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기자가 보도합니다.
모두 380여쪽으로 이뤄진 북한 '전화번호 책' 사본은 북한 전역의 전화번호를 묶어서 지난 2002년에 펴낸 것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어렵게 입수한 북한의 '전화번호 책'에는 표지 왼쪽 상단에 '비밀'이라고 적혀 있고 이는 이 책이 북한에서는 비밀문서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4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박은희씨는 북한에서는 전화 사용이 제한돼 있어서 일반 주민들의 경우 전화번호 책을 사용하려면 뇌물을 줘야 하는 등 열람이 제한된 문서라고 말합니다.
박은희: “아무나 못보고 우편국 그러니까 북한의 체신소라고 하는데 거기 소장이나 관청에 있는 사람이나 볼수 있죠... 내가 혜령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평양에 전화를 하고 싶지만 전화번호를 모르겠으면 체신소에 가서 소장을 만나 뇌물을 좀 주고 책을 보고.”
북한 전화번호 책 첫 장을 넘기면 가장 먼저 고 김일성 주석이 전화 예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두번째 장은 체신부문에서 신속성과 정확성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야 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 내용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화번호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북한 노동당과 행정부처등 각 기관의 조직이 평양을 비롯해 12개 도시별로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다만 국가안전보위부 등 국가기밀에 관련된 기관은 없거나 일부만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외무성과 대외무역기관등에 직접 전화연결을 시도해 봤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국내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평양 내 국제 기구와 평양 주재 외국 대사관, 그리고 국제전화가 반드시 필요한 일부 대외협력 기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제 전화선을 폐쇄했다고 남한 국가정보원이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에서 국제 전화의 사용은 반드시 평양 체신국을 거쳐야 하고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 한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국제전화의 존재조차 모르는 실정이라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입니다.
탈북자 김영일씹니다.
김영일: 국제전화는 둘째치고 국내선도 차단하고 있는데 국제전화는 꿈도 못 꿉니다. 국내선도 체신국 교환을 통해서만 하는데 그것도 잘 연결이 안되서 엄청 소리지르면서 통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의 전화번호 책은 남한이나 외국의 전화번호 책이 전화번호와 함께 주소도 수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소는 없고 전화번호만 기록돼 있습니다. 민간부문의 개인 집 전화번호는 나와 있지 않은 점도 특이합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개인 전화는 대부분 기관과 기업소 책임자급 간부의 집에만 있고 일반인들은 전화를 걸려면 전화국이나 체신소에 가서 전화를이용하는 방법 뿐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개인 집 전화번호는 기록돼 있어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설명입니다.
전화번호책 뒤쪽에는 전화설치 신청서 양식과 규정이 실려 있는데 북한 당국이 전화 사용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철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화사용자들이 지켜야 할 규정에는 전화를 하나 덧달아 쓰거나, 수리 등으로 인해 임시로 전화를 떼려고 할 때도 해당 전화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신 당국의 승인 없이 설치된 전화 시설은 무상으로 회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전화 설치 양식서에는 손전화와 컴퓨터 통신 신청서도 눈에 띕니다.
이는 지난 1990년대 중반 발행된 북한의 전화번호 책에는 없었던 것이어서 북한 당국이 2000년대 이후 늘고 있는 손전화와 컴퓨터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새롭게 추가한 양식임을 알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비밀로 분류되는 북한의 전화번호 책이 어떤 경로로 외부로 유출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일본의 한 언론은 일본 연구자 단체가 북한의 전화번호 책을 입수해 일본 관리와 북한 학자들에게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한 학자는 북한의 전화번호 책은 폐쇄된 북한내 공공 기관들의 조직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좋은 자료라고 지적하고 남한과 서방 국가의 정보당국과 북한 전문가들도 북한 전화번호 책을 입수해 북한 연구 자료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