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일부 지역에서 당국 지시로 잣, 밤 등 새 식료공장에 필요한 산열매를 가져오는 주민에게만 자체 생산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재료 부족이 심각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익명을 요청한 평안북도 주민소식통은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당국이 새로 건설된 지방 경공업공장의 생산 정상화와 품질 제고를 계속 강조하고 있으나 원재료가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며 원자재 확보를 위해 “일부 지역 식료공장들이 산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자체 생산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양강도 주민소식통도 비슷한 상황을 전했다.
2024년부터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은 전국 시·군에 식료공장, 옷공장, 일용품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에 새 지방 공장 소식이 자주 언급되지만 식료공장 관련 보도가 특히 많다. 식료공장은 농작물과 산열매 등 국산 원재료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원활하게 가동된다. 하지만 옷공장, 일용품공장의 경우 국내산보다 수입산 원재료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가동률이 높지 않고, 이에 언론에 소개되는 횟수도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각 지역에 식료공장이 생긴 만큼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도 지역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 당국의 의도도 산간 지역은 산열매, 해안지역은 해산물 등 지역에서 나오는 원재료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 식료공장에 필요한 국산 원재료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해산물에 의존하는 해안 지역은 사계절 원재료 획득이 가능하지만 산간 지역은 산열매 수확이 특정 계절에만 가능하다.
식료공장에 산열매 딸 인력 없어
식료공장에 산열매를 딸 자체 인력도 없다. 그럼에도 다음해 생산에 대비하려면 원재료인 산열매를 최대한 많이 비축해 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산간지역 식료공장들이 잣, 밤 등 산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제품을 파는 ‘꼼수’를 동원해 원재료 확보에 나선 것이다.
산열매를 받는 대가로 대신 제품을 파는 곳으로 알려진 곳은 평안북도 운산군과 양강도 김정숙군에 건설된 새 식료공장들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운산군 식료공장은 다양한 잣 제품으로 유명한데 건강에 좋은 잣기름과 잣이 들어간 과자, 사탕, 강정 등을 생산한다고 한다. 김정숙군 식료공장도 두릅, 고사리 등 산나물 절임과 오미자, 돌배 등 산열매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장들 입장에서는 잣, 머루, 다래, 오미자, 가시오갈피 등 산열매를 가져오는 주민에게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과자, 술 등의 식료품을 우선 판매하는 것이 일거 양득이다. 당국의 지침대로 주민들에게 상품 공급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면서 손쉽게 원재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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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공장의 이 같은 꼼수에 지역 주민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강도 주민소식통은 “산열매를 따러 갈 여유가 없는 직장 세대는 식료공장 제품을 살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주민들이 말한다”며 “이를 묵인하는 당국을 욕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산열매는 직장을 다니지 않는 노인이나 주부들이 주로 따러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되는 약초 채취는 남자들이 많이 하지만 산열매는 별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반 주민들이 식료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자, 사탕 같은 별로 요긴하지 않은 상품을 사기 위해 산열매를 따러 산을 헤매야 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평안북도 운산군에서는 잣 따기에 학생들까지 동원되었는데 사고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운산군 읍내 학생들이 일요일에 두 차례나 잣 열매 따기 작업에 동원됐는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잣을 따던 학생이 부주의로 떨어져 팔을 다쳤다고 한다. 사고 발생 이후 학생들의 잣 따기 동원은 중단됐다. 학생들이 딴 잣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채 모두 식료공장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식료공장을 비롯해 각지에 건설된 새 경공업공장은 모두 지방발전을 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치적으로 간주된다. 북한 당국이 지역 간, 공장 간 경쟁을 유도하며 증산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공장의 생산과 운영은 지역 간부들의 중요 관심사다. 하지만 국가적인 원재료 공급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은이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공장을 짓는 것과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특히 북한에서도 시장화가 상당히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국가가 배정하는 일자리보다 실질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정은이 실장은 이어 “이런 상황에서 지방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따라서 지방발전 정책의 성패는 단순한 공장 건설 실적보다 인력과 원자재를 확보해 지속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디터 이용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