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김정은 시대의 ‘내로남불’ 단속
2024.08.15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 김정은 수해민 방문과 연설, 탈북 기자들이 주목한 포인트는?
- 김정은의 남한말 그리고 대비되는 주민들의 까맣고 마른 얼굴
- 김정은 이번 수해복구 유독 집중하는 속내는?
- 김정은 풍년바지 2탄? 현송월 머리, 김주애 의상 따라 하기 금지
진행자 : 북한 매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홍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보호한다는 소식을 집중해서 알리고 있습니다. 민심 이반을 최소화하며 동시에 ‘애민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10일 노동신문에 실린 김 위원장의 사진만 무려 44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도 가운데 감추고자 했던 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안 기자는 김 위원장의 말에 주목하셨네요.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보셨습니까?
안창규 기자 : 북한은 쩍하면 수해피해를 입는데 피해 상황보다 김정은이 현장을 찾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선전됩니다. 최근만 보더라도 2020년에 수해 피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일대를 직접 고급 승용차를 몰고 찾았고 지난해에도 강원도 안변, 평안남도 온천 피해 지역을 찾았는데 온천에 가서는 허리까지 물에 잠긴 논밭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 매체는 그런 부분만 집중 보도합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수해민들의 숙소를 찾아 위로하고 그들 앞에서 연설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별히 애민 행보를 한 셈인데 주민들의 반응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안 그러더니 왜 갑자기 연설까지 하는가’ 이런 반응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연설에서 김정은이 북한에서 쓰지 않는 한국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모습에 많은 주민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1월 북한은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만들었습니다. 한국말과 한국식 표현, 억양을 쓰지 말라는 법인데 한국말, 한국식 표현을 쓰다가 이 법으로 처벌된 청년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지도자인 김정은이 대놓고 한국 표현을 사용했으니 주민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진행자 : 정확하게 연설 중 어떤 부분을 한국식 표현, 한국말이라고 특정하는 겁니까? 사실 남북의 말은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이 많은데요.
안창규 기자 : 소식통이 사례를 든 한국 표현은 어르신, TV, 병약자, 험지, 폄훼하다, 음료수, 생활용수 등인데 특히 연설 서두에 ‘주민 여러분’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북한에 주민이라는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연설문 앞에는 반드시 동지 혹은 인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습니다.
소식통은 북한 반간첩 신고 선전화에도 ‘텔레비죤’을 TV라고 하는 사람을 신고하라는 내용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줄여서 불러도 ‘텔레비’라고 합니다.
한국 드라마를 본 일부 주민들이 한국 말을 많이 알고 있는 만큼 TV라는 말을 쓸 수도 있지만 지도자가 공식 연설에서 TV라는 말을 쓴 게 놀랍다는 겁니다.
진행자 : 특히 남한 말로 특정한 부분 중에 ‘어르신’과 ‘병약자’는 정말 남한식 표현이죠. 북한에서는 노인 또는 늙은이라 하시잖습니까?
안창규 기자 : 맞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죠, 문제는 주민들에게는 평양말을 쓰라고 하고 처벌까지 하면서 자기는 자유롭게 사용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번 수해민 연설은 현장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행사 참가자가 아니라 집과 재산을 잃은 수해민이라는 점을 고려했는지 이전처럼 줄을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게 했다고 합니다.
소식통은 수해민들 속에 호위국 사람들이 많이 포함됐다고 전했는데 이들이 중간중간 만세를 외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공개된 사진에서 피부가 검게 타지 않거나 뼈도 앙상하지 않은, 얼굴이 번번한 사람은 다 호위국 군관들이라고 소식통이 전했습니다.
또 김정은의 전용 열차 호화로움에 놀란 주민도 있었습니다. 김정은 전용 열차는 이동할 때는 물론 정차해 있을 때도 일반 주민이 절대 가까이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의주군 수해민들이 가까이에서 직접 봤고, 일반 주민도 TV를 통해 처음으로 열차를 자세히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소식통은 열차의 벽 한 면을 활짝 열어젖혀 주석단을 만들고 연탁도 준비했는데 그 바닥에 화려한 붉은 주단(카펫)이 깔려 있어 고정된 사무실이나 행사장이 아닌 열차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또 옆에는 국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원래는 당기(노동당 깃발)가 있어야 할 위치입니다. 최근 북한 당국이 신뢰가 추락된 노동당 대신 국가와 국기를 강조하는 상황이 잘 표현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저는 김 위원장이 아이들에게 백화점에서 사서 선물했다는 레이스 달린 공주 원피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눈높이가 참 주민들과 괴리가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김 기자, 혹시 관련 영상, 보도 보셨습니까? 특별히 눈여겨 본 부분이 있습니까?
김지은 기자 : 김정은이 수재민들의 천막을 찾아갔을 때 극명하게 대비되던 주민들의 까맣고 야윈 모습과 김정은의 흰 피부와 살 찐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얼굴이 검게 타고 앙상하게 마른 주민들의 모습은 하루 이틀 수해를 만나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주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국가 통수권자로서 자책해도 모자랄 판에 함박웃음을 짓는 그 모습도 놀라웠습니다.
이번 수해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단동에서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며칠 만에 수해를 입은 흔적마저 찾기 어려울 정도로 툭 털고 일상을 회복했으며 또 수재라고 떠들지도 않습니다. 국가주석인 시진핑이 단동에 올 일도 없고요, 수해가 났다고 사탕, 과자, 강정 따위를 공급하는 것도 없습니다. 수해 지역 주민들이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자체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제도적인 토대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몇 푼어치의 사탕이나 쌀을 받았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뿐입니다.
<관련 기사>
진행자 : 김정은 위원장이 서서 연설한 전용 열차, 바로 안쪽으로 신형 최고급 벤츠의 SUV가 실렸던 점도 화제가 됐습니다. 차 가격만 18만 달러를 훨씬 넘는 차량인데요. 그런데 수해 지원금은 거의 강제로 모금하고 있습니다. 해외노동자들은 물론 화교들까지 지원금을 내라, 요구받고 있다고요? 지원금은 얼마 정도를 내야 하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은 수해지원금은 안팎에서 모두 거두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을 위해 그렇게 비싼 자동차를 또 사면서 수해 복구에 쓸 돈은 없어 강제로 주민과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열고 있는 겁니다.
북한 당국은 해외로 나간 각 북한 파견 회사들에 강제 모금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해 피해가 전해진 직후 중국 선양 주재 북한 총영사관 단둥 지부에서는 주재원과 파견 회사 사장들을 소집해 복구 지원금을 ‘성심성의껏’ 바칠 것으로 요구했지만 이런 요구는 하루 사이, 강제 모금으로 바뀌었습니다.
모금 액수는 공장 규모에 따라 다른데 노동자 1인당 중국 돈 100위안에서 200위안(27.68달러)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게 상당히 큰 금액인데요.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에서 한 달 일해도 300위안(41.5달러)을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코로나 전에 중국에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화교들을 대상으로 수해 복구 지원금을 내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대부분 돈을 벌지 못해 북한 행을 미뤘던 사람들인데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다시 들어가려면 북한 영사관에서 입국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나중에 허가증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금을 내야 하는 입장인 겁니다.
진행자 : 사실 수해의 가장 큰 책임은 지도자인데, 지도자는 간부들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주민들도 “안전부가 이렇게 일하는 걸 처음 봤다”고 말한다니, 간부들도 좀 얄미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 기자, 기사에서 이번 수해의 책임은 국토 관리 업무 등을 맡은 인민위원회 그리고 안전부가 지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요. 과거 수해에서는 이 부서들이 책임지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좀 다른 점이 있을까요?
안창규 기자 : 네,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수해 피해가 발생하면 간부들의 처벌이 있었지만 이번은 김정은이 섬 주민 대피 과정을 현지에서 지휘한 상황이라 더 큰 책임과 처벌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7월 28일 신의주와 의주군의 피해 지역을 시찰한 김정은은 “며칠 전(7.22)에 국가비상위기대책위원회도 했는데 왜 피해를 막기 위한 비상이 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관련 간부들의 건달 사상, 요령 주의를 엄하게 질책했습니다.
특히 안전부를 지적했습니다. 재난 방지를 위한 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비상 상황 시 사용할 구조 수단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모든 게 열악하고 부족한 북한에서 어느 지역 안전부든 한국의 119 같은 구조 체계나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안전부 입장에선 완전히 생뚱맞은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최고의 권한을 가진 당 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나 행정 간부가 책임을 지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지역 행정관리와 국토 관리를 담당한 인민위원회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진행자 : 앞으로 복구 일정 어떻게 진행되고 또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지켜봐야 할까요?
안창규 기자 : 수해민 연설에서 김정은은 평안북도 압록강 연안 피해 복구에만 군인, 청년 등 13만 인력이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해전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북한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시작부터 김정은이 개입한 만큼 각도에서 당원들을 돌격대로 현지에 파견하는 등 국가적인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는 상황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내륙과 달리 압록강 하류 섬은 중국에서 육안으로 피해 상황 복구 현황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 만큼 북한은 수해가 난 섬들을 나름 번듯하게 꾸리려 할 겁니다. 섬 둘레를 돌로 쌓고 지면을 높이며, 주택과 학교 등 공공건물 건설하고, 유실된 농경지도 복구하려 할 겁니다. 문제는 복구가 몇 달 이상 걸릴 거라는 겁니다. 이 기간 수해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번 연설에서 김정은은 복구 기간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평양에 데려가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인원이 1만 5,400명이라고 했습니다. 수해민 중 노약자를 3분의 1로 계산하면 현지에 남은 수해민의 수는 적어도 2~3만명은 될 겁니다. 이번 피해와 관련해 외부의 지원을 안 받는다고 큰소리쳤으니 몇 달간 이들의 생활을 국가가 돌봐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국가보다 각 지방에 할당해 지원 물자를 걷어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아마 몇 달간 이들을 돕는 전국적인 지원 캠페인이 벌어질 겁니다. 피해 지역의 주민들은 더 시달릴 것이고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행자 :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 당국이 최근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단속 대상으로 ‘수탉머리’와 ‘시스루 복장’을 새롭게 지정했습니다. 요즘 북한 젊은 여성들 특히 평양에서 유행이라고 하는데요, 정확히 왜 단속이 되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로 사회주의 영상에 맞지 않다, 이것으로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점이, 왜 위반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단속은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상 강연회를 연 자리에서 지시했는데, 영상에는 다양한 처벌 사례들이 포함됐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수탉머리’가 ‘살(피부)이 들여다보이는 옷’이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수탉머리라는 건 정수리까지 머리를 높이 묶고 앞머리를 한쪽 이마를 가리게 내리는 스타일인데, 영상에서 나온 순간 대부분의 주민들은 ‘현송월 머리’라는 걸 떠올렸다고 합니다.
또 김주애가 최근 입어서 화재가 된 시스루 의상 즉 망사 같은 천을 사용해 살이 들여다보이는 의상을 금지했습니다. 꼭 김주애가 입지 않아도 북한에도 예전부터 있던 의상인데 이번엔 단속 목록에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현송월의 머리 모양이라서, 김주애가 입었던 옷이라 금지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지난 시기, 김정일 위원장이 입었던 동복(잠바)이 굉장히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했으니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이죠. 그러나 그때는 길거리에서 단속하고 그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관련 기사>
김주애 ‘시스루 의상’ 현송월 ‘수탉머리’ 주민엔 금지
진행자 : 일명 장군님 동복이라고, 당시 이걸 안 입는 간부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요는 현송월, 김주애를 따라 하지 말라는 의미인 건가요?
김지은 기자 : 김정은 시대에 넘어오면서 한 가지 특징입니다. 김정은 집권 초반에도
김정은이 입었던 풍년바지(통이 넓은 바지) 등이 유행하자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현송월의 머리모양과 김주애의 옷차림인데요, 자신들만 되고 인민들은 안 되는 철저한 이중잣대인 것이죠.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당에서는 하라는 것은 없고 하지 말라는 것만 있다며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 오늘 준비된 소식 여기까지입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새로운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