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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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북한이탈주민 가족이 북녘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연합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정진화: , 오늘은 한국에 와서 꽤 오래 됐는데도 정말 어떤 때 보면 아직까지 내가 북한 사람인가? 아니면 한국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계기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자: 고향 떠나 살면서 변하기 힘든 것이 말투와 입맛 이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정진화: 오늘도 휴대폰에 친구들과 새해도 맞고 요즘 눈도 내리고 쓸쓸한 그런 기분이 들고 하니까 그룹 채팅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제 온 사람 10년전에 20년전에 온 사람 등 다양하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인들을 초대 해서 만나게 되는데 거기 올라온 글을 보면 어떤 말은 생소하기도 하고 또 어떤 말은 진짜 오랜만에 들어 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을 보면 추억도 떠오르고 그럴 때 보면 내가 지금 북한에 사는지 아니면 한국에 사는지 한국에 정말 많은 탈북자들이 오다 보니까 자기가 어디 사는지 때로는 잊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기자: 그룹 채팅은 인터넷 공간에서 문자로 만나는 그런 것 아닙니까.

정진화: 맞아요. 그 공간이란 것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글로써 자기 마음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런 공간이다 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데 글 쓴 것을 보면 북한에서 쓰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쓴 거예요. 교과서처럼 표준말로 쓴 것이 아니고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글로 적다 보니까 야, 내가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말이냐? 이런 생각이 나는 말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기자: 말이나 표현이 북한과 달라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상황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진화: 많죠. 제가 처음에 한국에 와서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북한 말로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선보는 거죠.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사장님을 만나는 건데 사장님이 나를 보고 여사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 여사님 한국에 온 것을 정말 축하 드립니다. 이래서 내가 사장님 저는 여사님이 아니에요 이랬어요. 그 여사님이란 표현이 북한에선 김일성 부인 이렇게 굉장히 높은 사람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일반 사람들에게 쓰는 용어가 아니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저보고 여사님이라고 해서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던 거예요. 저 여사님 아닙니다. 그랬던 생각이 지금도 나요.

기자: 반대로 남한 사람들이 북한 말 흉내 낸다고 하는 것 중에는 한 때 종간나이런 말을 한때는 많이 썼는데요.

정진화: 저도 그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북한 말을 흉내 내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북한에서도 쌍욕이에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평소에 앞뒤 말에 따라붙는 말처럼 쓰는 거예요. 그건 욕인데 이랬더니 정말요? 여기 분들이 놀라더라고요. 자기네는 북한에서 평소에 말을 할 때 그런 말이 그냥 앞뒤로 따라다니는 말인 줄 알았대요. 그래서 제가 욕이니까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랬더니 여기 사람들이 당황해 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자: 남북한이 달리 쓰는 말 중에 숫자로 나타내는 표현도 다른 것으로 아는데요. 소통이 안돼서 당황하신 적은 없으세요?   

정진화: 당황한 적이 있죠. 저희는 북한에서 한 키로, 두 키로 쌀 한 키로 줘, 무 세 키로 이러거든요. 탈북자 분이 장에 가서 쌀을 여섯 키로 주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장님이 10Kg짜리 포대 하나를 들고 나오면서 이걸 어떻게 가져가시겠어요 이랬다는 거예요. 후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내가 6킬로를 주라고 해야 했는데 여섯 키로를 달라고 해서 못 알아들었구나 했다는 거죠. 그리고 북한에서는 배추, 무를 그것을 남새 이렇게 하는데 여기는 채소라고 하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소채라는 말을 하고 농장에 가서 그런 것을 키우는 작업반은 남새 작업반이라고 하거든요. 시장에 가서 저거 남새 얼마요?” 하면 ?, 냄새요?” 이러는 거예요. 

기자: 그렇죠 냄새와 남새가 비슷하게 들리니까 자기가 잘못들었는줄 알고는 다시 물어보게 되죠.

정진화: 남새를 냄새로 듣고 이렇게 남북한이 웃기는 말이 종종 있습니다. 북한말은 억양이 강하고 높고 그런데 여기 말은 북한 식으로 표현하면 유순해요. 착하게 하는 것처럼 들려요. 예를 들어서 왜 이래요. 그러면 안돼요 이러는 데 북한 사람은 어찌 그러요? 그러면 되겠소? 이렇게 얘기 하면 한국 분들이 안 좋게 들어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기자: 아무래도 좀 시비를 거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들리죠.

정진화: 한국 분들은 그렇게 들으시더라고요. 저희는 평소에 그렇게 얘기 하거든요. 그리고 표준어로는 그랬습니다. 저랬습니다 이러는데 평양 사람이나 개성 사람은 자를 붙여요. 이랬시요, 저랬시요 이러는데 함경도나 양강도 사람은 이랬어, 저랬어가 거의 표준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와서 저게 얼마요?” 이러면 여기 사람들은 자기를 낮춰 부르는 줄 알고 해서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기자: 남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여성에게는 이모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예를 들어 식당에 가서도 접대원(종업원)에게 이모 이거 좀 갖다 주세요 이런 식으로요.

정진화: 굉장히 어색합니다. 또 북한에선 엄마의 언니를 큰엄마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엄마 쪽은 다 이모라고 부르더라고요. 북한은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면 큰엄마 나이가 적으면 이모라고 하거든요. 한민족인데 친척이나 혈육의 호칭에서도 다르고 해서 이런 것은 낯설었습니다.    

기자: 오랜만에 고향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북한에 살던 추억이 많이 떠오르셨나 봅니다.

정진화: 이게 정말 한마디를 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제가 와서 19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힘든데 한국에 금방 온 우리 고향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늘도 채팅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답은 안하고 눈으로만 보는데 . 맞다. 이런 말도 있었지이것은 잊어버릴 뻔 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국 분들이 처음 저를 봤을 때 그런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말을 못 알아 들었는데 계속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대화를 하는데 못 알아들었다고 그것은 뭔가요? 무슨 말인가요? 이러면 실례잖아요 그러니까 그분들도 답답했을 것 같아요.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정리를 해주시죠.

정진화: 제가 한국에 산지도 이제 1년만 있으면 20년입니다. 10년도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제가 온 다음에도 한국이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지하철이 신기해서 지하철 타고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이것을 타고 지방까지 갈 수가 있으니까 많이 변했는데 하지만 변하지 안는 것도 있어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안 변하는 거죠. 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분의 남동생이 왔다는 거예요. 그분이 제 또래다 보니까 그 동생이나 형제들의 나이가 저희와 비슷한데 그분은 온 가족이 다 온 거에요. 그날은 많이 서럽더라고요. 북한에 동생 생각도 나고 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북한 생각 또 떠나지 않는 것은 형제들 생각도 있고 한데 저는 또 변해야 이 사회에 적응해 살 수 있고 하니까 저 자신은 나름대로 계속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자격증 공부도 시작을 했고 또 올해는 대학원 3학기라 논문 준비도 해야 하고 많은 일들을 올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월 한달 힘차게 해보겠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변하는 것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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