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식료공장이 건설된 북한의 여러 지역에서 개인 빵 장사가 사라지고 있다. 빵 장사는 주로 종잣돈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빈곤한 주민들이 했는데 새 식료공장에서 빵, 과자 등을 생산해 팔자 경쟁에 밀려 판매가 막혔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함경북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7일 “빵 장사는 밑돈(종자돈)이 없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하는 장사였다”며 “식료공장이 건설된 지역에서 개인 빵 장사가 절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우리 동네에서 두 집이 빵 장사를 했는데 식료공장 빵이 나온 이후 그럭저럭 견디다 최근 장사를 그만뒀다”면서 “이들은 ‘새 식료공장이 우리 명줄을 끊었다’, ‘이제 뭘 해 먹고 사느냐’며 탄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24년부터 ‘지방발전 20x10’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매년 20개 시, 군에 3개의 경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전국의 모든 지방에 경제 토대를 갖추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현재 40개 지역에 각각 식료공장, 일용품공장, 옷공장 등이 완공됐다. 올해 선정된 20개 시·군에는 3개의 경공업공장 외에 종합봉사소(서비스센터)와 병원 건설이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지방공업공장 건설은 군대가 맡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북한 지방에 식료공장이나 일용품공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2년 8월 지방공업발전을 논의한 ‘창성연석회의’가 열린 이후 전역에 식료공장, 옷공장 등이 건설됐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작된 경제난 여파로 평양에 있는 몇몇 주요 공장을 제외한 모든 지방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 생산에 필요한 전력과 원자재 보급이 모두 끊겼기 때문이다.
새 식료공장들 식료품 대량 생산
최근 새로 건설된 지방 경공업공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심 치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새 공장이 건설된 지역끼리 경쟁을 붙여 다양한 생필품을 생산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히 수년간 북한이 추진한 밀 농사로 얻어진 국산 밀가루에 더해 러시아산 밀가루까지 유입되면서 새 식료공장들에서 빵, 과자 등의 식료품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난 이후 현재까지 빵 장사로 가정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던 주민들이 장삿길이 막혀 생활에 타격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 빵 장사는 빈곤한 주민들이 하던 생계형 장사로 대부분 동네 골목이나 집 앞에 빵을 펴놓고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잣돈이 없어 장마당(시장) 장사를 할 수 없는 이들은 궁여지책으로 매일 밀가루 2kg 정도를 구입해 직접 만든 증기 빵을 팔아 그날그날 생계를 유지해 왔다.
빵을 팔아도 수입은 적다. 밀가루 1kg에 20개 정도의 ‘증기빵’(증기로 쪄서 만든 찐빵 형태의 빵)이 나오는데 함경북도 부령에서 개인이 파는 증기 빵 1개 가격은 3000원(미화 0.04달러)로 알려졌다. 빵을 다 팔면 하루 5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는데 원재료인 밀가루와 빵을 찌는 데 든 나무값을 제하면 3만원 가량 남는다. 이 돈으로 한 가족이 하루를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기사

식료공장 빵은 고급화와 위생 상태를 내세우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우유나 설탕이 들어가 사카린만 겨우 넣은 개인 빵보다 맛이 더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버터가 들어간 고급빵도 있다고 한다. 또 그릇에 담긴 채 하루종일 길 옆에 노출돼 있는 개인 빵보다 비닐로 포장된 식료공장 빵의 위생 상태가 더 좋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동네 빵이 경쟁에 밀리면서 수요가 줄고 개인 빵 장사들도 없어지고 있다.
아무 때나 쉽게 빵을 살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빵을 사려면 국영 봉사매점으로 가야 한다. 매점이 멀리에 있는 지역은 돈이 있어도 빵을 사 먹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빵을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편의성은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나선시 주민소식통은 “동네 빵 장사가 있을 때는 외상으로 빵을 먼저 가져다 먹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기 싫은 경우 빵을 가져다 달라고 소리치면 집까지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런 편의를 바랄 수 없다”고 전했다.
“중국산 식료품도 사라졌다”
각 지역에 건설된 식료공장들이 빵, 과자, 사탕 등 다양한 식료품을 생산하면서 과거 그렇게 흔하던 중국산 제품도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소식통은 “중국산 식료품이 사라지고 국산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대신 돈 없는 사람들이 하던 빵 장사, 과자 장사, 사탕 장사 등이 다 살길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정책 당국이 코로나19 시기를 경유하면서 돈주들을 통제하거나 쌀이나 식료와 관련된 매점 매석을 강하게 통제하겠다는 기조를 보였다며, 이런 기조가 ‘지방발전 20x10’ 정책 추진과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홍민 선임연구원은 초기에는 강화된 정책 때문에 시장망이 교란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중앙 당국의 의도대로 가격이 좀 안정되고 전체적으로 공급이 안정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민 연구원: 북한 당국이 밀가루라든가 비료 및 식료와 관련된 재료들을 대규모로 무역을 통해 받으면서 오히려 물류 비용이 이제 좀 절감되는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식료공장 등에서 공급하는 빵 등 식품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해져 이제 개인들이 팔던 것보다 훨씬 싸게 공급할 수 있게 바뀐 것입니다.
에디터 이용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