역사관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예속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역사를 철저하게 현재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여러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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